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박자박 소읍탐방] 걸음마다 진한 역사의 향기, 군산 근대문화유산거리
군산 월명공원 꼭대기에 수시탑이라는 거대한 탑이 있다. 물론 대학입시에서 정시와 상반되는 개념으로 쓰는 그 수시가 아니다. 높이 28m, 직선과 곡선이 교차하며 타오르는 횃불 모양의 하얀 탑이다. 한자를 보면 뜻이 명확해진다. 수시탑(守市塔), 군산시를 지키는 탑이라는 의미다. 1968년 탑을 준공할 때는 군산 경제를 되살리자는 의미를 담아 '성시탑(盛市塔)'이라 했다가 '수시탑'으로 이름을 바꿨다. 광복 당시만해도 전국에서 열손가락 안에 꼽히는 도시의 위세를 지키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수시탑이 위치한 월명산에서 북쪽으로 내려다보면 군산 원도심과 금강 하구의 넓은 갯벌, 그 너머로 서천 장항의 모습이 나직하게 펼쳐진다.
◇1930년대로 여행, 군산근대문화거리
흔히 군산 원도심으로 불리는 금강 하구 해안 일대는 1899년 개항과 더불어 서구 열강의 조계지로 개발됐다. 대한제국은 군산 조계지가 일본에 독점되지 않도록 프랑스, 독일, 영국, 러시아 등과 공동으로 조계장정을 체결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일본제국주의의 절대적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군산시는 당시의 흔적이 남아 있는 해망동, 영화동, 장미동 일대를 근대문화유산거리로 정비했다. 관광안내소마다 ‘1930년대로의 시간여행’이라는 문구를 크게 내걸었지만, 엄밀히 따지면 개항 이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120년 군산 도심의 변천사가 응축된 곳이다.
시간여행의 시작은 2011년 개관한 근대역사박물관이다. 1층 로비에 들어서면 정면에 군산의 옛 모습을 담은 대형 흑백사진이 걸려 있다. 본정통(지금의 해망로)에서부터 격자형 도로망을 형성한 조계지에는 일본식 장옥(상가와 연립주택)과 정옥(사택 혹은 관사)이 들어섰고, 뒤편 구릉에는 조선인들이 거주한 동글동글한 초가지붕 주택이 밀집해 있다. 전시장은 ‘국제무역항 군산의 과거, 현재, 미래’를 주제로 꾸몄지만, 일제의 곡물 수탈과 1930년대 군산의 모습을 보여주는 데 가장 큰 공을 들이고 있다. 군산 원도심 여행의 예습편인 셈이다.
박물관 바로 옆에는 1908년 준공한 옛 군산세관이 자리 잡고 있다. 한국은행 본점, 서울역사와 함께 국내에 현존하는 서양 고전주의 3대 건축물로 꼽힌다. 당시 프랑스나 독일 사람이 설계하고 벨기에에서 붉은 벽돌과 자재를 수입해 지었다는 말도 있지만 확인되지는 않았다. 2017년 보수 과정에서 발견된 상량문에는 일본의 연호인 ‘메이지 41년’이라 기록돼 있다. 지붕은 고딕, 창문은 로마네스크, 현관의 처마는 영국식이어서 유럽의 여러 건축양식을 융합한 근세 일본 건축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붉은 벽돌의 색감이 빛이 바랜 듯 하면서도 뭉근해 ‘인증사진’을 찍으려는 여행객이 줄을 서는 곳이다. 1998년까지 군산세관 본관으로 사용한 건물 내부는 현재 호남관세박물관으로 꾸며져 있다.
인근에는 2개의 은행 건물도 남아 있다. 옛 조선은행 건물은 현재 전시공간인 근대건축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조선은행은 일제강점기 식민지 수탈을 위한 대표적인 금융기관으로 군산지점 건물은 1923년 건립됐다. 내부는 2층이지만 밖에서 보면 4층 벽돌 건물이다. 지금 기준으로 봐도 위압과 권위가 풍긴다. 광복 후에는 한일은행 군산지점과 예식장 등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바로 옆의 옛 나가사키 18은행 건물은 조선은행에 비하면 규모가 아담한 편이다. 이 은행의 주된 역할도 일본으로 미곡을 반출하고 일본인에 토지를 강제 매각하는 것이었다. 한때 대한통운 창고로 이용되다 2013년 본관은 근대미술관으로 단장했고, 금고였던 부속건물은 안중근 의사 여순감옥 전시관으로 꾸며졌다.
은행 뒤편에는 1930년대 미곡창고를 개조한 장미공연장과 장미갤러리가 나란히 붙어 있다. 화사하게 붉은 꽃을 피우는 장미라면 아름다운 이름이지만 이곳 장미(藏未)는 ‘쌀 곳간’라는 뜻이다. 일대는 지금도 여전히 ‘장미동’이다. 일제강점기 국내 최대 쌀 송출 항구였던 군산항의 아픈 지명이다.
근대역사박물관 뒤편 뜬다리 부두도 개항장 군산의 빼놓을 수 없는 유적이다. 금강 하구에 위치한 군산 내항은 조수간만의 차가 커 썰물이면 지금도 맞은편 장항까지 드넓은 갯벌이 드러난다. 뜬다리는 바닷물의 수위에 따라 상하로 움직이는 다리로, 물이 빠져도 배를 댈 수 있게 만든 인공구조물이다. 1926~1933년 3기를 설치해 3,000톤급 선박 3척이 동시에 접안할 수 있었다. 군산항을 통한 일제의 쌀 반출량은 1933년 179만석에서 뜬다리 부두가 완공된 직후인 1934년 228만석으로 증가해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영화동에는 조선식량영단 군산출장소 건물도 남아 있다. 조선식량영단은 중일전쟁 이후 일제가 식량 유통과 가격을 관리하기 위해 설립한 기관으로 군산출장소는 호남평야지역 쌀 수탈의 역사를 증언하는 건물이다. 모퉁이를 곡선으로 처리한 철근콘크리트 2층 건물은 여전히 단단한 외관을 자랑한다. 내부는 현재 보수 중이다.
