<15>’백색폭행’ 내부고발자들의 현실
“아픈 사람 치료해 주는 좋은 의사가 되는 게 꿈이었는데 인생이 망가졌어요. 대한민국에서 내부고발을 한 의사는 살아남을 수 없더라고요. 괜히 내부고발을 한 것 같네요.”
2017년 8월 수도권의 한 대학병원에서 산부인과 전문의로 근무할 당시 이 병원 산부인과 교수 A씨에게 외래시술실에서 폭행을 당한 B(36ㆍ여)씨의 말이다. 당시 A씨는 B씨가 난소 양성종양 흡입시술을 하던 중 환자 앞에서 머뭇거렸다는 이유로 주먹으로 B씨의 등짝을 때리는 등 지속적으로 폭행을 가했다. B씨는 민원을 제기했지만 이 대학 인사위원회는 해당 교수에게 ‘엄중경고’를 하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했다.
민원을 제기하는 과정에서 B씨는 좌절감을 넘어 무력감까지 느꼈다. A교수의 폭행 장면을 함께 목격했던 동료 의사, 간호사들이 증언을 거부했기 때문. B씨는 “내가 맞았을 때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던 이들이 막상 증언을 해 달라고 요청하자 모두 입을 닫았다”며 “그나마 러시아에서 연수를 온 의사가 증언을 해서 민원을 제기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잘못은 교수가 했는데 병원에서는 내부고발을 한 나를 ‘배신자’ ‘이상한 사람’ 취급을 했다”는 B씨는 민원을 제기한 후 한 달 만인 그해 9월 이 병원을 나왔다.
병원을 그만둔 이후에도 고통은 끝나지 않았다. 내부고발자를 철저히 배척하는 의료계의 현실을 실감했기 때문. 이미 소문이 돌아 B씨를 채용하겠다는 병원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면접까지 통과해 출근 날짜까지 조율했던 병원에서 갑자기 채용을 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기도 했다. B씨는 “알고 보니 그 병원 원장이 나를 폭행한 교수의 대학 동문이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분만이 전공이었던 B씨는 현재 서울 강남의 한 여성의원에서 질(膣)성형ㆍ피부 미용을 하고 있다. 그는 “남들보다 더 많은 술기(수술 및 시술에 필요한 기술)를 배워 대학교수로 남고 싶었지만, 내부고발로 인해 그 꿈이 산산조각 났다”며 “폭행한 교수는 구두경고만 받고 병원에서 산부인과 과장으로 잘 살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퇴직 후 ‘내부고발자’ 낙인 찍혀 고통
병원 내 폭행을 의미하는 ‘백색폭행’의 피해를 당한 내부고발자들의 고통이 끝나지 않고 있다. 2017년 7월 전북대병원 정형외과 전공의 동기와 선배, 임상교수(전문의)를 폭행혐의로 검찰에 고소한 김모씨의 삶도 내부고발로 파탄이 났다. 김씨는 2016년 3월 이 병원 정형외과 레지던트로 입사해 1년 만인 2017년 2월에 병원을 그만뒀다. 레지던트 동기와 선배, 정형외과 임상교수(전문의)의 폭언과 폭행 때문이다.
김씨의 선배인 C씨는 레지던트 선배라는 이유로 상상할 수 없는 욕설과 폭언을 퍼부었다. 김씨는 “2016년 12월말 C씨에게 30회 이상 온몸을 구타 당한 후 공포를 느껴 C씨의 폭언을 휴대폰으로 녹음하려 했는데 그가 이를 알아차렸다”며 “이후 병원을 떠날 때까지 C씨에게 휴대폰 검사를 받았다”고 고개를 내저었다. 동기인 D씨도 폭행에 가담했다. 당직실과 병동 복도 등에서 김씨의 정강이를 걷어차고 멱살잡이를 했다. 임상교수인 E씨는 병동 간호사들이 보는 앞에서 김씨의 뺨을 때리고도 성이 차지 않아 김씨를 간호사실로 끌고 들어가 주먹으로 김씨의 가슴을 퍽퍽 때렸다. 김씨의 아내는 남편이 무차별 폭행을 당하고 병원을 그만두자 충격에 유산까지 했다.
