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 연구진은 동물실험을 통해 침술로 알코올의존도를 낮출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도파민이라 불리는, 생명체에 쾌감을 일으키는 물질의 분비량이 침을 어떤 경혈에 놓느냐에 따라 달라져 알코올의존도가 변화됐다. ©게티이미지뱅크

과학계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지 않지만 사회에서는 꾸준히 폭넓게 관심을 받고 있는 분야가 있다. 한의학이다. 어린 시절, 몸이 아파 침을 맞으러 한의원에 가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이후 개인적으로 서구 과학의 개념과 성과에 익숙해지고, 주류 의학계에서 한의학이 차지하는 비중이 그리 크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래서 세대가 지날수록 한의원을 찾는 사람이 많이 줄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정확한 통계는 모르겠지만 당장 거리에서 병원 간판을 보면 한의원이 꽤 눈에 띈다. 마침 이달 초 국내 한의학계의 흥미로운 성과를 잇달아 접하면서 그 학문적 위상이 상당히 높아진 것 같은 기분도 든다. 새삼 어린 시절부터의 궁금증 하나가 다시 떠오른다. 도대체 침을 몸의 어느 부위에 놓는 것일까.

한의학 용어는 일상에서는 매우 익숙하지만 서구 과학의 개념으로는 좀처럼 이해하기 어렵다. 단적으로 경락이란 말을 들어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우리 몸 내부를 상하로 이어주는 경맥, 그리고 좌우로 연결하는 낙맥을 합친 단어이다. 침을 놓는 자리인 경혈은 경맥 곳곳에 분포한다. 인체에 주요 경맥이 수십개가 있고, 경혈은 400개가 넘는다고 한다. 모든 경맥과 경혈에는 고유의 기능을 반영하는 이름이 있다. 이렇게 많은 기능 부위가 실제로 있다면, 현대 과학계에서 당연히 그 정체가 규명돼 있지 않을까. 아쉽게도 속 시원한 답이 없다.

최근 국내 연구진은 동물실험을 통해 침술로 알코올 의존도를 낮출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비슷한 연구가 과거에도 많이 진행됐지만, 이번에는 미국의 권위 있는 ‘사이언스’의 자매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서 표지논문으로 채택됐기에 관심이 컸다. 알코올 의존증에 걸린 쥐의 앞발목 안쪽(사람으로 따지면 손목 안쪽)에 있는 특정 경혈에 침을 놓자 손발이 떨리는 금단현상이 크게 줄어들었다고 한다. 이와 달리 앞발목 바깥쪽의 경혈에 침을 놓자 효과가 거의 없었다.

효과의 증거는 서구 과학계의 용어로 제시됐다. 도파민이라 불리는, 생명체에 쾌감을 일으키는 물질의 분비량이 침을 어떤 경혈에 놓느냐에 따라 달라져 알코올 의존도가 변화됐다. 매우 흥미로웠다. 물론 후속연구가 필요하겠지만, 그동안 심각한 사회문제로 여겨지던 난치성 증상이 간단해 보이는 침술로 치유될 가능성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궁금증도 커진다. 특정 경혈에 주어진 침의 자극은 특정 경맥을 따라 전달돼 치료효과를 일으켰을 것이다. 그렇다면 상식적으로 경혈과 경맥은 물질적 실체이지 않을까. 이번 연구와는 관련이 없지만, 한의학계의 성과를 접할 때마다 떠오르는 질문이다. 한동안 여러 나라에서 경락의 물질적 실체에 대한 연구가 진행됐지만 대부분 신경계 반응의 결과라든가 딱히 물질로 특정하기 어렵다는 설명뿐이었다. 알 듯 모를 듯하니 때로는 답답하기까지 하다.

진맥의 객관적인 지표가 개발됐다는 소식도 들렸다. 진맥은 한의사가 환자의 손목을 잡고 맥의 세기나 깊이를 감지해 건강상태를 파악하는 행위이다. 당연히 한의사의 능력에 따라 진맥의 정확도가 달라진다. 국내 연구진은 7개 센서가 장착된 맥진기를 개발, 월경통을 겪는 여성 환자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 영국의 전문지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발표했다. 눈길을 끌면서도 진맥이 경락과 어떤 연관성을 가지는지 궁금해지는 성과였다.

얼마 전 보건복지부는 ‘한의약 세계화 지원단’을 모집한다고 발표했다. 높은 수준의 국내 한의학을 해외에 전파한다니 환영할 일이다. 동시에 경락의 근본적 실체를 비전문가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성과가 하루빨리 나오기를 기대한다.

김훈기 홍익대 교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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