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이후 한국의 방위비(주한미군 주둔비) 분담금 규모를 결정할 한미 간 협상이 한국 측 신임 대표 없이 시작된다. 증액을 얻어내야 하는 미국의 사정이 더 급한 만큼, 한국이 인선을 서두르지 않았을 거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23일 외교부는 서울에서 24~25일 열리는 제11차 한미 방위비 분담 특별협정(SMA) 협상 첫 회의에 직전 10차 SMA 협상을 이끈 장원삼 대표가 수석대표로 나선다고 밝혔다. 후임이 임명될 때까지만 맡는 임시 대표지만 새 협상에 직전 협상 대표가 나서는 건 전례 없는 일이다. 주(駐)뉴욕 총영사로 내정된 장 대표는 11월쯤 임지로 떠날 예정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차기 회의부터는 새 대표가 협상을 총괄할 것”이라고 말했다. 새 협상 대표로는 기획재정부 관료 출신인 정은보 전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올해 3월 10차 협정문 서명이 이뤄진 지 반년이 지난 만큼 인선에 시간이 부족했던 건 아니다. 때문에 정 전 부위원장을 검증하는 과정에서 막판에 문제가 생겼거나 다른 후보가 부상했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그러나 정부가 일부러 새 대표 인선을 서두르지 않았을지 모른다는 얘기도 외교가에서는 나온다. 분담금 규모를 확대하기 위해 공세를 취할 공산이 큰 미측에 맞대응하는 대신 김을 빼려는 협상 전략 차원이라는 것이다. 10차 협정의 유효 기간이 연말까지인 터여서 원칙적으로는 연내에, 늦어도 내년 2월 말까지는 협상을 타결해야 하는 데다 분담금 액수를 대폭 올리려면 항목 추가가 불가피하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시간이 빠듯할수록 ‘총액 소폭 인상’으로 이번 협상이 마무리될 가능성이 커지는 이유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줄곧 대폭 증액 압박을 가해온 터여서 이번 분담 협상은 난항이 예상된다. 현재 미국은 지난해부터 이어진 ‘글로벌 리뷰’를 통해 분담금 산정 기준을 새로 만들며 △전략자산 한반도 전개 △한미 연합 군사연습 △호르무즈 해협 호위연합체 구성 등에 들어가는 비용을 죄다 청구서에 넣어 50억달러(약 6조원)에 육박하는 한미동맹 유지비를 최근 산출해놓은 상태라고 한다. 하지만 공정하고 합리적인 수준의 인상만 수용 가능하다는 게 한국의 기본 입장이다. 미국이 과도한 증액 요구를 할 경우 정부는 반환된 미군기지의 환경오염 정화 비용을 우리가 대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미는 올 3월 ‘분담금 총액 1조 389억원(지난해보다 8.2% 인상), 유효 기간 1년’이 주요 내용인 10차 SMA 문서에 서명했고 협정은 국회 비준을 거쳐 4월 5일에 발효됐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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