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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의 마음풍경] 나만의 독창적인 직업을 만들 수 있다면

입력
2019.09.25 18:00
수정
2019.09.25 18:03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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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매사추세츠 주 콩코드에 있는 월든 호수. ©게티이미지뱅크
미국 매사추세츠 주 콩코드에 있는 월든 호수. ©게티이미지뱅크

‘월든’을 통해 여전히 전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자신의 ‘진짜 직업’을 무엇이라고 생각했을까? 그는 연필공장을 운영한 적도 있고 가정교사나 측량기사로 일한 적도 있지만 한 번도 그 직업들을 진정한 자신의 소명이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는 ‘산책자’와 ‘자연탐구자’, 또는 ‘야생화연구자’를 자신의 진짜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참신하고, 기발하며, 정말 멋지지 않은가. 세상 사람들이 괜찮은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직업, 번듯한 직장이 있는 직업이 아니라, 누가 뭐라든 그저 내가 좋은 것을 진정한 직업이라 믿어버린 것이다. ‘하버드대를 졸업한 인재가 도대체 왜 한량처럼 숲속에서 시간을 보내나’라는 식으로 소로를 무시하는 이들이 있었지만, 소로는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숲속에서 한가하게 놀고먹은 것이 아니라, 늘 무언가를 맹렬히 탐구하고, 농작물을 열심히 재배하고, 관찰과 경험을 글로 옮겨쓰며 그야말로 ‘내가 하고 싶은 일들로만 365일을 가득 채우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엘리트나 슈퍼스타의 길을 걸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용히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는 사람들의 인생 속에는 ‘개성화’를 이룬 사람들 특유의 빛나는 내공이 느껴진다. 피아니스트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던 시모어 번스타인은 어느 날 갑자기 공식발표도 없이 공연활동을 그만둔다. 심각한 무대공포증과 평론가들의 공격적인 비평으로 온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서 있는 일상으로부터 탈출하고 싶었던 것이다. ‘공연을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팬들을 실망시켜서는 안 된다’는 의무감으로, 오직 완벽만을 기하는 삶 속에는 음악을 향한 순수한 사랑이 깃들 여백이 없었다. 그는 음악을 너무도 사랑하는 자신의 첫마음을 되찾고 싶었다. 뉴욕의 작은 아파트에서 그야말로 수도승처럼 절제된 생활을 하며, 학생들에게 피아노레슨을 하고, 음악과 인생에 대한 글을 쓰며, 음악을 듣고 음악을 연주하는 삶 자체에 집중하는 그의 인생. 그의 인생 자체가 21세기 뉴욕 한복판의 눈부신 월든이었다.

버몬트에 수백만 평의 정원을 만들어 자연과 함께 하는 삶을 실천해 온 그림작가 타샤 튜더도 자기만의 직업을 개척한 사람이다. 타샤의 부모님은 매우 엄격한 가정교육과 귀족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지만, 타샤는 사교계나 댄스파티같은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만약 타샤가 부모님이 원하는 삶을 살았다면 우리는 타샤의 아름다운 그림동화책과 꽃들이 만발한 아름다운 정원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타샤가 자주 읽는 책 중의 하나도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이다. 그녀는 소로가 2년 2개월동안 실천한 ‘숲속의 삶’을 평생에 걸쳐 실천한 진정한 ‘소로주의자’가 아닐까.

나만의 직업을 만들 수 있다면 어떤 직업을 택할 수 있을까. 만약 아무도 나의 직업에 대해 굳이 왈가왈부하지 않는다면 ‘감동중독자’나 ‘눈물을 수집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감동중독자는 내가 제멋대로 지은 말이지만 내 삶을 잘 요약하는 단어다. 나는 책이나 영화는 물론 자연의 풍경이나 사소한 대화 속에서도 반드시 ‘감동적인 대목’을 찾아내어 혼자 격한 감정을 부여안고 삶의 충만함을 느끼는 순간들이 미치도록 좋다. 그리고 ‘눈물을 수집하는 사람’이 되어, 사람들이 슬픔이나 감격에 겨워, 또는 설명하기 힘든 온갖 복잡한 이유로 눈물을 흘릴 때마다, 그 눈물의 사연을 들어주고 이해하며 그들의 삶을 어루만지는 글을 쓰고 싶다. 낯선 사람에게 내밀 수 있는 버젓한 명함이 없어도 좋다. 내가 나만의 직업을 만들어 그 직업을 사랑할 수만 있다면. 내 마음의 월든을 지어 진정한 개성화에 성공할 수만 있다면. 소로가 월든호수 옆에 오두막을 지은 이유는 자연에 대한 사랑 때문만은 아니었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그 어떤 세속적인 평가도 받지 않고 오직 24시간 ‘내 마음의 목소리’를 듣는 순순한 자기집중의 삶을 살고 싶었던 것이다. 온갖 비본질적인 감정노동으로 가득한 우리네 삶에서 ‘삶이 아닌 것’은 모두 떼어내버리고 ‘내가 삶이라 믿는 것들’만 남겨두는 삶. 그것이 우리가 저마다 ‘자기만의 창조적인 직업’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정여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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