내부고발자로 소문이 돌아 이 지역에서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김씨는 연고가 없는 강원 철원의 한 종합병원에 일반의로 취직했지만, 이미 철원까지 소문이 퍼져 김씨는 두 달 만에 병원을 그만뒀다. 다시 남쪽으로 내려와 목포에 있는 한 종합병원에서 일자리를 얻었지만 병원장은 툭 하면 “네가 무슨 사고를 친 줄 다 알고 있다”고 비난하기 일쑤였다. 지난해 3월부터 수도권의 한 대학병원에서 다시 레지던트 생활을 하고 있지만 김씨는 아직도 불안에 떨고 있다. 전문의 시험에서 탈락할지 모른다는 걱정 때문이다. 김씨는 “매일 밤 전문의 시험 면접에서 떨어지는 꿈을 꾼다. 폭행을 당한 병원 측에서 면접위원들에게 손을 써 나를 탈락시킬 것 같다”고 호소했다.
◇“내부고발은 자폭행위일 뿐”
의료계에서 내부고발자들이 철저하게 따돌림당하는 건 결국 교수들이 ‘슈퍼 갑’지위이기 때문이다. 내부고발자 대부분은 전임의나 전공의(인턴, 레지던트) 등 병원에서 교수보다 약자들이다. 전임의가 근무하고 있는 병원에서 정규직 교수(임상교수)가 되거나, 다른 병원에서 교수직을 얻기 위해서는 자신을 담당하고 있는 지도교수의 힘이 절대적이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전문의로 일하다 지난해 개원한 내과 전문의 이모씨는 “교수 자리가 나올 때까지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지도교수에게 잘 보여야 하는데 내부고발을 한 사람을 교수로 추천할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씁쓸해했다.
수련병원에서 인턴 1년, 레지던트 4년 과정을 밟아 전문의 자격증을 취득해야 하는 전공의들은 슈퍼 갑인 교수들에게 대항하기 더 어렵다. 지도 교수에게 찍힌 전공의들은 선배와 동료 전공의들에게도 폭언과 폭력을 당하는 경우까지 있다. 같은 ‘을’이지만 교수에게 찍힌 전공의를 감싸다 자신에게 불똥이 튈까 두렵기 때문이다. 김씨가 선배와 동료 레지던트에게 폭행을 당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병폐는 설문에서도 드러난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가 낸‘2017년 전공의 수련 및 근무환경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공의의 71.2%가 언어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고, 20.3%는 신체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절반 이상은 지도 교수나 상급 전공의들이 가해자였다. 언어폭력 가해자 중 32.8%가 교수, 34.1%가 상급 전공의들이었다. 신체 폭력 가해자 중 5.9%는 교수, 4.9%가 상급 전공의들이었다.
내부고발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를 보여 주는 사례는 최근에도 발생했다. 수도권의 모 대학병원에서 전문의로 일하고 있는 F씨는 최근 동료의사에게 환자수술을 교수가 아닌 자신이 처음부터 끝까지 했다는 소리를 듣고 경악했다. 그는 용기를 내 당일 수술실에서 근무했던 전공의와 전문의들에게 이 사실을 병원 측에 고발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들은 조용히 입을 닫았다. F씨는 “내 주장에 동의할 줄 알았는데 침묵으로 일관하는 모습을 보면서 공포감까지 느꼈다”며 “교수의 권위가 얼마나 강한지, 한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문화를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토로했다. 그는 “다시는 내부고발할 생각조차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법적 보호조치의 부재는 피해를 당하거나 비위를 목격한 당사자가 침묵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우리나라에서는 공익침해 행위가 발생했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할 경우 공익신고를 한 사람을 보호하는 공익신고자 보호법이 있지만 개인이 저지른 폭행이나 부조리에 대한 고발일 경우에는 이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 윤지영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피해자들이 법에 호소를 해도 법의 효력이 즉각적이지 않고 사후적이라 완전히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이런 병폐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폭력과 부조리를 눈감아주는 제 식구 감싸기 문화가 우선적으로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치중 기자 cjkim@hankookilbo.com
※‘메디 스토리’는 의사, 간호사 등 의료계 종사자들이 겪는 애환과 사연, 의료계 이면의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한국일보>의 김치중 의학전문기자가 격주 월요일 의료계 종사자들의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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