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정·재계 참여 ‘SK의 밤’ 행사
“지정학이 비즈니스 뒤흔들어… 앞으로 리스크 30년은 더 갈 것”
향후 3년 100억달러 美투자 계획… 日 규제 대응 공급선 다양화 강조”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19일(현지시간) “내가 SK 회장을 한 지 20년 동안 이런 지정학적 위기는 처음 맞는 것 같다”며 최근 잇따르는 국제정치적 갈등 사안에 대한 우려를 드러냈다.
최 회장은 이날 미국 워싱턴 DC 소재 SK워싱턴 지사에서 열린 ‘SK의 밤’ 행사에서 한국 언론 특파원들과 만나 “지오폴리틱스(Geopolitics•지정학)가 이렇게까지 비즈니스를 흔든 적이 없었다”며 이 같이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이게 새로운 세상으로 가는 것이라면 단순하게 끝날 것 같지 않으니까, 여기에 적응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면서 “지정학적 리스크가 앞으로 30년은 더 갈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긴장이 치솟고 있는 중동지역의 위험요소와 유가인상 조짐에 대한 견해를 묻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지만, 해외에 나온 대기업 총수로서 최근의 국제정세 불안 상황을 놓고 ‘유례없다’는 의미를 담은 발언을 해 이목이 쏠렸다.
최 회장의 이 발언은 일본의 수출 규제조치에 따른 한일 경제 전쟁, 미중 무역 전쟁, 북핵 문제 등 한반도 주변에 산적한 국제 갈등 현안뿐만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시설 피격에 따른 중동 위기 등으로 기업 활동이 전례 없는 리스크에 노출돼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SK 그룹의 경우 SK하이닉스가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 조치의 사정권에 들어 있고, 국내 최대 정유사인 SK 이노베이션은 중동 위기에 따른 유가 상승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
최 회장이 지정학적 위기를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최 회장은 지난해 11월 열린 SK의 밤 행사에서도 “세상의 지정학이 이만큼 비즈니스에 충격을 준 적이 없었다”며 “이제는 지정학을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당시는 미중 무역 전쟁을 염두에 둔 발언이었으나, 10개월만에 한일 경제 전쟁에다 중동 위기까지 겹치며 지정학적 위기 요인은 더욱 커진 상황이다. 지정학은 지리적 조건과 국제정치간 관계를 연구하는 분야로 한반도의 경우 지리적 위치가 미중의 세력권이 충돌하는 지대여서 지정학적 갈등 요인이 상존해 있는 셈이다. 최 회장이 지정학적 리스크를 30년 이상으로 내다본 것도 미중 패권 경쟁이 그만큼 장기화할 것으로 본다는 뜻으로 이에 대한 적응을 향후 기업 경영의 중요한 방향으로 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 회장은 이날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에 대해선 “물건을 안 팔면 다른 데서 구해와야 한다”면서도 “(일본이) 중요한 부품은 그렇게 할 수 없을 거로 생각한다. 그랬다가는 글로벌 공급망이 다 부서지고 우리만 피해가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 고객, 그 뒤의 고객들이 다 문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그는 부품 국산화에 대해선 “국산화라는 단어보다는 ‘얼터너티브 웨이(alternative way)’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해야 된다”라며 여러 나라와의 협업을 통한 부품 공급망 다양화에 무게를 두면서도 “국산화를 배제한다는 얘기는 아니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이날 환영 인사를 통해 “최근 3년간 미국에 50억 달러를 투자했고 향후 3년간 100억 달러를 추가 투자하겠다”면서 미 정부 및 기업과의 파트너십을 더욱 확대하겠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코리아 세일즈’ 차원에서 처음 열린 데 이어 올해로 두번째 맞은 이날 SK의 밤 행사에는 캐런 켈리 미국 상무부 차관, 하원 법사위 간사인 더그 콜린스 공화당 하원 의원, 프랭크 루사크 공화당 하원의원, 데이비드 스미스 싱클레어그룹 회장, 조윤제 주미대사 등 미 정•관계 및 재계 인사 등 250여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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