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 스톡홀름에 이어 스웨덴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예테보리 시내 곳곳의 광고판에 ‘책’이라고 또렷하게 한글이 적혀있다. 26일부터 29일까지 열리는 스칸디나비아 최대 문화행사 예테보리 국제도서전의 올해 주빈국이 한국임을 알리는 표시다. 예테보리 국제도서전은 1985년 스웨덴 사서들의 주도로 시작, 40개국 800개사의 출판관계자가 참가하고 8만여명이 방문하는 북유럽 최대 규모의 도서전이다. 한국이 국제도서전의 주빈국으로 초청된 것은 2017이스탄불 국제도서전 이후 2년 만이다. 특히 올해는 한국과 스웨덴 수교 60주년이 되는 해라 그 의미가 남다르다.
26일(현지시간) 도서전이 열리는 11,000㎡ 규모의 스웨덴 전시 회의 센터에 들어서자 주빈국인 한국관이 방문객을 맞았다. 현재 스웨덴에 번역돼 있는 한국 도서는 33종으로 수가 많지는 않다. 그러나 K팝의 세계적 인기에 힘입어 형성된 한국문화 전반에 대한 관심이 한국문학으로도 점차 확대되는 모양새다. 문헌정보학을 전공한다는 대학생 에스더(22)씨는 “2012년부터 K팝의 팬이었고 자연스레 한글도 공부하게 됐다”며 “한국어를 더욱 잘하게 되면 한국 문학도 읽어보고 싶다”고 한국관을 찾은 이유를 설명했다.
특히 올해 한국관은 책이 주인공인 일반적인 도서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로 꾸몄다. 마치 미술 전시장을 연상시킨다. 90㎡(약 27평) 남짓한 공간에는 책 대신 의자 66개가 놓였다. 이곳에 앉아 한글로 적힌 책을 들여다보는 스웨덴 독자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뿐만 아니라 전시장 바닥은 정면의 무대를 향해 약 0.013도 기울어 있었다. 설계를 맡은 시인이자 건축가인 함성호씨는 25일 열린 사전 간담회에서 “(바닥의) 미세한 기울기를 통해 한국관을 찾은 관광객들이 인간의 불편한 조건을 함께 느끼고 생각해보도록 하고 싶었다”고 설계 배경을 밝혔다.
‘1%의 기울기로 체험하는 인간의 불편한 조건’이라는 전시장의 아이디어는 ‘인간과 인간성(Human&Humanity)’이라는 한국관의 주제와 맞닿아 있다. 올해 한국관은 ‘성평등’(Gender Equality)이라는 도서전의 전체 주제를 확장시켜 ‘인간과 인간성’을 주제로 삼았다. 이어 △사회역사적 트라우마 △국가폭력 △난민과 휴머니즘 △기술문명과 포스트휴먼 △젠더와 노동 △시간의 공동체 등 오늘날 한국사회와 한국문학을 관통하는 총 6개의 소주제를 내걸었다. 현기영, 한강, 진은영, 조해진, 김금희, 김언수, 김행숙, 김숨, 신용목, 안상학 등 각각의 주제를 관통하는 대표 작가들이 세미나와 77종의 책 전시를 통해 스웨덴 독자들과 만날 예정이다. 한반도 평화(구갑우), 교육(김현경), 인간의 조건(이상헌, 천관율) 등을 주제로 학자, 평론가, 저널리스트 등이 스웨덴의 지식인들과 대담을 나누는 자리도 마련된다.
26일 오전 열린 도서전 공식 개막식 겸 주빈국 개막식을 찾은 아만다 린드 스웨덴 문화부 장관은 “이번 기회를 통해 저를 비롯해 스웨덴 독자들이 한국 문학에 대해 많이 알아갈 기회가 될 것 같다”고 축사를 했다. 한국 작가 대표로 축사를 맡은 현기영 소설가는 “책 문화의 쇠퇴는 그 사회의 진실이 죽었다는 뜻”이라며 “이러한 문제의식을 예테보리 국제도서전에서 스웨덴을 비롯한 세계인들과 공유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예테보리=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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