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 미성년ㆍ연소자 자산가 147명 동시 세무조사
부동산 임대업자 A씨는 보유하고 있던 역세권 꼬마빌딩을 계약금(양도금액의 5%)만 받고 만 3세 손자에게 양도했다. 임차인에게 돌려줘야 할 보증금(15%)를 더해도 손자의 부담은 거래 금액의 20%에 불과했다. 국세청은 앞선 세무조사에서 이 거래를 부동산 편법 증여로 보고 수억원대 증여세를 추징했다.
국세청이 이처럼 자금 출처가 불분명한 ‘어린 부자’에 대한 전국 동시 세무조사에 착수했다고 19일 밝혔다. 미성년자를 포함한 30세 이하 연소자 147명이 대상으로, 대부분 고액 자산가인 부모나 조부모가 자녀ㆍ손주 이름으로 고가 부동산이나 금융상품을 취득하는 방식으로 편법 증여를 한 경우다. 이번 조사 대상에는 만 5세 미취학 아동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익 빼돌리기(터널링)를 통해 세금을 피한 72명도 동시 세무조사 대상에 포함된다.
조사 대상 219명의 평균 재산은 419억원(주식 319억원, 부동산 75억원, 예금 등 기타자산 25억원)으로 이 중 재산 규모가 1,000억원 이상인 사람만 32명에 달한다.
30세 이하 부자의 경우 본인 명의 재산이 1인당 평균 44억원이고, 가족 총재산을 기준으로 하면 평균 111억원에 이른다. 직업별로는 무직이 16명, 학생 및 미취학 아동이 13명이고 나머지 118명은 사업자나 근로소득자다.
이번 조사에는 성형외과 의사가 비보험 수입을 빼돌려 조성한 자금을 미취학 자녀의 이름으로 고금리 금융상품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증여한 사례, 제조업자인 아버지가 ‘꼬마빌딩’ 여러 채를 20대 초반 자녀와 공동명의로 취득한 사례 등이 포함됐다. 국세청은 앞선 조사에서 부동산 임대업자인 아버지가 10대 아들에게 빌딩을 증여하면서 시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신고한 사실을 적발해 30억원대 증여세를 추징하기도 했다.
국세청은 차명 회사를 이용해 회사 자금을 유출하거나, 협력회사와의 거래 중간에 자녀 회사를 끼워 넣어 ‘통행세’를 받는 등 터널링 수법의 탈세도 조사한다. 터널링이란 회사 이익을 사주 일가 등 지배주주에게 땅굴을 파듯 은밀하게 빼돌린다는 의미다.
앞서 국세청은 제조업을 하는 B사가 상표권 지분을 사주의 부인에게 무상 양도한 뒤 매년 수십억원대 상표권 사용료를 지급하다가 다시 높은 가격에 상표권을 되사는 방식으로 법인 자금을 유출한 사실을 적발하고, B사와 사주 부인 등에게 법인세, 소득세 등 약 300억원을 추징했다.
이준오 국세청 조사국장은 “은밀한 이익 빼돌리기는 세 부담 없는 부의 이전으로 국가 재정을 잠식할 뿐 아니라 투자자들에게도 막대한 손해를 끼친다”며 “빼돌린 자금이 미성년 자녀의 자산 취득 등 비생산적 분야로 유입되면서 경제 활성화까지 저해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말했다.
세종=박세인 기자 sa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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