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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영토분쟁] <53> 키프로스, 독립 60년 지나도 여전한 영국 흔적

입력
2019.09.27 20:00
수정
2019.09.27 20:21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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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프로스 내 영국령 군사기지, 아크로티리와 데켈리아

지중해 동쪽에 위치한 키프로스. 아래 붉은 색 부분이 영국령 군사기지인 아크로티리와 데켈리아다. 그래픽=송정근 기자
지중해 동쪽에 위치한 키프로스. 아래 붉은 색 부분이 영국령 군사기지인 아크로티리와 데켈리아다. 그래픽=송정근 기자

지중해 동쪽 끝, 아름다운 휴양지 키프로스(Cyprus)는 인구 약 80만명이 거주하는 작은 섬나라다. 바다 건너 북쪽으로는 터키, 동쪽은 시리아와 레바논, 남쪽은 이집트, 서쪽은 그리스와 접하고 있다. 키프로스는 1960년 영국의 식민지배로부터 독립했지만 지금도 그 흔적은 남아 있다. 키프로스 내 영국의 주권기지영역(Sovereign Base AreaㆍSBA), 아크로티리와 데켈리아다.

아크로티리는 키프로스 남서쪽 끝에, 데켈리아는 남동쪽에 있는 라르나카만에 면해 있다. 두 지역은 영국군의 중간 집결지이자 부대 훈련소로 사용되며, 영국군 3,000여명이 주둔하고 있다. 주둔부대의 사령관이 두 지역을 통치하고 있다.

유럽ㆍ아시아ㆍ아프리카를 잇는 전략적 요충지인 키프로스 주민 대부분은 그리스계와 터키계다. 오랜 외세 침탈 끝에 1878년 영국의 지배를 받으면서 그리스계와 터키계, 그리고 영국 사이의 대립이 격화됐다. 이후 독립 요구가 거세지자 1959년 ‘취리히-런던 협정’을 체결, 이듬해 키프로스 공화국이 탄생한다. 다만 그리스계와 터키계 간 갈등은 풀지 못해 1974년 남키프로스(그리스계)와 북키프로스(터키계)의 분단으로 이어진다.

남북 간 대립과 별개로 키프로스는 영국을 상대로 아크로티리와 데켈리아 반환을 줄기차게 요구해왔다. 다만 키프로스 주민들의 반환 요구는 단순히 빼앗긴 영토를 되찾겠단 것은 아니다. 영국령 군사기지는 키프로스 영토의 3%에 불과하다. 주민들의 가장 큰 불만은 키프로스가 자신들도 모르게 군사 작전의 전진 기지로 활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2018년 6월 기지 철수를 요구하는 키프로스 주민들의 시위를 이끈 단체는 ‘키프로스 평화위원회’다. 이들은 영국의 활발한 군사작전 수행이 키프로스를 무력 공격의 타깃으로 만들지도 모른다고 주장한다. 실제 지난해 4월에 시리아를 공습한 연합군 전폭기들이 키프로스 영국군 기지에서 발진했으며, 지난 5월에는 영국군의 최신 스텔스 전투기 6대가 아크로티리에서 6주간 훈련을 실시했다.

유럽행 난민의 증가도 또 다른 양상의 다툼을 야기한다. 2015년 그리스에 가려던 난민 114명이 표류 끝에 아크로티리에 도착하는데, 이 때 이 곳에 대해 영유권을 주장하던 키프로스와 영국 양국이 난민들을 두고는 서로 책임을 미룬 것이다. 이후 키프로스 정부가 나서 난민들을 상대로 망명 신청을 받았으나 대부분의 난민들은 영국행을 고집하며 영국 정부와 법적 다툼을 벌이고 있다.

브렉시트 논의 역시 새로운 갈등의 불씨가 되고 있다. 키프로스는 2004년 유럽연합(EU)의 회원국이 되었는데, 영국이 EU에서 탈퇴할 경우 이 곳에도 통행ㆍ통관 절차를 엄격히 적용하는 ‘하드보더’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조용한 영토분쟁 속에서 키프로스 주민들은 여전히 불투명한 미래에 불안해하고 있다.

이미령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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