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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벨트를 가다] 광활한 땅과 기계화로 이룬 커피대국

입력
2019.09.2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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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회> 농업의 대량생산과 자연 파괴 

브라질 미나스 제하이스 주의 돈나 네넴 커피 농장. 사진 왼쪽으로 넓게 보이는 지역에는 커피가 심어져 있고, 오른쪽으로는 목초지가 펼쳐져 있다. 드론을 띄워 촬영했다. 최상기씨 제공
브라질 미나스 제하이스 주의 돈나 네넴 커피 농장. 사진 왼쪽으로 넓게 보이는 지역에는 커피가 심어져 있고, 오른쪽으로는 목초지가 펼쳐져 있다. 드론을 띄워 촬영했다. 최상기씨 제공

브라질 도착 이틀 후 상파울루와 이웃한 미나스 제하이스(Minas Gerais) 주로 가기 위해 브라질 국내선 비행기에 올랐다. 국토가 넓은 개발도상국가들이 그렇듯 브라질도 육상보다 항공 교통이 발달했다. 이웃 도시로 가는 비행 노선이 촘촘하다.

세하도 커피 산지의 농장들을 방문하기 위해 파트로시뇨라는 작은 도시에 도착했다. 차를 타고 교외로 빠지니 이내 커피 밭이 눈에 들어온다. 평평한 구릉을 따라 커피 나무들이 줄을 지어 빼곡히 서 있다. 커피 밭이 아닌 곳에는 바이오 연료 생산을 위한 사탕수수 밭과 소들을 방목해 키우는 목장이 있다. 커피와 사탕수수, 목초지가 지루하게 이어지는 풍경. 브라질은 농업과 목축업의 대국이다. 몇 시간을 달려도 끊어질 듯 이어지는 커피 나무들을 보면서 문득 이 많은 커피를 누가 다 마실까 생각해 봤다.

브라질은 광활하다. 러시아, 캐나다, 미국과 중국에 이어 면적으론 세계 5위의 대국. 남한의 85배가량 되는 엄청난 면적이다. 여기에 천혜의 토양과 기후 조건이 더해져 브라질은 농업 분야의 선진국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또 발달한 농기계 산업과 품종 개량 등 과학적인 혁신으로 농업만큼은 세계적인 수준을 자랑하고 있다.

브라질 농장의 대부분은 파젠다(Fazenda)라고 불리는 대규모 농장들이다. 넓은 농지에서 주로 기계로 수확하는 이런 농장들의 주인은 대부분 포르투갈계 백인의 후손들이다. 19세기쯤 이들의 선친은 노예와 이민자들의 풍부하고 저렴한 노동력을 기반으로 유럽과 미국의 커피 수요를 맞추기 위해 농장을 확장시켜 갔다. 드넓은 영토와 저렴한 노동력, 그리고 빠르게 증가하는 선진국 커피 수요는 브라질 커피 산업 발전의 지렛대가 됐고, 커피는 브라질 경제를 살린 구원자이자, 황금 낟알로 자리매김했다.

19세기 라티푼디아리우(대 농장주)들은 브라질의 새로운 상류 계급을 형성하고, 정ㆍ재계로 진출하면서 돈과 권력을 거머쥐었으며, 많은 면적의 삼림과 자연 상태의 들판을 농지로 개간해갔다. 여기에 농업의 기계화는 불에 기름을 붓듯 엄청난 면적의 개간과 생산량의 급격한 증가를 이끌어냈다.

그런데, 좀 더 깊게 들여다보면 브라질의 농업은 외국의 자본이 지배한다. 브라질 트랙터 제조업체들은 모두 외국인 소유다. 비료나 제초제, 종자 등도 다국적 기업들이 쥐락펴락하고, 농산품 가격은 거대 초국적 기업들에 의해 결정된다. 라티푼디움의 농장주인 브라질의 농업자본가들은 해외 자본의 중요한 협력자 역할을 한다. 초국적 기업이 생산에 필요한 요소들을 공급하는 동시에 판매를 책임지는 한편, 지주들은 그들의 영농투입재를 바탕으로 생산을 책임지는 일종의 동맹관계인 셈이다.

