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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찰스 브래들로의 소신(9.26)

입력
2019.09.26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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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의회 의원들의 '충성 서약' 전통을 허물어뜨린 무신론자 찰스 브래들로.
영국 의회 의원들의 '충성 서약' 전통을 허물어뜨린 무신론자 찰스 브래들로.

대한민국 국회의원은 국회법 24조에 따라, 임기 초 개원식에서 “헌법을 준수하고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을 위해” 어쩌겠다는 내용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한다. 전통과 의식이 유별난 영국의 의원들은 성서를 두고 “나는 여왕의 진실되고 충직한(true and faithful) 신하가 될 것임을 엄숙히” 선서한다. 세속의 상징권력과 종교권력(성공회)에 대한 충성 서약이다.

원칙이 그렇다는 거다. 그들은 각자 신앙에 따라, 시크 경전이나 이슬람 경전을 두고 서약할 수 있고, 아예 없이 할 수도 있다. 여왕에 대한 비판도 허용된다. 노동당 상원의원 데니스 스키너(Dennis Skinner)는 “단 여왕이 소득세를 납부한다면”이란 전제를 달아 충성을 서약했고, 하원에 남겠다며 귀족 작위까지 반납한 노동당 하원의원 토니 벤(Tonny Benn)은 “열성적인 공화주의자인 나는, 이의를 제기하며, 법이 내게 요구하는 바 이 서약을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처음 반기를 든 이는 19세기의 맹렬한 무신론자 찰스 브래들로(Charles Bradlaugh, 1833.9.26~1891.1.30)였다. 성공회 핵심 교리인 ‘39개조’가 가톨릭 성경의 가르침과 다른 점을 의아하게 여겨 교구 목사에게 질의했다가 학교에서 쫓겨난 경험이 있다는 그는 세속주의(Secularism)란 말을 처음 쓴 저술가 조지 홀리오크(George Holyoake, 1817~1906)를 비롯해 여러 자유주의 사상가들의 영향을 받으며 무신론자가 됐고, 17세에 첫 팸플릿 ‘기독교 신앙에 대한 몇 가지 의문’을 썼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1860년 무신론자 신문 ‘National Reformer’의 편집장이 됐고, 6년 뒤인 1866년 ‘영국 세속주의자 협회(National Secular Society)’를 설립했다. 그는 성공회와 정부의 탄압- 불경죄, 선동죄- 을 받으며 여러 차례 구금되고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1880년 노샘프턴주 하원의원에 당선, 종교적 충성서약(Oath) 대신 세속적 맹세(Affirmation)로 대체하겠다고 맞서다 의원직을 박탈당한 채 투옥됐지만, 뒤이은 보궐선거에서 세 차례 연속 재당선되면서 1886년 자신의 고집을 관철했다. 그리고, ‘서약’ 대신 ‘맹세’를 허용하는 첫 개정법(new Oaths Act, 1888)을 마련했다. . 최윤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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