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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영의 화해] 아토피 심한데도 몰래 불량식품 사 먹는 아이 보면 너무 속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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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영의 화해] 아토피 심한데도 몰래 불량식품 사 먹는 아이 보면 너무 속상해요

입력
2019.09.30 04:40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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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은영의 화해’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오은영 박사가 <한국일보>와 함께 진행하는 정신 상담 코너입니다.

[저작권 한국일보]일러스트=김경진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일러스트=김경진 기자

저는 열살 된 외동딸을 키우는 엄마에요.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아토피 피부염이 있었어요. 피부가 가려워서 많이 긁고, 긁고 나면 피가 나고 진물이 나 밤낮으로 아이를 돌봐야 했어요. 아이가 태어나서부터 10년이 다 되도록 아이도 저도 제대로 밤잠을 푹 잔 적이 없습니다. 여러 번 깨서 아이가 긁으면 못 긁게 막아야 했습니다. 아이는 급성 중이염이나 폐렴, 기관지염 등 잔병치레도 많았어요. 감기나 중이염은 아이가 크면서 점차 좋아졌지만 아토피는 여전히 아이와 저를 괴롭힙니다. 진물이 많이 나서 자는 애 옷을 벗겨서 갈아 입히기도 하고, 하루에 내복을 8번이나 갈아입을 때도 있어서 제대로 외출도 못할 지경입니다. 온갖 약을 다 써봐도 별 소용이 없어서 지금은 이것저것 좋다는 것은 다 해보고 있어요.

밀가루와 계란, 우유, 콩 등 음식 알레르기가 심해 어릴 때부터 음식을 많이 가려서 먹였습니다. 장보기도 일반 슈퍼마켓이 아닌 유기농이나 친환경 식품을 판매하는 곳에서 했어요. 그런데 아이가 크면서 먹는 걸로 갈등이 심해졌어요. 어릴 때는 제가 가려 먹일 수 있었지만, 이제는 저와 떨어져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학교 앞 문방구에서 파는 불량식품을 종종 사먹습니다. 먹지 말라고 혼도 내고, 타일러도 보고 해봤지만 친구들도 다 먹고, 맛있으니 제 눈치를 보며 몰래 먹습니다. 며칠 전에는 집 아래에서 몰래 과자를 먹다가 저에게 들켰어요. 그럴 때마다 저는 너무 속이 상합니다. 그렇게 먹지 말라고 뭐라 해도 매일 사 먹어요. 학교 앞에서 슬러시와 튀김을 먹고는 저녁에 벅벅 긁고 있는 아이를 보니 정말 피가 거꾸로 솟습니다. 몇 년 전에 아토피 있는 딸과 엄마가 같이 극단적인 행동을 했다는 기사를 봤는데, 정말 남의 일 같지 않았어요.

아이도 어릴 때부터 제가 먹는 것, 입는 것을 다 통제하고 간섭하니 제 눈치를 많이 봅니다. 저와 같이 있는 게 불편해 보이고요. 제가 통제해서인지 아이가 학교에서 화장실도 잘 가지 않는 것 같아요. 하루 종일 소변을 참아서 방광염이 생기기도 했어요. 여기저기 아픈 아이를 원망하면 안되지만, 아이가 왜 그러는지 화가 납니다.

이런 생활에 저도 지치고 우울해져요. 돌아가신 친정어머니는 제가 어렸을 때부터 간질과 중풍으로 많이 아팠어요. 엄마의 보살핌을 받은 기억이 없고, 중학교 2학년때부터는 휴학하고 병원에서 엄마를 돌봐야 했습니다. 5남매 중 넷째인 제가 엄마를 제일 많이 보살폈고, 결혼한 뒤에도 저희 집 옆 요양병원에 모셨습니다. 제가 엄마를 많이 돌봤지만, 다른 가족에게 불만은 별로 없습니다. 군인이었던 아버지는 멀리 떨어져 계셨어도 책임감이 강하고 현명하신 분이라 어릴 때부터 항상 존경해왔습니다. 언니들도 다 각자 사는 게 바빴고요. 아픈 엄마에 대해서도 원망보다는 안타까움이 큽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엄마 뒷바라지에 아이 뒷바라지까지 해야 하는 제 인생이 저도 가엾습니다. 아이 아빠는 저나 아이에게 잘하지만 회사 일이 많고 외국 출장이 잦아서 같이 하는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둘째도 아토피가 있을까 봐 갖지 못했고, 아이가 항상 아프니 제대로 직업을 가질 수 없었어요. 그래서 집에만 있다 보니 아이만 더 보게 되고, 우울해지고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 같습니다. 피부염이 갑자기 좋아질 것 같지는 않고 이대로 가다가는 딸과 제 관계가 망가져버릴 것만 같습니다. 제 아이를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키울 수 있을까요.

