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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조국 이후’ 부모됨을 생각함

입력
2019.09.22 18:0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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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위 20% 지탱하는 ‘기회 사재기’

미국 계급세습 구조, 우리도 판박이

“나도 구조의 밑돌” 자각과 성찰을

고려대 학생들이 지난달 23일 조국 법무부 장관 딸 입시 의혹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행진하고 있다. 박형기 인턴기자
고려대 학생들이 지난달 23일 조국 법무부 장관 딸 입시 의혹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행진하고 있다. 박형기 인턴기자

“보수 부모는 아이가 일류대생이 되길 원하고, 진보 부모는 아이가 의식 있는 일류대생이 되길 바란다.”(칼럼니스트 김규항) 나는 더 뻔뻔하게 “엄마의 헌신적 조력 없이도!”란 단서까지 달았다. 웬걸, “아빠만 둘”인 처지에 가당한 일인가. 학원 끊고도 그럭저럭 성적을 내던 아이는 ‘실수 안 하는 것도 실력’이란 수험계 진리를 증명하듯 수능을 제대로 망쳤다. 각자 제 몫의 후회와 미안함과 절망에 붙들려 허우적대던 날들. 아이가 무거운 침묵을 깨고 독설을 날렸다. “엄마도 대학 간판 갖고 차별하는 사람이었어요? 기사나 칼럼 쓸 땐 안 그런 척 하더니, 이중인격자 아닌가요?”

돌이켜 보면, 저 말이 나를 살린 죽비였다. 나의 삶으로 증명할 수 없는 언어는 절대 내 것이 될 수 없음을 일러주는. 비로소 아이를 온전한 인격체로 받아들이고, 함께 타박타박 걷는 법을 배웠다. 탄탄대로는 아니었다. 돌부리에도 걸리고 막다른 골목도 만났다. 그렇게 몇 해 지나 이제 길눈 좀 트였다 싶었는데, 가시덤불이 불쑥 길을 막는다. 내 아이만 잘 품으면 좋은 부모, 좋은 어른이 될까. ‘조국 사태’가 내게 던진 질문이다.

법무부 장관 임명을 놓고 나라 곳곳이 전쟁터다. 검찰개혁으로 포문을 연 전선은 사모펀드와 입시 의혹, 과잉 보도 논란 등을 거쳐 계급과 불평등 문제로 번졌다. ‘기승전-조국 지키기 vs 까기’에 화력이 집중됐지만 전선은 단일하지 않다. 정치공학적 셈법은 내 몫이 아니고, 몇몇 사안은 사실이 명확해질 때까지 판단을 유보할 수밖에 없다. 자욱한 포연 속에서도 줄곧 눈길을 붙드는 건 계급과 불평등 문제다. 진영 싸움이나 승패를 떠나 거기에 우리 미래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미국 상위 20%의 계급 세습에 주목한 리처드 리브스의 ’20 vs 80의 사회’는 조국 사태로 드러난 우리 사회 불평등의 실상을 이해하는 데 퍽 유용하다. 계급사회 영국이 싫어 미국에 귀화한 저자는 “새 조국의 계급구조가 더 견고하다는 걸 깨닫고” 연구에 천착했다. 상위 20% ‘중상류층’이 소득과 양육, 교육, 연줄 등 가용 자원을 총동원해 구축한 안전판은 그 자녀들을 떠받치는 ‘유리 바닥’이자, 하위 80%에겐 계급 이동을 막는 ‘유리 천장’이다. 대물림을 위해 교육과 노동 시장에서 동원되는 ‘기회 사재기’ 전략은 한국사회 특권층의 그것과 놀랍도록 닮았다. 저자는 ‘기회 사재기’가 불법이든 아니든 그 자체로 경쟁의 판을 ‘조작’하는 행위라고 일갈한다.

저자의 통찰에 호소력을 더하는 건 ‘우리’라는 1인층 시점 서술이다. 당신들도, 그들도 아니고, 우리! 아무리 대중서여도 학자가 취하기 쉽지 않은 태도다. 그는 구조 바깥에서 뒷짐지고 떠드는 게 아니라, 그 한복판에 서서 ‘우리’에게 호소한다. 19세기 말 미국의 ‘진보 시대’에 불을 지핀 자기 비판을 소환해 “지금 성찰의 시기가 다시 필요하다”고, “꿈을 사재기하지 말고 함께 나누자”고.

부끄럽다. 내가 계급에 대해 아는 거라곤 사회과학 서적에 박제된 언어와 오래 전 취재한 절대빈곤층 사례 몇 가지뿐. 불평등 역시 내 힘으론 어쩌지 못하는 구조의 문제였다. 나의 직업은 “문제는 시스템이야!”라며 멀찍이 물러서 있을 구실이 됐다. 부모 자리에서도 주제넘게 남의 자식들 걱정하면 위선으로 비칠까 싶어 꺼렸다. 그렇게 우리는 내 자식 일에만 목매는 부모의 이기심에 면죄부를 줬다. 그러니 이 난리를 겪고도 고작 “누구는 안 그랬어?” 따지고, 내 자식 끌어안고 “못 해줘서 미안해” 눈물짓고, “당당하게 실력으로 대학 간 내 새끼 장하다” 외치고 만다.

그래서 해법이 뭐냐고? 섣부른 대안 타령은 유체이탈로 흐르기 십상이다. 나의 이기심이 이 구조를 지탱하는 밑돌이라는 자각이 먼저다. 존재하되 없는 것 취급했던 불평등의 실상을 끈질기게 드러내는 일이 먼저다. 거기서 새 길이 시작된다. 다시 리브스의 말이다. “나는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며 그러리라고 믿는다.”

이희정 미디어전략실장 jaylee208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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