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증환자 비율 제한 등 복지부 대책에 불만 표시
“솔직히 경증환자를 보지 않으면 병원운영이 어려워질 겁니다. 경증환자를 보지 않는다고 없던 중증환자들이 오지도 않을 거고요….”.” (A상급종합병원 관계자)
감기ㆍ몸살 같은 경증환자들이 상급종합병원(대학병원)으로 몰리는 현상을 억제하기 위해 보건복지부가 이달 4일 발표한 ‘의료전달체계 개선 단기대책’에 대해 상급종합병원들이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환자 쏠림 현상이 극심한 5대 대형병원(삼성서울ㆍ서울대ㆍ서울성모ㆍ서울아산ㆍ세브란스병원)들은 “예측할 수 없다”며 말을 아끼고 있지만, 다른 상급종합병원과 상급종합병원 지정 신청을 준비하고 있는 병원들에서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복지부 대책에 따르면 상급종합병원들은 내년부터 외래환자 중 중증환자의 최소 비율을 21%에서 30%로 높이고, 경증환자의 최대 비율은 17%에서 11%로 낮춰야 한다. 하지만 경증환자들의 외래진료로 쏠쏠한 수입을 올렸던 상급종합병원들은 이 요구가 지나치게 가혹하다고 주장한다. 서울의 한 상급종합병원 교수는 “빅5 병원 이외의 상급종합병원들은 중증환자보다 경증환자 치료에 집중해 병원을 운영해 온 것이 사실”이라며 “기준이 강화되면 42개 상급종합병원 중 20개 이상이 탈락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경기도의 한 상급종합병원 관계자는 “상급종합병원 지정에서 탈락하면 그동안 받고 있던 종별가산료도 받지 못해 막대한 손실을 입게 될 것”이라고 불안해 했다. 상급종합병원은 종별가산료라는 명목으로 의원이나 병원에 비해 높은 건강보험 수가를 받고, 의료질평가지원금으로 연 100억원 정도를 지원받는다.
물론 이들도 상급종합병원이 중증환자 치료에 집중해야 한다는 정부 취지에는 공감한다. 하지만 중증환자를 늘리고 경증환자를 축소하는 일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이 이들의 불만이다. 암 같은 중증질환 진단을 받으면 환자들이 일단 ‘빅5 병원’으로 발길을 돌리는 현실에서 상급종합병원 지정의 문턱을 높이면 빅5 병원을 제외한 나머지 병원들은 경영압박을 받고, 이미 중증 환자 비중이 높은 빅5의 위상이 더 강화된다고 주장한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중증환자를 늘리고 경증환자를 줄이기 위해 병원들이 편법을 동원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서울의 한 상급종합병원 관계자는 “감기로 외래를 찾은 환자에게 위장약을 추가로 처방하면 경증인 감기환자를 중증인 급성위염 환자로 둔갑시킬 수 있다”면서 “외래 치료가 충분히 가능한 항암치료 환자나 말기 암환자를 입원시켜 중증환자 비중을 높이려는 편법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경실 복지부 의료정책과장은 “만약 이런 일이 발생한다며 정부 차원에서 편법을 가려 낼 수 있는 검증을 실시해 해당병원에 불이익을 주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면서 “상급종합병원이 경증환자를 보면서 종별가산료를 받는 현재 상황은 중증환자를 전문적으로 치료하라는 상급종합병원 지정 취지와 부합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환자들의 반응도 엇갈린다. 지난 7월 정형외과 의원에서 목 디스크 판정을 받아 대학병원에서 자기공명영상(MRI) 검사를 받아야 하는 직장인 김모(45)씨는 “7월에 의원에서 진료의뢰서를 받아 상급병원에 갔지만 MRI 검사 예약이 밀려 12월에나 촬영이 가능하다고 했다”며 “상급종합병원에서 경증환자들이 줄어들면 나 같은 사람이 득을 볼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20년 이상 한 상급종합병원에서 고혈압과 심부전 치료를 받고 있는 박모(78)씨는 “의사에 대한 신뢰가 없는 상황에서 무조건 만성질환이니 동네의원을 이용하라는 것은 환자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것”이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김윤 서울대 의료관리학과 교수는 “의료계가 자기방어 논리에 집착하지 말고 (의료전달체계 정상화라는) 장기적 차원에서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치중 기자 cj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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