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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경제를 이렇게 내팽개쳐도 될까

입력
2019.09.27 18:00
수정
2019.09.30 15:59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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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늪에 빠진 한국, 경제는 계속 추락

정부 고용능력 한계, 믿을 건 기업뿐

여야 모두 결국은 경제로 심판받을 것

일부 노인일자리 증가에도 불구하고 전반적 고용난은 해결 기미가 없어 보인다. 한 여성이 25일 서울 용산구청에서 열린 '용산여성, 스타트업 데이!’ 서울 여성 일자리 박람회에서 채용공고 게시판을 보고 있다. 박형기 인턴기자
일부 노인일자리 증가에도 불구하고 전반적 고용난은 해결 기미가 없어 보인다. 한 여성이 25일 서울 용산구청에서 열린 '용산여성, 스타트업 데이!’ 서울 여성 일자리 박람회에서 채용공고 게시판을 보고 있다. 박형기 인턴기자

이 시점에서 민생 얘기를 꺼내는 건 조국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여권의 국면 탈출 논리에 동조하는 것처럼 비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조국 파동 이래 두 달간 경제는 철저히 내팽개쳐졌고, 누구도 이 어이없는 방치 상태를 바로잡지 않고 있으며, 그 사이 기업과 국민들은 점점 더 깊고 어두운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음을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내년 성장 전망은 마침내 1%대(LG경제연구원)까지 추락했고, 이대로면 한국경제는 리먼 사태 이후 10여년 만에 가장 고통스러운 상황을 맞게 될 것이다. 아무리 조국도 중요하지만 정말 경제를 이렇게 처박아둬도 되는 것일까.

여권은 무려 45만개의 새 일자리를 안겨준 8월의 ‘고용 서프라이즈’에서 희망을 찾고 싶을 것이다. 일자리가 생긴 건 분명 반가운 일이며, 39만개가 60대 이상에게 돌아갔고 15~60세 일자리는 다 합쳐봐야 6만개밖에 늘지 않았어도 굳이 냉소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무료함과 소외감에 분노만 쌓여가는 노년층에게 작지만 일할 기회를 제공한 건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니까.

하지만 아무리 긍정적으로 보려 해도 12만개 일자리가 증발된, 인구감소를 감안해도 고용률이 낮아진 40대의 현실은 답답하기만 하다. 대한민국의 40대는 하늘이 두 쪽 나도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돈 들어갈 데가 너무 많은 어린아이들의 엄마 아빠들이고, 생활비에 병원비까지 보태야 하는 노부모의 아들 딸들이다. 직장을 잃으면 좀처럼 새 일 찾기가 힘든 나이, 그래서 지뢰밭인 줄 알면서도 자영업의 언저리를 기웃거려야 하는 나이다. 이 절박한 가장들의 일자리가 계속 사라지고 있는데 어떻게 “경제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9월 16일 문재인 대통령 발언)는 것인지.

60대 일자리는 정부가 만들 수 있다. 하지만 40대 일자리는 시장(기업)의 몫이다. 역사상 가장 많은 공무원으로, 역사상 가장 많은 예산을 쏟아부었으면서도 사회의 허리인 40대 고용이 줄어들고 있다는 건, 정부 역량은 한계에 직면했고 시장의 고용 창출 기능도 작동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대규모 재정 투입으로 8월 같은 60대 위주의 ‘고용 파티’가 재현될 수는 있겠지만, 결코 위기의 40대를 구해내지는 못할 것이다. 각종 수당과 휴가제도, 52시간제 시행으로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은 가까워졌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글쎄 일(work)이 없는데 무슨 밸런스를 추구한다는 말인가.

소위 ‘큰 정의’(사법 개혁)로 결국은 등 돌린 민심이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미국의 존엄성을 추락시킨 트럼프 대통령이지만 재선까지 바라볼 수 있는 건 미국인들이 집단최면에 걸려서가 아니라 늘어난 일자리 덕분이다. 아베 총리의 독주가 압도적 지지를 받는 것 역시 일본인들의 극우 본능이 되살아나서가 아니라 아베노믹스의 성공 때문이다. 정부는 실패를 겸허히 인정하고, 이젠 시장이 원하는 것, 기업들이 바라는 것을 들어줘야 한다. 구해야 할 건 조국이 아니라 경제이고 일자리다. 그래야 국민이 살고 정부 여당도 산다.

야당도 다를 건 없다. 자유한국당은 어차피 경제난이 심화할수록 국민 원성만 높아질 테니까, 내심 이 상황을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면서 차제에 대안 정당, 현 정부와는 다른 시장 지향 정당임을 보여주고 싶었는지 갑자기 ‘민부론’을 들고 나왔는데, 내용이 공허할 뿐 아니라 결정적으로 황교안 대표의 ‘스티브 잡스 코스프레’는 보기 민망해 차라리 안쓰러웠다.

생전 스티브 잡스의 프레젠테이션이 빛났던 건 그의 패션 덕이 아니었다. 혁신을 향한 끊임없는 도전의 결과였다. 아무리 짧은 머리에 무선마이크를 달고, 이세이 미야케 터틀넥과 리바이스 청바지, 뉴밸런스 운동화까지 착용한들 창의의 울림이 없고 혁신을 실천한 게 없는데 누가 감동하고 열광할까. 자유한국당도 ‘웃픈’ 잡스 따라하기나 삭발 이벤트 같은 건 이제 그만하고 조국 공격의 10분의 1만이라도 일자리를 고민하고 민생에 몰입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훨씬 큰 공감을 받을 것이다.

이성철 콘텐츠본부장 sc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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