이혜선(가명ㆍ41세ㆍ주부)


혜선씨,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은 인생에서 가장 큰 의미가 있는 일이에요. 그런데 유일한 딸이 아프고 고통스러우면 그걸 지켜보는 엄마는 얼마나 걱정이 되고, 안타까울지 저 역시 부모로서 너무나 잘 압니다. 10년간 혜선씨가 하나뿐인 딸을 얼마나 지극 정성으로 돌봐왔을지도 이해합니다. 아이도 오랜 기간 심리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굉장히 힘들었을 거예요. 그래서 당신에게 “딸이 겪어나가게 그냥 아이를 내버려 두세요”라고 쉽게 말할 순 없어요. 비록 그 말이 당신에게 가장 필요한 말인데도 말이죠.

당신은 책임감도 굉장히 강하고, 사람에 대한 애정도 깊은 것 같아요. 매사 성실하고, 최선을 다해왔고요. 아팠던 친정 엄마를 다른 가족을 대신해서 돌보면서도 다른 가족들을 원망하지 않죠. 아버지를 이해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표현해요. 바쁜 남편도 넓은 마음으로 이해하지요. 그런 당신의 면면에서 저는 당신이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애정이 많은 사람이라는 게 느껴집니다. 특히 가족에게는 누구보다 잘 하고, 딸로서, 엄마로서, 아내로서, 동생으로서 도리를 다하려고 노력했어요. 그러면서도 그들에게 무언가를 바라거나 다른 의도를 가지지도 않지요.

그런데 이렇게 사람에 대해 애정이 깊을수록 사람과의 관계에 연연해할 수 있어요. 관계를 못 끊는다는 얘기가 아니라, 상대에 대한 애정이 너무나 깊어서 집착까지는 아니지만, 상대의 삶에 깊숙이 개입하고, 상대가 감당해야 할 몫까지 자신이 감당하려 해요. 당신이 아픈 엄마를 다른 가족들보다 훨씬 더 많이 돌보고, 옆에 두었던 것도 그래서일 수 있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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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게도 마찬가지예요. 물론 엄마로서 사랑하는 딸에게 무심할 수는 없습니다. 당신은 딸을 끔찍이 생각하고, 사랑하지요. 그렇기 때문에 딸과의 관계에도 연연해합니다. 너무 사랑해서 놓질 못해요. 아이가 불량식품을 사 먹었다는 걸 알고 당신은 아마도 “먹지 말라고 했는데, 그거 왜 먹었어, 그걸 먹으니깐 이렇게 가렵잖아. 다시는 먹지 마, 알았지”라고 혼냈을 거예요. 엄마 입장에서는 사랑하는 딸이 힘들어하니깐 너무 안타깝고, 다시는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하고 싶었겠지요. 그런데 만약에 “네가 그게 많이 먹고 싶었겠구나, 그런데 아토피가 있으니 저녁에 많이 가려울 것 같아 걱정이구나. 오늘은 마음껏 먹었으니깐 다음 번에는 되도록 참아보도록 하자”라고 얘기했다면 어땠을까요. 아마 혜선씨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생각하실 거예요. 제 말에 억울한 마음이 들 수도 있어요. 그러나 아이에게 연연하면 아이가 아토피가 생기는 음식을 먹고 힘들어하는 상황을 보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어 아예 먹지 못하게 하는 것에 몰두하게 되지요.

그래서 상황을 처리하고 이 과정에서 배워가는, 같은 것을 반복하면 수행이 거듭될수록 학습이 일어나서 그 다음에 비슷한 상황에서 더 나은 방법으로 해결해 나가는 것을 아이와 같이 해 나가기가 어렵지요. 혜선씨, 우리가 살면서 우리를 힘들게 하는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언제나 피해갈 수는 없지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문제가 생기면 대처하고 상황을 처리하고 해결하는 거예요. 당황하거나 겁먹지 않으면서요. 우리 부모는 아이에게 이것을 가르쳐줘야 하겠지요. 혼내거나 화내지 않고요. 이미 아이가 먹은 걸 뭐라 하기보다, 엄마로서 아이에게 자신의 상태를 알려주고, 어떻게 할지 함께 얘기했다면 어땠을까요. 이미 먹은 걸로 아이를 몰아세우면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엄마는 아이를 사랑하지만 키우는 게 힘들어지고, 딸은 엄마를 좋아하지만 엄마와 함께 있으면 불편해집니다. 서로 끔찍이 사랑하면서도요.