커피가 주로 생산되는 지역은 브라질의 남동부다. 브라질 전체 커피 생산 면적은 약 250만 헥타르로, 강원도와 경기도를 합친 면적 정도가 커피 밭인 셈이다.

과거에는 상파울루 주에서 많은 커피가 재배됐다면 요즘은 상파울루 위에 위치한 미나스 제하이스 주가 전체 생산량의 약 절반을 차지하며 브라질 커피를 대표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세하도(Cerrado), 술 지 미나스(Sul de Minas), 마타스 지 미나스(Matas de Minas) 등의 드넓은 커피 산지들이 이 주에 속해 있다. 미나스 제하이스 주에서만 매년 1,000억잔 분량의 커피가 생산되는데, 하루 17억잔을 소비하는 지구인들이 두 달 정도를 소비할 수 있는 양이다.

뒤를 이어 미나스 제하이스 주의 동쪽에 위치한 이스피리투 산투(Espirito Santo) 주가 20% 가량을 차지한다. 대서양에 인접한 저지대의 아열대 기후 조건으로 현지 명칭은 코닐론(Conilon)인 로부스가 많이 생산된다. 한때 브라질 커피의 최대 산지였던 상파울루 주의 생산량은 브라질 전체의 10% 정도로, 미나스 제하이스 주와 경계 지역에 위치한 모지아나가 중심이다. 흔히 세하도, 술 지 미나스, 모지아나를 브라질 3대 커피 생산지로 부른다.

대당 3억원 가량되는 집채만한 기계차는 브라질 농업의 대량생산 시스템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농기계. 두, 세 시간의 기계 수확으로 컨테이너 운반차에 커피 열매를 가득 채운다. 최상기씨 제공
대당 3억원 가량되는 집채만한 기계차는 브라질 농업의 대량생산 시스템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농기계. 두, 세 시간의 기계 수확으로 컨테이너 운반차에 커피 열매를 가득 채운다. 최상기씨 제공

세하도 지역의 농장주 가족은 멀리서 온 이방인을 위해 직접 농장을 돌며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드넓은 커피 농장을 돌아보려면 차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 때마침 남반구 겨울철 건기(7~8월)를 맞아 한창 커피 수확이 진행 중이었다. 집채만한 기계차가 커피 밭 사이를 느릿하게 움직이며 커피 체리를 털어내고 있다. 먼저 익은 윗부분을 수확하고, 나중에 나무 아래까지 내려가면서 수 차례 수확한다. 옆으로 기계차와 나란히 컨테이너 운반차가 이동하며 수확한 체리를 받는다. 체리와 잎사귀를 털어낸 커피나무는 가지만 앙상하게 남기고 휴지기에 들어간다.

컨테이너 안 커피는 짙은 보라색으로 완숙된 열매부터 붉은색 체리, 아직 익지 않은 초록색 열매까지 뒤섞여 있다. 운반차는 농장 내 가공 시설로 이동해 커다란 호퍼 안에 이들을 붓는다. 커피 열매의 무게와 밀도로 분류하는 설비를 지나면서 잘 익은 체리와 그렇지 않은 커피가 분류된다. 완전히 익어 물에 뜨는 체리(현지에서는 보이아(Boia) 라고 부른다)는 따로 모아 내추럴 (태양건조) 커피로 가공한다. 나머지 커피들은 물의 압력으로 커피 과육을 벗겨내는데, 벗기는 정도에 따라 펄프드 내추럴, 세미 워시드, 워시드 등으로 나뉜다. 채 익지 않은 초록색 열매는 단단해서 과육이 잘 벗겨지지 않아 따로 분리된다. 이들 미성숙 체리는 별도로 모아 주로 국내 소비용으로 판매한다.

