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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유모차에 개를 태우고 가는 사람을 보고

입력
2019.09.26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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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적령기의 그 젊은 여자 분들이 결혼했다면 틀림없이 아기를 그 유모차에 태우고 남편과 길을 걸었을 텐데 왜 그들은 아기 대신 개를 태우고 갈까요? 혹시 아기처럼 사랑을 쏟을 대상이 필요한데 아기는 가질 수 없으니 아기 대신 개를 키우며 모성적 사랑을 쏟는 것이 아닐까? ©게티이미지뱅크
결혼 적령기의 그 젊은 여자 분들이 결혼했다면 틀림없이 아기를 그 유모차에 태우고 남편과 길을 걸었을 텐데 왜 그들은 아기 대신 개를 태우고 갈까요? 혹시 아기처럼 사랑을 쏟을 대상이 필요한데 아기는 가질 수 없으니 아기 대신 개를 키우며 모성적 사랑을 쏟는 것이 아닐까? ©게티이미지뱅크

이번 명절에도 친척을 방문해 같이 제사를 지내지 않고 가족끼리만 명절을 쇠고 제사도 지내며 명절 음식도 제사상도 시장에서 다 사서 차린 사람들이 대다수라는 얘기가 뉴스를 통해 흘러나왔습니다. 그중에서도 젊은이들은 여러 이유로 아예 집에도 가지 않고 명절도 생략하고 혼자 여행을 하거나 혼자 지낸 사람이 많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그런 얘기를 듣고 길에 나갔기 때문인지 유모차에 개를 태우고 공원을 산책하는 젊은 여자 분들이 즉시 눈에 들어왔습니다. 처음 본 것이 아니고 전에도 본 적이 있지만 전에는 지나쳤는데 이번에는 눈길이 머물고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명절이기 때문이고 뉴스를 봤기 때문일 것입니다.

결혼 적령기의 그 젊은 여자 분들이 결혼했다면 틀림없이 아기를 그 유모차에 태우고 남편과 길을 걸었을 텐데 왜 그들은 아기 대신 개를 태우고 갈까요? 저도 독신으로 사는 신부이기에 꼭 결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개를 끌고 가지 않고 굳이 유모차에 태우고 가는 것이 개를 자기 아기처럼 여기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에 그것이 참 이상해보였던 것입니다. 그들이 혹시 아기처럼 사랑을 쏟을 대상이 필요한데 아기는 가질 수 없으니 아기 대신 개를 키우며 모성적 사랑을 쏟는 것이 아닐까? 아무래도 남자보다는 여자들에게 모성적 사랑이 더 크지 않겠습니까? 심리학적으로 인간은 크게 두 가지로 만족을 얻고, 그 만족을 얻기 위해 힘을 쓴다고 하지요. 바로 일과 사랑인데 둘 다 우리 인간에게 만족을 주는 것이지만 남자는 여자와 비교하여 사랑보다는 일에서 더 만족을 얻고 그래서 연애할 때 외에는 사랑보다 일에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쓰고, 여자는 일보다 사랑에 시간과 에너지를 더 쓰는 편이라고 하지요.

보편적으로 그렇지만 요즘은 생각들이 많이 바뀌어 여자 분들도 사랑보다는 일에 더 투신하는 분들이 많고, 일도 그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일이 아니라 삶의 가치나 의미 면에서 택하는 사람들, 일에서 성취감과 보람을 찾는 분들, ‘커리어 우먼(Career Woman)’이 되기 위해 일을 택한 분들이 많지요. 그런가 하면 경제적 이유로 연애하기도 힘들고, 또 같은 이유로 결혼도 포기한 분들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기우이거나 잘못 알고 있는 것일 수도 있는데 이들 중에 혹시 인간을 사랑하는 것이 벅차서 결혼을 하지 않고 그래서 애가 없거나 결혼을 했어도 애를 키우는 것이 벅차서 아이보다 개를 키우는 것은 아닌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사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개는 미워하지 않고 사랑할 수 있지만 사람은 미워도 하게 되고, 그래서 미워하지 않고 사랑할 수는 거의 없습니다. 그것은 개에게는 애초에 기대나 보상을 바라지 않기에 미워할 일이 없지만 인간 특히 나이 먹은 인간이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나이만큼 그리고 사랑하는 것만큼 훌륭하기를 기대하거나 뭔가를 해주기를 바라기 때문에 미워하게 되지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갓난아이나 개를 미워하지 않고 사랑할 수 있음은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고 존재 그 자체로 사랑을 하고, 그들도 존재 그 자체로 기쁨과 행복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미워하지 않고 사랑하려면 기대를 하지 않으면 되는데 그것이 쉽지 않은 것이고, 그래서 우리 인간 간에는 미워하면서 사랑하는, 그 힘들고 어려운 사랑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미워하며 사랑하는 것이 진짜 대단한 사랑인 것입니다. 개나 물건은 미워하지 않고 사랑하지만 싫어지거나 귀찮아지면 버리는 것이 이들에 대한 사랑인데 인간에 대한 사랑은 미워하면서도 굳이 붙들고 사랑하니 말입니다. 어떤 때는 미워하기 위해 사랑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우리 인간은 미움만큼 사랑하는 위대한 존재입니다.

김찬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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