혜선씨, 저는 당신에게 좀 더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주고 싶어요. 우선 아이가 오랫동안 고통스러워하는 아토피 피부염은 만성질환이에요. 만성질환은 한 번에 완치되기 어렵지요. 그래서 치료의 원칙은 증상이 심해지지 않게 유지 관리하는 것이에요. 치료를 꾸준히 받아야 해요. 그런데 아토피가 있는 아이와 부모 중에 대체로 많은 분들이 치료를 받아도 단번에 완치가 되지 않고 악화와 호전이 반복되다 보니 지치고 포기하는 마음이 들고 결국 다른 사람의 경험담에 지나치게 의존합니다. 엄마인 내가 제일 잘 아는 것 같고 그래서 전문의의 치료 제안을 잘 안 받아들이고 좋다는 것을 이것저것 다 해봅니다. 예를 들어, 발에 무좀이 있을 때 곰팡이를 없애는 연고를 바르거나 항진균제를 며칠만 복용하면 되는데, 발을 빙초산에 담가 화상을 입고 몇 주간 치료를 받아야 되는 것처럼 언제나 애를 쓰고 무언가를 열심히 하지만 결국은 제대로 된 치료를 꾸준히 받지 않는 거지요. 만성질환은 전문가인 의사와 상담하고,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요.

아이가 아픈 것은 너무나 속상한 일이지만, 아픈 것 때문에 다른 부분의 문제로 이어지는 것은 막아야 합니다. 엄마와 딸의 관계, 청소년 시기에 아이에게 형성되는 자기주도성 등에 질환이 나쁜 영향을 주지 않도록 말이에요. 아이가 직접 의사로부터 증상과 경과에 대한 설명을 듣고, 치료과정에서 아이가 주체가 돼야 해요. 딸의 나이 상 엄마가 당사자인 것처럼 직접 해결하고 아이를 통제하는 것은 부적절해요. 청소년 시기에 접어들면 부모가 아닌 중립적인, 그 분야의 전문가와 얘기하는 게 도움이 많이 됩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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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구체적인 조언을 드리자면 음식과 관련한 목록을 만들어보세요. 먹으면 안 되는 음식 목록과 마음껏 먹어도 되는 음식 목록을 준비해서 아이에게 ‘무조건 먹지 마’라는 메시지보다 ‘이것 외에는 마음껏 먹어도 돼’라는 메시지를 전달해 보세요. 아주 구체적으로 음식의 종류와 식품의 브랜드까지 세세하게 적어주면 아이의 선택 폭은 더 커질 겁니다. 인간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누구에게나 먹는 행위가 중요하지요. 아이에게 먹는 게 부정적으로 느껴지지 않도록, 먹을 수 있는 범위를 만들어주는 게 도움이 될 수 있어요.

딸은 초기 사춘기를 앞두고 있어요. 통제 받기 싫고, 지나치게 주도적이고 싶어하지요. 유아기 때에는 부모가 관리해주는 게 맞지만, 이 시기에 아이들은 스스로 조절하고 판단하는 게 중요합니다. 아이가 부모가 자신이 먹는 음식을 다 제한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을까요. 아이의 성장에 따라 부모도 달라져야 합니다. 알레르기가 일어나는 음식을 알려주고, 먹어도 알레르기가 안 생기는 음식을 알려주면 됩니다. 딸을 걱정하는 마음은 십분 이해되지만, 과도하게 아이가 먹는 것을 통제하고 제재하면 안됩니다. 통제할수록 아이는 더 먹고 싶어지기 마련이에요. 이런 노력만으로도 딸과의 관계가 훨씬 좋아질 수 있어요.

딸을 돌보는 것과 동시에 스스로도 당신의 내면을 돌봤으면 좋겠어요. 당신은 어쩌면 가까운 가족을 돌보는 걸로 당신의 정체성을 유지해왔던 게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봐요. 스스로 고생하고 힘들고, 심지어 희생하면서도 아픈 가족을 돌본 것은 어쩌면 당신이 의식하지 못하는 저 내면에 그렇게 함으로써 긍정적 자아정체성이 생기고, 강화됐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소중하고 사랑하는 가족을 돌보는 것이 당신에게 엄청나게 큰 의미가 있기 때문에 당신은 더더욱 가족을 위해서 희생하고, 그들의 삶에 과도하게 개입할 수 있어요.

당신이 딸에게 좋고, 훌륭하고, 희생적인 엄마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어요. 다만 아이가 성장하고 있으니, 그 속도에 맞춰 당신도 변화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아토피 문제가 아니라 아이가 성장과정에서 형성돼야 하는 것들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아 다른 문제로 이어질 수 있어요. 아토피가 있지만 딸의 잔병치레는 줄었고, 아이는 약하지 않습니다. 생활이 불편하지만, 건강하지 않은 건 아니에요. 엄마가 건강에 너무 몰두돼 있으면 아이 스스로가 건강이 안 좋고, 아픈 사람이라고 부정적으로 생각해요. 우리는 살면서 별의별 상황에 다 맞닥뜨려요. 그런 상황을 늘 부모가 나서서 해결해줄 수 없습니다. 부모는 아이가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길을 알려줘야 해요. 문제를 설명해주고 대처방법을 알려주고,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잘 가르쳐줬으면 좋겠습니다. 아토피 역시 엄마가 도와줄 부분이 여전히 많겠지만, 아이 스스로 보습제를 바르고, 음식을 가려 먹고, 조절해보는 그런 시행착오를 겪게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정리=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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