파티오(Patio)라 불리우는 운동장처럼 넓은 마당에는 이렇게 분류, 가공된 커피들이 햇볕에 말려지고 있었다. 보통 열흘에서 2주 가량 말려 수분 함량이 20% 이하로 내려오면 대형 건조 기계에 넣어 이상적인 수분 함량(11.5~11.8%)이 될 때까지 추가적인 건조 작업을 진행한다. 이후에는 오크 통에 담아 나무로 만든 저장고로 이동하는데, 이곳에서 3개월 이상 숙성시킨 후에 탈곡하여 커피 생두로 판매한다.

대부분의 커피 수확 작업은 기계로 진행된다. 브라질은 농기계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과 노하우를 자랑한다. 과거 노예와 가난한 이민자들의 노동력은 상당 부분 기계로 대체됐다. 물론, 아직도 기계가 들어가지 못하는 경사면의 커피 수확은 사람의 손에 의존하지만, 작업자의 노동력이 차지하는 비중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이는 다른 아라비카 커피 생산국들에서는 보기 어려운 장면이다. 가파른 비탈에 위태롭게 붙어 서서 손으로 하나씩 커피 체리를 따던 과테말라 농부들의 모습과, 고사리 같은 손으로 커피 체리를 햇볕에 펼쳐 말리던 에티오피아 아이들의 모습이 오버랩 되면서 문득 국제 커피 시장에서 기계와 경쟁해야 하는 그들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브라질 커피 산업의 가장 큰 특징은 대량 생산이다. 브라질 최대 파젠다인 몬테 알레그레(Monte Alegre) 농장은 여의도 면적의 10배 정도되는 광활한 토지에 800만그루의 커피나무를 재배한다. 이렇게 대규모 농장 운영과 대량 생산이 가능해진 것은 광활한 영토와 기계 영농에 따른 것이다. 특히 브라질에서는 지금도 경작지와 목초지 면적이 계속 증가하고 있어 일부 선진국들을 비롯한 국제사회와 마찰을 빚고 있다.

브라질은 지구의 허파라 불리는 아마존 유역을 비롯해 전 세계 숲의 30%를 보유하고 있다. 지구와 이 별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를 위해 최후의 보루로 보존해야 하는 숲이 브라질에 있는 것이다. 하지만 브라질은 토지와 기후 면에서 농업을 위한 최적지이기도 해서 임야의 농지화는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브라질 도로를 달리다 보면 불에 탄 들판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화재의 원인은 여러 가지이지만 농지를 만들기 위해 일부러 불을 지르는 경우도 많은데, 때론 엄청난 면적의 삼림이 방화로 소실되기도 한다. 불에 타 황폐해진 땅은 쉽게 농지로 전용된다. 이렇게 브라질의 자연 생태계는 늘어나는 세계인들의 농축산물 수요에 맞추기 위해 조금씩 파괴되고 있다.

다행히 커피는 생산 지역의 생태계를 초토화시키지는 않는다. 사탕수수나 목축과 마찬가지로 전지구적 소비를 위해 재배되지만, 비교적 친환경적인 작물이다. 물론 생산에 많은 양의 물과 에너지 자원을 필요로 하고, 화학비료 사용으로 인한 토질 오염과 가공 처리과정에서 발행하는 수질오염 등의 위험은 있지만, 콩, 옥수수 등 플랜테이션 형태의 재배 작물들에 비하면 생태계를 위협하는 수준은 높지 않다.

그럼에도 브라질의 대규모 농장 형태의 태양 재배 방식은 우리가 즐기는 커피 한 잔을 위해 지불해야 하는 생태적인, 또는 환경적인 부담이 남는다. 에티오피아의 숲 커피나, 중미국가들에서 하는 그늘 재배 방식의 친환경적 경작에 비하면 대량 생산에 따른 후유증은 간과하기 어렵다. 다행인 것은 커피 대국 브라질에서도 커피 생산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과 더불어 친환경적인 경작을 실천하는 노력들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새로운 시도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파트로시뇨에서 북쪽으로 13시간 가량 차를 타고 가야 했다. 카파라오(Caparao)라는 곳이다.

최상기 커피프로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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