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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막달레나 수용소 문 닫다(9.25)

입력
2019.09.25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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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락한 여성들'의 강제노동 수용소인 막달레나 수용소의 마지막 시설이 1996년 오늘 문을 닫았다. 사진은 1900년대 초 잉글랜드의 한 시설.
'타락한 여성들'의 강제노동 수용소인 막달레나 수용소의 마지막 시설이 1996년 오늘 문을 닫았다. 사진은 1900년대 초 잉글랜드의 한 시설.

강제수용소라고 하면 대개 구 소련의 정치범 수용소 ‘굴락’이나 나치의 끔찍한 시설들을 떠올리게 되지만, 국가나 위임 권력이 전염병 환자나 정신 질환자, 부랑자 등을 격리 수용해 노동력을 착취하고 인권을 유린한 예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종교 권력도 예외가 아닌데, 가톨릭 교회의 ‘막달레나 세탁소’ 혹은 ‘막달레나 수용소’가 대표적인 예다. 그 수용소는 교회와 국가 권력이 판단한 ‘타락한 여성들(fallen women)’, 즉 미혼모나 윤락ㆍ불륜 여성 등을 강제로 수감했다. 1758년 잉글랜드에서 처음 세워져 아일랜드와 스웨덴 등 북유럽, 미국과 캐나다 등지로 급속히 확산됐다. 마지막 막달레나 수용소가 폐쇄된 것은 불과 22년 전인 1996년 9월 25일, 아일랜드 더블린의 한 수녀회(Sisters of Our Lady of Charity)의 세인트 메리 프로(St. Mary’s Pro) 대성당 시설이었다.

3년 전인 1993년 수녀회가 그 시설의 부지 일부를 한 주택 건설업자에게 매각했는데, 철거 공사 도중 시설 지하에서 집단 매장된 여성 시신 155구가 발굴됐다. 아는 이도 많지 않고, 알면서 쉬쉬하던 막달레나 수용소의 존재가, 죄수보다 못한 수감 실태가, 강제 노동과 성적 학대를 포함한 육체적ㆍ정신적 인권 유린 사례들이 증언 등을 통해 폭로되기 시작했다. 1998년 ‘Channel 4’ 다큐멘터리를 시작으로 여러 편의 영상과 책이 출간됐다. 아일랜드의 경우 1765년 로만가톨릭수녀회의 첫 막달레나 수용소가 건립된 이래 약 3만명의 여성과 소녀들이 수용(감금)됐고, 1922~96년 사이에도 1만여명이 끌려갔다는 국가 공식 조사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여성ㆍ인권단체의 항의 집회와 국가 및 교황청의 공식 사죄 요구가 빗발쳤다.

아일랜드 수상 엔다 케니(Enda Kenny)는 2013년 2월 의회 연설에서 ‘국가적 수치’라며 공식 사죄했다. “어떤 기준을 들이대더라도 그 행위는 잔인하고 무자비한 국가적 범죄였다. 우리는 공적 기구 뒤에 숨어서 공적인 수치심을 씻어내고자 했다.” 정부는 생존자 보상 등을 위해 3,000만파운드의 예산을 집행했다. 바티칸교황청은, 아일랜드 정부와 유엔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최윤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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