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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팅! 중견기업]‘혼’을 담은 옷으로 패션 업계 매출 1조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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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팅! 중견기업]‘혼’을 담은 옷으로 패션 업계 매출 1조 신화

입력
2019.10.07 04:00
수정
2019.10.07 10:18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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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그룹 세정

부산 금정구에 있는 세정그룹 본사 전경. 맨 오른쪽 건물은 서울 강남구의 세정그룹 서울 지사 사진을 합성한 것이다. 세정그룹 제공
부산 금정구에 있는 세정그룹 본사 전경. 맨 오른쪽 건물은 서울 강남구의 세정그룹 서울 지사 사진을 합성한 것이다. 세정그룹 제공

2005년, 1960~70년대를 배경으로 두 여성 패션 디자이너의 삶을 그린 ‘패션 70’이란 드라마가 있었다. 주연배우 이요원이 연기한 주인공 ‘박더미’가 작은 옷가게 종업원에서 출발해 패션업계의 거장으로 성장하는 내용이었는데, 시청자들로부터 적지 않은 화제를 모았다.

주인공 박더미는 사실 한국 패션 산업계의 실존 인물을 모델로 한 등장인물이었다. 스물여덟 살에 맨손으로 의류 제조업에 뛰어들어 40여년 만에 매출 1조원 규모의 중견기업으로 키워낸 박순호(73) ‘세정그룹’ 회장이다.

세정그룹은 남성복 브랜드 ‘인디안’ ‘브루노바피’ ‘트레몰로’, 여성복 ‘올리비아로렌’ ‘데일리스트’, 캐주얼 ‘니’, 주얼리 브랜드 ‘디디에두보’ ‘일리앤’, 패션 잡화 브랜드 ‘두아니’ 등의 패션 전문 기업을 비롯해 유통과 건설, IT 등 다섯 개 관계사를 둔 중견기업이다.

특히 올해 45주년을 맞은 인디안은 ‘티셔츠 장인 브랜드’로 잘 알려져 있다. 1974년 처음 출시했을 때 견고하고 이음새 없는 정교한 봉제 기법을 적용, 뒤틀리거나 늘어나지 않는 목 폴라 티셔츠로 주목을 받았다.

세정은 전국 1,300여 개의 브랜드 매장과 880만명의 회원(누적 가입자)을 보유하고 있다. 2011년에는 연 매출 ‘1조 클럽’에 가입했다. 세정 외 1조 클럽에 이름을 올린 패션 기업은 제일모직, LG패션, 코오롱, 이랜드그룹 등 단 4곳뿐이다.

박 회장은 1974년 40평짜리 허름한 건물에 편직기 네 대와 재봉틀 아홉 대를 놓고 ‘세정그룹’의 모태가 되는 ‘동춘섬유공업사’를 열었다. 회사 이름은 ‘동쪽에서 희망의 봄이 불어 온다’라는 뜻이었다. 며칠 밤을 꼬박 새워 목 폴라 스타일의 라운드 티셔츠 400장을 만들었다.

납품할 도매상에 품질로 감동을 주기 위해서는 제품에 혼을 심어야 했다고 박 회장은 당시를 떠올렸다. ‘나는 나의 혼을 제품에 심는다’는 박 회장의 좌우명도 이때 탄생했다고 한다.

혼은 담은 티셔츠는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당시 가장 큰 도매상이었던 ‘대흥사’와 독점계약을 맺었다. 첫 거래선을 확보하면서 사업은 궤도에 올랐다. 이후 실적이 좋아지면서 생산시설을 확장하고 브랜드 사업에 본격 뛰어들었다. 지금의 세정을 만든 ‘인디안’ 브랜드도 이 때 탄생했다. 스웨덴에서 탄생, 지금은 전 세계 패션 피플로부터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아크네 스튜디오’가 샘플 청바지 몇 벌로 시작했듯 현재의 세정그룹도 그렇게 400장의 티셔츠로 시작을 한 것이다.

그는 지금도 “내가 사랑하지 않는 제품을 남에게 판매하는 게 한 두 번은 가능해도 오래갈 수 없다. 화려한 것은 잠깐이지만 혼을 담은 건 영원하다. 진정성이야말로 경영인의 최고 덕목”이라고 입버릇처럼 강조한다.

박 회장은 1988년 도매상 영업에서 소비자와 직접 거래하는 전문 대리점 체제로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주변의 만류가 거셌지만 과감하게 밀고 나갔다. 1991년에 ‘나누며 성장해 세계로 나아간다’는 뜻을 담은 ‘세정(世定)’으로 사명을 바꾸고 패션 유통 기업으로 정체성을 강화했다. 대리점 체제 전환 7년 만인 1995년에 매출 1,000억원을 돌파했다. 1987년 매출의 열 배였다.

세정은 2013년 패션 전문점 ‘웰메이드’를 선보이는 등 패션을 넘어 라이프 스타일 유통 기업으로 변신하고 있다. 웰메이드는 다양한 연령대의 남녀 소비자를 위한 원 스톱 멀티 쇼핑 공간으로 세정의 대표 브랜드를 모두 만날 수 있다. 2018년 7월에는 경기도 용인에 복합 생활 쇼핑 공간 ‘동춘175’와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들이 입점해 있는 라이프 스타일 편집숍 ‘동춘상회’를 열었다.

또한 올 8월에는 여성복 ‘올리비아로렌’의 온라인 전용 브랜드 ‘올리비아비’, 9월에는 웰메이드의 온라인 브랜드 ‘웰메이드컴’을 잇달아 선보이며 온라인으로 옮겨가는 변화에도 적극 대응하고 있다.

박 회장은 ‘나눔의 경영자’로도 잘 알려져 있다. 2011년 패션 업계 최초로 사회공헌재단인 ‘세정나눔재단’을 설립해 어려운 이웃과 자립 기반이 부족한 사회복지시설을 쭉 지원하고 있다. 홀로 지내는 어르신, 한 부모 가정, 소년소녀가장을 대상으로 한 장학금 수여, 주거환경 개선, 의료 지원 등도 꾸준히 진행 중이다. 세정은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2013년 기획재정부, 2018년 국세청 성실공익법인에 선정됐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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