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피아니스트 버드 파웰이 1958년 12월 블루노트 발매 음반 '더 신 체인지스' 녹음을 앞두고 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리허설을 하고 있다. 태림스코어 제공
블루노트: 타협하지 않는 음악
리처드 하버스 지음ㆍ류희성 옮김
태림스코어 발행ㆍ404쪽ㆍ4만8,000원

재즈나 블루스에서는 장음계 미와 시에서 반음을 낮춰 연주하거나 노래한다. 아프리카 고유 음계의 영향으로 해석된다. 음은 영어로 ‘노트(Note)’. 미와 시를 반음 낮추는 재즈와 블루스 특유의 음계를 블루노트라고 한다.

블루노트는 재즈를 대변하는 용어이면서 재즈 전문 레이블 회사의 명칭이기도 하다. 미국 음반사 블루노트는 명문이라는 수식만으로는 부족함이 느껴질 정도로 숱한 명반들을 쏟아냈다. 트럼페터 마일스 데이비스, 색소포니스트 존 콜트레인, 오네트 콜맨, 피아니스트 호레이스 실버, 버드 파웰, 허비 행콕, 드러머 아트 블래키, 보컬리스트 다이앤 리브스, 카산드라 윌슨, 노라 존스 등 재즈의 큰 별들이 이곳에서 재즈 역사에 남을 음반들을 냈다. 20세기 중반부터 재즈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던 블루노트가 올해로 설립 80주년을 맞았다. 책은 블루노트의 80년 역사를 꼼꼼히 되짚는다.

1957년 7월 21일 재즈 피아니스트 소니 클락(왼쪽)과 블루노트 설립자 앨프리드 라이언이 담소를 나누고 있다. 태림스코어 제공

블루노트의 근원은 미국이 아닌 독일 베를린이다. 설립자 앨프리드 라이언과 동업자 프랜시스 울프는 원래 독일인으로 베를린에서 재즈에 대한 사랑을 키웠다. 두 사람이 나치의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오기 전까지 베를린은 재즈의 도시였다. 나치는 ‘흑인 문화에 반대하는 법령’을 통해 흑인 연주자가 대부분이고, 유대인 매니저가 다수인 재즈 공연을 막았다. 먼저 미국에 도착한 라이언은 무역회사에서 일을 하며 재즈 음반 녹음에 나섰다. 1939년 3월 3일 블루노트 이름으로 피아니스트 앨버트 에먼스와 미드 룩스 루이스의 녹음물이 발매됐다. 블루노트 신화의 시작이었다. 같은 해 10월 베를린에서 재즈로 교감했던 친우 울프가 독일을 빠져 나와 뉴욕에 도착했다. 울프는 라이언의 아파트에 기거하며 라이언과 블루노트를 운영했다.

블루노트는 1953년 프로듀서 루디 반 겔러를 영입하면서 도약대를 마련했다. 검안사 출신 겔러를 통해 따스하고 생생한 음향이 만들어졌다. 울프는 음반 표지 사진으로 힘을 보탰다. 여성이나 꽃으로 표지 사진을 쓰곤 하던 당시 재즈 음반업계의 트렌드와 달리 재즈 아티스트의 개성을 담은 사진들을 활용하며 다른 레이블과 차별화했다. 재즈 애호가가 아니더라도 한 번쯤 봤을 표지 사진 대부분이 울프의 솜씨였다. 유명 잡지 에스콰이어에서 영입한 그래픽디자이너 리드 마일스는 독특한 표지 서체를 선보이며 블루노트의 개성을 만들었다. 블루노트를 명문 레이블로 만든 요인은 무엇보다 재즈를 향한 라이언과 울프의 뜨거운 사랑이었다. 유명 연주자와 가수를 블루노트 녹음실로 끌어들인 매우 강한 자장이었다.

강진구 기자 realn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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