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 2년 만에 두 배·분쟁 급증에도… 정부 “의료분쟁 당사자 해결”
원내감염이 주요 전파 경로인데 흔적도 없는 과실 입증 ‘환자 몫’
종합병원들 퇴원시키기 급급 환자는 치료할 병원 없어 이중고
의료기관에 입원했다가 항생제도 듣지 않는 슈퍼박테리아 카바페넴내성장내세균(CRE) 감염판정을 받는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그러나 병원은 감염된 환자를 내보내기만 할 뿐 감염경로 규명이나 CRE에 의한 합병증 치료 등 아무런 사후책임을 지지 않고 있어, 의료기관도 부담을 나눠져야 한다는 여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CRE는 장내세균 치료에 사용하는 가장 강력한 수준의 항생제인 ‘카바페넴’에 내성을 가진 세균을 통틀어 일컫는다. 의료인이나 간병인 등에 의한 원내감염이 주요 전파경로로 알려져 있지만 여러 의료기관을 오가는 환자가 많은 한국에선 의료기관끼리 감염 책임을 미루는 상황에 놓이는 환자가 많다. 그러나 29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현재 환자가 어떤 의료기관에서 CRE에 감염됐는지를 조사하거나 이들의 피해보상을 돕는 등 CRE 환자를 지원하기 위한 별도의 정책은 없다. 지난해 내놓은 의료관련감염 예방관리 종합대책에도 환자를 지원하는 내용은 빠졌다.
이는 정부가 원칙적으로 의료분쟁은 당사자들끼리 풀라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복지부 질병정책과 관계자는 “길고 힘겨운 과정이긴 하지만, 원내감염도 기본적으론 의료분쟁”라고 설명했다. 또 개별 사례에선 원외감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전수 역학조사는 인력 등 여건상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CRE환자들은 감염 원인이 의료체계 자체에도 있는 만큼 정부가 피해지원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주장한다. 학계도 CRE 환자가 완치되기 전에 종합병원에서 감염 사실을 알고 퇴원시키면 환자가 요양병원으로 이동해 CRE를 옮기고, 병세가 악화하면 다시 종합병원에 입원하는 과정에서 CRE가 확산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환자가 입원 시 손 소독을 열심히 하는 등 개인적으로 노력하더라도 감염을 피하기는 쉽지 않다는 하소연이다. 실제로 CRE 환자는 2017년 5,717명에서 올해 이달 25일 기준 1만764명으로 2년 만에 두 배 이상 급증했고, 감염 관련 의료분쟁 역시 2017년 155건에서 지난해 222건으로 40%나 증가해 전체 의료분쟁 증가율(20%)을 뛰어넘었다.
원내감염은 당사자끼리 해결할 의료분쟁이라는 정부 입장에도 CRE환자들은 불만이 많다. 외상과 달리 흔적이 남지 않는 감염은 병원의 과실을 증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CRE 관련 손해배상을 상담한 경험이 있는 법무법인 우송의 정필승 변호사(일반의) 역시 “재판에서는 의료법상 감염예방조치를 철저히 했는지를 따지는데, 콧줄 소독을 했는지 등 간단한 처치라서 병원이 자신의 조치를 입증하기 쉽다”고 덧붙였다.
환자들은 감염경로 입증과 치료 등 사후책임을 사실상 혼자서 질 뿐 아니라 입원할 수 있는 병원조차 찾을 수 없어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경기도에 거주하는 강경순 씨의 아버지는 폐렴을 치료하려 입원했다 슈퍼박테리아에 감염됐다. 강씨는 “보건소도 원내감염이 의심된다고만 하지 어떤 도움도 주지 않고, 종합병원은 빨리 퇴원하라 압박하는데 CRE 환자를 받겠다는 요양병원은 찾을 수 없다”며 “병원에서 감염됐는데 책임은 모두 환자가 지고 있다”고 호소했다.
김민호 기자 km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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