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승균 전 총경 “범인 존재 잊지 않기 위해 ‘악마’라 부르겠다”
역대 최악의 장기 미제 사건으로 꼽히는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를 경찰이 특정한 가운데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가 범인에게 쓴 편지가 재조명되고 있다. 이 편지는 2006년 한 월간지를 통해 공개됐다.
당시 화성연쇄살인사건 수사팀장이던 하승균(73) 전 총경은 편지에서 범인을 ‘악마’라 불렀다. 하 전 서장은 범인의 존재를 잊지 않기 위해 본인이 붙인 이름이라고 했다.
그는 편지에서 밤낮으로 범인을 잡기 위해 헤맸던 일, 과로로 반신불수가 된 후배 등을 언급하며 “그런 중에도 자네는 우리를 비웃기라도 하듯 유유히 추가 범행들을 저질러 갔어. 왜 그랬나”라고 물었다. 하 전 서장은 편지 말미에 자신이 아니라도 후배들이 범인을 반드시 잡을 것이라며 “부디 나보다 먼저 죽지 말게. 우리 꼭 만나야지. 안 그런가?”라고 했다.
편지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확산되면서 “유력 용의자 특정 소식 듣고 어떤 심정이셨을까. 평생의 한이었을 텐데”(sr*****), “점잖은 편지글이지만 그 안에 뼈저린 분노가 느껴진다”(hl***) 등 하 전 총경의 심정을 공감하는 누리꾼 반응이 잇따랐다.
화성연쇄살인사건 범인을 추적해왔던 하 전 총경은 2006년 2월 전북 임실경찰서장을 끝으로 퇴직했다.
그는 지난 8월 유튜브 방송 ‘김복준 김윤희의 사건의뢰’ 출연해 화성연쇄살인사건을 언급하기도 했다. 하 전 서장은 “이 방송에 나오게 된 이유는 (범인을 잡는 것이) 지금도 역시 내 일생에 못 이룬 꿈이기도 하고 지금이라도 비록 공소시효는 지났지만, 이런 방송을 통해서 또 다른 제보가 있다든지 그러면 어떤 개인적인 소망도 이루어지지 않을까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록 법적으로는 처벌을 못한다 하더라도 (범인에게) 반드시 이 세상에 정의가 존재한다는 걸 알게 해 주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1986년 9월 15일부터 91년 4월 3일까지 경기 화성 일대에서 여성 10명이 피해를 당한 화성연쇄살인사건은 2006년 마지막 사건의 공소시효가 완료됐다. 하지만 경찰은 미제수사팀을 꾸려 조사에 나섰고 용의자를 특정할 수 있었다. 경기남부경찰청은 19일 오전 브리핑을 갖고 화성연쇄살인사건 유력 용의자 A씨의 유전자(DNA)와 3건의 현장 증거물에서 검출된 DNA가 일치한다고 밝혔다.
박민정 기자 mjm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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