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소보로입니다.”
다양한 스타트업이 모여 있는 서울 강남구 선릉로 새롬빌딩. 지난 20일 이곳 1층에 있는 ‘소보로’ 사무실을 찾았다. 윤지현(23) 소보로 대표와 나눈 인사말이 모니터에 빠른 속도로 떴다. “자이지엔(또 뵙겠습니다)” “니 스 션머 밍쯔(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와 같은 중국어도 “再见” “你是什么名字”라는 글자로 또박또박 채워졌다.
소보로는 흔히 아는 빵 이름이 아니다. ‘소리를 보는 통로’의 줄임말로 청각장애인을 위한 인공지능(AI) 기반 실시간 문자통역 서비스다.
서비스는 소보로 프로그램을 내려 받은 뒤 말을 하면 노트북이나 태블릿 화면에 자막처럼 문자로 변환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발음이나 환경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90% 넘는 정확도를 자랑한다. 띄어쓰기나 맞춤법은 물론 어지간한 사투리도 문제없다. 말하는 사람이 노트북, 태블릿에 연결된 마이크를 사용할 경우 정확도는 더 높아진다. 한국어는 물론 영어와 일본어, 중국어 서비스도 가능하다.
윤 대표는 “사업을 시작하며 교육과 직무(직장에서의 회의 등), 병원 같은 공공서비스 등 3가지 영역에 소보로를 보급하는 걸 목표로 삼았다”고 밝혔다. 비장애인들은 피부에 와 닿지 않을 수 있지만 모두 청각장애인들이 어려움을 겪는 분야다. 이미 연세대와 고려대, 대구대 등 여러 대학교를 비롯해 서울대병원과 은행 등 공공기관 60여 곳, 100곳이 넘는 일반 기업 등 200여 개 단체가 소보로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있다.
윤 대표는 청각장애인들은 소보로를 통해 학교 수업은 물론 인터넷 강의 내용을 문자로 통역 받을 수 있다고 소개했다. 직장 회의에 적극 참여할 수 있고 노트북과 대형 스크린을 연결하면 넓은 공간에서 진행되는 강의나 강연을 듣는 것도 가능하다. 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때도 큰 도움이 된다.
물론 무료 서비스는 아니다. 이용 시간에 따라 요금이 부과된다. 개인 고객은 시간당 2,000원, 기관이나 기업은 시간당 1만원이다. 지난 해 5월 정식 서비스 출시 후 지금까지 누적 구매 시간이 1만 시간을 훌쩍 넘었다.
소보로의 탄생은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포항공과대학교(포스텍) 창업IT융합공학과 14학번인 윤 대표는 3학년 때인 2016년 ‘창의IT설계’ 강의를 들었다. 원하는 IT 제품을 기획해 만드는 수업이었다. 아이디어를 고민하던 윤 대표는 예전에 본 웹툰 ‘나는 귀머거리다’를 떠올렸다. 청각장애인 작가가 일상에서 겪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었다.
“웹툰에 ‘마치 천국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는 대사가 있어요. 초중고 시절 책상만 쳐다보며 어렵게 학창시절을 보낸 청각장애 학생이 대학에 가서 문자통역을 경험한 뒤 밝힌 소회였죠. 전 단순히 수업 프로젝트에서 끝나지 않고 사업화가 가능한 아이템을 하고 싶었거든요. 소리를 문자로 변환해주는 프로그램을 개발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윤 대표는 청각장애인을 200명 넘게 직접 만났다. 그들 요구를 소보로 프로그램에 충실하게 반영하고자 했다. 많은 청각장애인들이 “나도 어렸을 때 이런 프로그램을 썼으면 좋았을 것 같다”거나 “후배들이라도 이걸로 제대로 공부할 수 있으면 좋겠다”면서 적극 지지해줬다.
그는 2017년 휴학을 한 뒤 1년 넘는 준비 끝에 2018년 2월 시범 서비스를 내놨다. 그 해 5월에는 정식 서비스를 시작했다. 소보로는 지난 1월 투자사 ‘디쓰리쥬빌리파트너스’로부터 5억원을 투자 받았다.
소보로에는 직원이 10명 있다. 그 중 가장 나이가 어린 사람이 윤 대표다. 그는 “소보로가 여기까지 온 건 모두 팀원들 덕분”이라고 고마워했다. 그는 프로그램 개발에 가장 큰 역할을 한 최승만 CTO(최고기술책임자)를 비롯해 직원 이름을 일일이 거론했다.
소보로란 이름은 윤 대표 어머니가 직접 지어주셨다. 너무 마음에 들어 윤 대표가 즉석에서 채택했다. 그는 “어머니가 요즘 자꾸 작명료를 요구 하신다”고 웃었다.
윤 대표는 앞으로 대학교를 넘어 초ㆍ중ㆍ고등학교에 소보로 프로그램을 보급하는 데 집중할 생각이다.
“초ㆍ중ㆍ고는 대학과는 환경, 구조가 완전히 달라요. 인터넷 가능 여부, 전자기기 반입 허가 등 여러 해결할 문제가 많습니다. 대학이나 직장보다 초중고에서 먼저 청각장애인들의 수업 참여권이 보장돼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수업을 들을 때 청각장애인 학생들이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해주고 싶습니다.“
전화 통화나 자동응답시스템(ARS)을 소보로와 연동시키는 시스템도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다. 소보로는 전화에서 흘러나오는 음성을 문자로 변환해 서비스하는 어플리케이션(앱)을 개발했지만 서비스를 하지 못하고 있다. 휴대폰이나 태블릿 제조사에서 만든 앱 외에는 녹음 기능을 사용할 수 없도록 원천적으로 막고 있는 안드로이드 보안 정책 때문이다. 윤 대표는 “학생이든 직장인이든 청각장애인들이 공통적으로 가장 많이 요청하시는 것 중의 하나가 전화통화와 ARS를 쓸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라며 “해결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은 소보로 사용 시간이 누적 1만 시간이지만 앞으로 매주 1만 시간이 되는 날을 꿈꾸고 있어요. 소보로를 사용하는 시간이 늘수록 우리 사회의 소통도 더 원활해질 거라 굳게 믿고 있고요.“ 사진 촬영을 위해 회사 로고를 띄운 모니터 옆에 선 윤 대표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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