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의 ‘지니채널’(jinichannel)은 남미에서 한류 문화를 알리는 가장 유명한 영상 채널이다. 구독자 70만명을 헤아리는 이곳의 운영자는 아르헨티나에 사는 황진이씨다. 원래 아르헨티나의 주요 지상파 방송사인 텔레페(Telefe)에서 7년 동안 메인 뉴스 앵커를 한 그는 3년 전부터 유튜브 영상제작자로 변신해 방송인 시절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동생 레베카 황도 정보기술(IT) 업계에서 유명하다. 매사추세츠공대(MIT)와 스탠퍼드대학을 나와 유누들이라는 회사를 창업했던 그는 투자가로 변신해 스타트업에 전문으로 투자를 하고 있다.
마침 한국문화교류진흥원의 초청을 받아 방한한 황씨를 24일 만났다. 그는 체류 기간 동안 진흥원의 도움을 받아 한국 문화를 두루 경험한 뒤 영상으로 만들어 남미 사람들에게 알릴 계획이다.
초등학교 2학년 때인 1986년 아르헨티나로 온 가족이 이민을 가서 지금까지 살고 있는 황씨는 남미 지역에서 한국인 중 최초로 앵커가 됐다. 그는 현지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며 어렵게 살던 부모가 서툰 스페인어 때문에 크게 사기를 당해 형편이 더 어려워지자 언어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영어, 독일어 등 5개 국어를 익혔다. 어려서부터 말하는 것을 좋아해 외국어 웅변학원을 다녔던 그는 말하는 직업을 택하고 싶어 고교 졸업 후 앵커에 도전했다.
아르헨티나는 앵커가 되려면 대통령 직속 특수대학인 3년제 방송전문대학(ISER)을 졸업하고 시험을 봐서 자격증을 받아야 한다. “경쟁률이 엄청 높은 이곳에 도전한 동양인은 제가 처음이었어요.” 너무 경쟁이 심해 합격을 기대하지 않았는데 1등으로 뽑혔다. “나중에 심사위원들에게 왜 뽑았냐고 물었더니 ‘너는 완벽하지 않지만 다른 경쟁자들과 달랐고 스페인어가 현지인만큼 완벽하지 않은데도 도전한 정신을 높게 평가했다’고 하더군요.”
더불어 그는 동시에 부에노스아이레스대학에도 진학해 법학을 전공했다. “오전에는 ISER에서 공부하고 오후에 법대를 다녔어요. 그래도 ISER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아 수석 졸업했어요.”
황씨는 2000년에 앵커 자격증을 들고 텔레페의 문을 두드렸다. 직접 데모 영상을 찍어서 텔레페 보도국장에게 전달했다. 그의 도전을 기특하게 여긴 유명 방송인이었던 국장은 직접 만나 오디션을 본 뒤 바로 앵커로 채용했다. “뉴스는 정보 전달과 함께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쇼맨십이 필요하다더군요. 그런 것들을 봤나 봐요. 다음 날부터 낮 12시 메인 뉴스 앵커로 합류했어요.”
당시 아르헨티나는 밤 뉴스가 없었고 정오 방송이 메인 뉴스였는데 두 명의 앵커가 진행했다. 여기에 황씨가 합류해 3명의 앵커 체제로 바뀌었는데 높은 인기를 끌었다. “당시 아르헨티나에서는 한국이라는 나라를 아예 몰랐어요. 그래서 방송에 이름과 함께 한국이라고 국명을 같이 표기했어요. 그런 경우도 처음이었죠.” 스페인어에는 ‘ㅈ’ 발음이 없어서 그의 이름이 ‘힌쉬’로 알려져 있다.
대학에서 국제법을 전공한 덕분에 황씨는 앵커도 하며 국제뉴스팀장을 함께 맡아 외신 기사를 쓰고 직접 보도도 했다. 그렇게 앵커와 기자로 열심히 뛰었으나 방송사의 보이지 않는 벽에 여러 번 부딪쳤다. “외국인이다 보니 방송사에서 성장하는 데 한계가 있었어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건강도 해쳤죠.”
결국 정들었던 방송을 그만두고 휴식 겸 공부를 하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대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고 잠시 현지 법무법인에서 일했다. 그렇지만 그의 머리 속을 떠나지 않은 것은 영상이었다. “아르헨티나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나라 사람으로 겪었던 일에 대한 한이 있었어요. 꼭 방송이 아니어도 스페인어로 한국을 당당하게 알리는 영상을 만들고 싶었죠.”
그렇게 시작한 것이 지니채널이다. 지니채널은 스페인어로 한국의 K팝, K뷰티를 비롯해 우리말과 한글까지 가르치는 한국 관련 종합채널이다. 스페인어로 진행해서 아르헨티나를 비롯해 멕시코, 칠레, 페루, 스페인 등 남미와 유럽, 미국에서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주로 본다. “K팝을 좋아하는 남미 사람들이 우리말과 한글을 너무 배우고 싶어해요. 그래서 이를 영상으로 가르치고 있죠.”
뿐만 아니라 앵커의 경험을 살려 한국 연예가 소식을 스페인어 뉴스로 만들어 지니채널에 올리고 있다. “한국 기사를 찾아보고 이를 스페인어 속보로 전달하죠. 우리말과 스페인어를 모두 할 줄 알아 남미에서 가장 빠르게 한국 소식을 전하는 영상 채널이 됐어요.”
또 남미 지역에 홍보가 필요한 한국의 아이돌들과 웹예능 영상을 함께 만들기도 한다. “일주일에 2편 정도 영상을 올려요. 촬영과 편집까지 직접 합니다.”
영상을 만들며 황씨가 고수하는 것은 방송인 출신답게 욕설이나 막말을 하지 않는 깨끗한 영상 이다. “팬들에게도 예의를 지킬 것을 요구하고 욕설이나 막말을 못하게 해요. 비교육적인 영상을 만들지 않겠다는 원칙만큼은 끝까지 지킬 생각입니다.”
높은 인기 덕분에 남미에서 열리는 한류 관련 각종 행사에 진행자나 심사위원으로 초대도 많이 받는다. 그만큼 남미 지역에서 황씨는 한류의 대명사로 통한다. 그뿐만 아니라 아르헨티나의 전국경제인연합회에 해당하는 현지 대기업 단체인 아르헨티나 건설협회(Cámara Argentina de la Construcción)의 커뮤니케이션 담당도 맡아 기업들의 언론 관련 일도 봐주고 있다.
앞으로 그가 해보고 싶은 것은 남미의 한국 팬들을 위한 한국 안내 영상을 만드는 일이다. “K팝 덕분에 한국에 가보는 것이 꿈인 남미 사람들이 정말 많아요. 이들에게 한국 여행 하는 법을 알려주는 영상을 만들고, 거꾸로 남미에 진출하려는 연예인들과 기업들에게 도움을 주는 일을 하고 싶어요.”
최연진 IT전문기자 wolfpa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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