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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은 없다, 종이책은 있다… 네 가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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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은 없다, 종이책은 있다… 네 가지가

입력
2019.09.19 18:00
수정
2019.09.19 23:23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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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 십계명 구절을 담고 있는 양피지 두루마리. 기원전 30년에서 기원전 1년 사이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가장 오래된 사본 중 하나다. 김영사 제공
구약성경 십계명 구절을 담고 있는 양피지 두루마리. 기원전 30년에서 기원전 1년 사이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가장 오래된 사본 중 하나다. 김영사 제공

20여년 전 나온 전자책은 종이책의 소멸을 예고했다. 그런데 여전히 종이책은 건재하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인 스태티스타(Statista)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안 미국에서 판매된 종이책은 6억9,500만권으로 전년(6억8,700만권) 대비 1.1% 증가했다. 반면 전자책 판매량은 같은 기간 3.6%가 줄었다. 국내에서도 전자책과 오디오북 등 다양한 전자기기를 활용해 책을 읽는 사람들이 늘어나고는 있지만 출판 시장의 대부분은 종이책이 차지하고 있다.

편리함을 앞세운 전자책의 강공에도 종이책이 굴하지 않고 꿋꿋이 버틸 수 있는 이유는 뭘까. 뉴요커와 파이낸셜타임스 등 해외 유수 언론에 글을 기고해 온 작가 키스 휴스턴은 종이책이 갖고 있는 활성(活性)에 주목했다. 저자는 “종이책은 종이와 잉크, 판지, 풀로 이뤄진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장치로서, 이제껏 우리와 함께했고, 우리가 오랫동안 신뢰해 온 유형의 물건”이라며 “종이책은 질량과 냄새가 있고, 책꽂이에서 꺼내면 손에 들리고, 내려놓으면 쿵 소리를 내는 묵직하고 복잡하고 매혹적인 공예품”이라고 칭송한다.

종이책의 아날로그적인 감성만으로는 책의 수명을 연장시킬 수 없다. 저자는 책을 구성하는 네 가지 요소인 종이와 본문, 삽화, 형태로 나누어 각각의 역사를 파헤친다. 지식 전달 매체로서 책의 가치를 얘기한 책은 많았지만, 있는 그대로 우리가 보는 종이책의 요소요소를 이토록 깊게 파고든 책은 흔치 않다. 사물로서의 책의 탄생과 역사를 되짚으면서 저자는 책의 수명을 가늠한다.

7세기 말 영국에서 제작한 세인트 커스버트 복음서는 유럽에서 제본한 현존하는 책 가운데 가장 오래된 공예품이다. 2012년 책은 1,400만달러(약 170억원)에 팔리면서 세계에서 두 번째로 비싼 책이 되었다. 김영사 제공
7세기 말 영국에서 제작한 세인트 커스버트 복음서는 유럽에서 제본한 현존하는 책 가운데 가장 오래된 공예품이다. 2012년 책은 1,400만달러(약 170억원)에 팔리면서 세계에서 두 번째로 비싼 책이 되었다. 김영사 제공

결론부터 말하면 네 가지 요소가 만들어낸 책의 활성은 전자책으로 쉽게 대체될 수 없다. 기원전 4,000년대 말 고대 이집트에서 발명된 파피루스에서 시작해 동물 가죽을 벗겨 만든 양피지가 파피루스를 밀어내고, 고대 중국에서 105년 무렵에 식물 섬유를 찧어 말린 종이가 나오기까지 4,000년이 넘게 걸렸다. 순결하고 우아한 양피지에 비해 거칠고 보잘것없는 재료로 만들어진 저급한 재료로 종이를 인식했던 유럽에서 종이가 대중화한 것은 산업혁명으로 인한 기계 발달 덕분이다. 종이는 하얘지고 매끄러워졌다. 책의 주요 구성요인인 본문, 즉 글의 역사도 눈물겹다. 점토판에 문자를 새겨 넣던 고대에서부터 파피루스, 비단, 대나무 등에 기록을 남기고, 종이에 옮겨 적는 필사의 시대를 거쳐, 인쇄 기계로 대체되기까지 수천 년이 걸렸고, 수많은 이들이 각고의 노력을 다했다. 서양 최초로 활판인쇄술을 개발한 요하네스 구텐베르크(1394~1468)가 제한된 제작비 때문에 성경의 뒷부분을 행을 늘려 찍은 ‘42행 성경’ 등의 이야기 등도 흥미롭다. 중국 불교계가 부처상을 많이 만드는 바람에 동전을 주조할 원자재가 바닥나 지폐를 만들어 내면서 삽화 기술이 발달했고, 책이 직사각형이 된 것은 벗겨낸 동물 가죽이 직사각형에 가까워서였다는 점도 새롭다. 역사의 발명품인 종이책은 한 명의 우연한 발견이 아니라 다수의 끊임없는 진보의 결과물이었다.

책의 책

키스 휴스턴 지음ㆍ이은진 옮김

김영사 발행ㆍ596쪽ㆍ2만4,800원

‘책의 책’(원제 The Book)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살아온 책 그 자체에 대한 오마주다. 의도적으로 표지에 판지를 그대로 노출하고 사용한 종이, 인쇄기, 서체 등의 구체적인 정보를 깨알같이 넣은 책의 구성마저도 책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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