군산 내항을 중심으로 한 해망로 주변에는 일제강점기 건축물 외에도 1973년 신축한 제일사료주식회사 공장, 1972년 지은 경기화학의 저장탱크, 1950년대부터 대를 이어 중국음식점으로 영업중인 빈해원 등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도로주소 번지수를 따 ‘군산196’이라는 간판이 걸려 있는 제일사료주식회사 건물 외벽에는 일제강점기에 지은 창고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어 독특한 분위기를 풍긴다.
◇초원사진관에서 시작된 작은 변화
영화는 잊혀졌지만 사진관은 남았다. 국내에서 영화나 드라마의 배경으로 초원사진관만큼 오랫동안 기억되는 곳도 드물다. 군산근대문화거리의 이 사진관은 1998년 1월 개봉한 ‘8월의 크리스마스’ 촬영 장소다. 무려 21년이 지나 영화의 줄거리는 가물가물하지만 초원사진관은 여전히 군산 원도심 여행자들의 ‘인증샷’ 명소다.
초원사진관은 실제 사진관이 아니라 영화 촬영을 위해 차고지를 개조한 세트다. 촬영이 끝난 후 예정대로 철거했다가 군산시에서 관광객을 위해 복원했다. ‘초원사진관’이라는 이름은 주인공 한석규가 어릴 적 살던 동네에 있던 사진관 이름을 그대로 따왔다고 한다. 현재 내부는 실제 사진관처럼 스튜디오 시설을 갖췄고, 영화 속 다양한 장면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꾸며 놓았다. 아쉽게도 초원사진관 간판을 배경으로 ‘인증샷’을 찍는 건 당분간 불가능하다. 이달 초 태풍 ‘링링’의 강풍에 훼손돼 24일 현재 간판이 떼어진 상태다. 조속히 복구하겠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지만, 군산시는 간판 제작 기법이 많이 변해 원래 모습대로 간판을 만드는 데 예상보다 시간이 걸리고 있다고 밝혔다.
조그만 영화 세트에 불과하지만 초원사진관이 몰고 온 변화는 적지 않다. 사진관 주변은 ‘영화거리’로 단장되고, 거리거리마다 카페와 식당, 공예품 가게가 들어 서서 관광객을 맞고 있다. 부근에 몇몇 흑백사진관과 셀프 사진관도 실제 영업 중이다.
인근의 ‘여미랑’은 군산시가 2012년 일본식 가옥을 복원해 만든 숙박시설이다. 한일관계가 최악인 요즘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는 않을 텐데, 시대의 아픔을 ‘잊지(悆) 않겠다(未)’는 의미를 담은 이름이라니, 일본여행을 대신하는 시설로 봐도 될 것 같다. 여미랑에는 숙박시설 외에 카페와 튀김, 일식, 피자 등을 파는 음식점도 함께 입주해 있다.
신흥동 일본식가옥(옛 히로쓰 가옥)은 체험시설이 아닌 실제 일본식 가옥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신흥동 일대는 일제강점기 부유층 거주지역으로 이 가옥은 당시 군산에서 작은 농장을 운영하던 일본인의 집이다. 정원을 갖춘 2층 목조 주택으로 영화 ‘장군의 아들’ ‘바람의 파이터’ ‘타짜’ 등을 촬영했고, 2005년 등록문화재 제183호로 이름을 올렸다.
인근의 동국사 역시 국내 유일의 일본식 사찰로 조계지 군산의 유물이다. 1909년 일본 조동종(曹洞宗) 승려가 세웠지만 현재는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 사찰이다. 일본에서 건축 자재를 가져와 지었다는 대웅전은 등록문화재 제64호로 지정돼 있다. 일본 에도시대 건축 양식으로 한국의 전통 사찰에 비하면 지붕이 가파르고 외관이 단조롭다. 대웅전 건물 뒤편의 대숲도 한국의 사찰에는 흔치 않은 모습이다. 사찰 한쪽에는 1992년 조동종 종무총장 명의의 참사문 비석이 세워져 있다. 일본제국주의의 야욕에 가담한 참회와 사죄의 글이 적혀 있다. 2015년 세운 ‘평화의 소녀상’도 묵묵히 대웅전을 응시하고 있다.
근대문화유산거리에서 서쪽 월명산 자락으로 발길을 옮기면 약 130m 길이의 해망굴이 나타난다. 1926년 수산물 집산지인 해망동과 시내를 연결하기 위해 만든 터널로 차량이 통과할 정도로 폭이 넓지만 현재는 사람만 지날 수 있다. 해망굴에서 왼편 산책로를 오르면 월명공원이다. 침엽수와 활엽수가 조화롭게 숲을 이룬 완만한 계단을 끝까지 오르면 군산의 상징 ‘수시탑’이 나타난다. 나뭇가지 사이로 숨 가쁘게 달려 온 120년 군산의 근현대사가 잔잔하게 펼쳐진다.
군산 근대문화유산거리의 주요 관광시설은 뜬다리부두에서 반경 1.5km 안에 몰려 있다. 근대역사박물관 주차장(무료)에 차를 대고 걸어서 둘러보는 게 편하다. 월명동성당 옆에도 소규모 주차장이 있다. 이곳에 차를 대면 초원사진관, 여미랑, 동국사에서 더 가깝다.
군산=글ㆍ사진 최흥수 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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