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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약자들이 당신을 그리워할 때

입력
2019.09.25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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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이 그렇듯 끝도 검찰에 달려 있다. 바닥으로 추락한 신뢰도보다 더 처참한 것은 이제 도저히 가까이 하기 싫은 불확실성의 조직이라는 불명예다. 사진은 중앙지검 앞 포토라인. 홍인기 기자
시작이 그렇듯 끝도 검찰에 달려 있다. 바닥으로 추락한 신뢰도보다 더 처참한 것은 이제 도저히 가까이 하기 싫은 불확실성의 조직이라는 불명예다. 사진은 중앙지검 앞 포토라인. 홍인기 기자

우리 사회에서 권력 스캔들이 터질 때마다 항상 정의의 사도 역할을 맡은 건 검찰과 경찰이었다. 특히 검찰은 독점적 기소권을 가지고 법 적용의 강약을 조절하거나, 심지어 기소권을 행사하지 않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법 적용을 무리하게 하는 과정을 통해 때로는 정의를 실천하기도 하고 때로는 정의를 짓밟는 일을 해왔다. 죄가 있는 곳에 수사가 있고 기소가 있는 안정된 검찰권 행사였다면, 검찰의 권한이 쓸데없이 크게 느껴질 일이 없었을 것이다. 죄를 구성하는 사실관계만 확정하면 인공지능으로도 대체 가능한 것이 검찰 권력이기 때문이다.

검찰 권력을 구성하는 결정적 요인은 바로 위에서 언급한 강약 조절, 즉 권력의 사유화에 있다. 아무리 큰 죄를 저질러도 기소를 하지 않을 수도 있고, 사실관계를 비틀어 죄가 아닌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조직. 심지어 죄가 없는 사람에게도 법률의 허점을 이용한 무리한 기소로 평생 지워지지 않을 상처를 줄 수 있는 권력. 검찰과 법원을 드나들어본 사람들은 얘기한다. 그것은 도무지 사람이 할 짓이 아니었다고. 설령 내가 완전히 결백하다 할지라도, 그것을 입증하기 위해 일상을 깨뜨려야 했고, 온 가족이 고통에 몸을 떨어야 했고, 진실을 마구 뒤틀려는 세력 앞에서는 너무도 무력했다고. 그보다 더 힘든 일은 없다고. 이것이 바로 검찰 권력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였다.

확실성과 모호성, 법률 적용의 자의성, 사실관계 구성의 포스트모던을 방불케 하는 창의성. 그것의 예측불가능한 앙상블은 때로는 무고한, 때로는 죄가 있지만 처벌을 회피하려는 이들의 가슴을 철렁하게 했지만, 정작 가장 큰 상처를 받은 것은 검찰 그 자신이었다. 2016년 시사IN의 ‘국가기관 신뢰도 조사’에서 검찰은 10점 만점 중 3.45점으로 최하위권이었다. 국민들은 간파한 것이다. 도무지 이해할 수도 없고 들쭉날쭉한 이 기관은, 어떠한 견제도 받지 않고 법을 제멋대로 늘렸다 줄였다 하는 건 아닐까 하는 강한 의심을 이미 국민은 갖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틀 전 일이다. 장관 임명권자의 체면을 살려주려는 것이었을까. 아니면 자리를 비웠을 때 들이닥쳐 그의 뒤통수에 강한 ‘빅엿’을 날리려는 것이었을까. 조국 법무부 장관의 자택을 뒤져 학생에게 주는 ‘표창장’ 원본을 찾기 위해 짜장면을 시켜 먹고 두 여성을 집안에 둔 채로 11시간을 헤집었다는 보도에서, 거기에 드러난 검찰의 ‘결기’에서, 나는 역설적 희망을 본다. 이러한 결기로 앞으로 권력의 심장부를 겨눈다면, 정말 검찰 개혁은 필요 없어지는 것 아닐까.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의심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과거의 검찰이 민주적이고 개방적인 권력에는 강한 비수를 들이대지만, 권위적이고 강압적인 권력에는 애완견(lap dog)이었다는 ‘추억’을 얘기한다. 스스로는 온갖 악행 의혹에 스폰서의 돌봄을 받으면서도 건재했지만, 누군가 그들의 권력에 의문을 제기하면 여지없이 짓밟았다고. 그러다가도 강압적, 권위적 정권이 들어서면 일신의 안위를 위해 충복이 되기를 자처했다고.

시작이 그렇듯 끝도 검찰에 달려 있다. 바닥으로 추락한 신뢰도보다 더 처참한 것은 이제 도저히 가까이 하기 싫은 불확실성의 조직이라는 불명예다. 이대로라면 정말, 인공지능으로 기소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지도 모른다. 폭력적인 배우자에게 시달릴 때 손 내밀어 주는 권력. 여성과 소수자가 고통받을 때 호위무사가 되어 주는 권력. 정부든 국회든 검찰 자신이든 부정부패가 있는 곳이라면 언제든 나서 결기있게 수사하고 기소하는 권력. 헌법과 법률이 규정하는 검찰의 역할을 회복한다면, 국민은 언제든 포용하고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다. 약자가 고개들어 당신을 그리워할 때, 검찰이여, 당신은 그들의 손을 잡아 줄 준비가 되어 있는가.

김장현 성균관대 인터랙션사이언스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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