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최근 해임된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18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정책을 맹비난했다고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가 보도했다. 백악관 책사로 있을 때부터 트럼프 대통령과 공공연하게 의견 충돌을 빚어 왔던 그였으나, 경질 이후부터는 대놓고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 방침을 비판하며 저격수로 돌변한 모양새다.
폴리티코는 이날 보수성향 싱크탱크인 ‘게이트스톤연구소’의 초청으로 이뤄진 비공개 오찬 연설에서 볼턴 전 보좌관이 북한, 이란과의 어떤 협상도 “실패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고 비난했다고 두 명의 참석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볼턴은 이어 북한과 이란이 자국 경제를 지탱하기 위해 국제사회의 제재를 완화하는 협상만 원한다고 주장했다. 게이트스톤연구소는 볼턴이 지난해 4월 백악관 입성 전까지 회장직을 맡았던 곳이다.
볼턴은 트럼프 대통령이 아프가니스탄 반군 세력 탈레반을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 초청한 것은 “끔찍한 신호였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앞서 이달 초 트럼프 대통령은 미 정부와 평화협상을 벌이고 있는 탈레반을 이곳에 초청하려다, 9ㆍ11테러 18주기를 앞두고 테러 배후세력을 미국 내에 들이려 한다는 비난 여론에 직면해 결국 취소했다.
이와 관련, 볼턴은 이날 연설에서 탈레반이 9ㆍ11 테러를 일으킨 이슬람 무장단체 알카에다에 은신처를 제공했던 점을 상기시키며 “9ㆍ11 테러 희생자들을 모독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탈레반과의 평화협상을 애초에 시작하지 말았어야 하며, 8,600명의 미군 병력을 계속 아프간에 주둔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프간 평화협상은 최근 잇따른 탈레반의 테러로 사실상 무산된 상태다.
최근 벌어진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시설 피격과 관련, 볼턴은 이란을 배후로 지목하며 이를 ‘전쟁행위’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지난 6월 이란이 미군 무인기(드론)를 격추했을 당시 미국이 보복했다면 이란이 사우디 정유시설에 피해를 입히지 못했을 것이라는 주장을 내놓았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볼턴의 강력한 촉구에 따라 이란에 대한 군사적 대응을 준비했다가, ‘나쁜 아이디어’라는 다른 참모들의 경고를 받아들여 막판에 철회한 바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참석자는 폴리티코에 “볼턴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름 한 번을 거론하지 않으면서도 그를 수 차례 마구 헐뜯었다”고 회상했다. 특히 이날은 트럼프 대통령이 볼턴의 후임으로 인질 문제 협상가 로버트 오브라이언을 선택한 날이기도 해, 그의 발언이 더욱 눈길을 끌었다.
이 같은 볼턴의 발언이 보도된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존(볼턴)은 누구와도 협력할 수 없었고, 많은 사람이 그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폴리티코에 따르면 이날 미-멕시코 국경지대인 샌디에이고 남부를 방문한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들에게 이같이 말하면서 “많은 사람이 내가 볼턴을 (참모로) 데려온 사실을 매우 비판했었다. 그는 중동에 파병하는 것을 너무나도 좋아했고, 그 탓에 우리(미국)는 중동의 경찰 노릇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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