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집권해도 마찬가지라며 실망하고 판을 떠나기 보다 평범한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비판과 함께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주장해야 한다. 연합뉴스

무더위에 심신이 지쳐갈 무렵, 조국 법무부 장관 가족을 둘러싼 논란으로 한국 사회는 몸살을 앓기 시작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이름도 기억 못할 5촌 조카 이야기부터, 자녀의 입시를 둘러싼 논란까지 확인이 필요한 온갖 추정들이 언론을 통해 유포되면서 한국 사회는 그야말로 극한 대립으로 치닫고 있다. 급기야 박근혜 정부의 마지막 총리였던 야당 대표가 삭발을 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지향하는 가치는 달라도 기득권층의 삶의 방식이 유사하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인데도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당황스럽기 그지없다.

서울대와 고려대에선 ‘조국 반대’ 집회를 주도한 일부 학생들이 학생증을 일일이 검사하는 번거로움을 마다하지 않으며 서울대와 고려대 학생들만 참여할 수 있는 집회를 열었다. 지옥 같은 입시전쟁에서 스스로를 인내하며 어렵게 얻은 학벌이라는 전리품만이 진짜라는 것을 확인하듯.

물론 어려운 환경을 딛고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의 지위를 성취한 청년들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을 예외라고 부른다. 부유한 부모를 둔 청년들은 부모가 제공해 준 기회에 자신의 노력을 더해 소위 좋은 대학에 진학하고 좋은 직장을 얻어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세습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문제는 이런 현실이 단순히 조국을 끌어내리고, 정권을 바꾼다고 해서 변하지 않는다는데 있다. 황교안 정부가 들어서면 이런 현실이 바뀔까? 단번에 바꿀 수 있다면 그렇게 하자. 하지만 그런 역사는 없다. 악귀 같았던 일제만 물러나면 모든 불평등과 불의가 사라질 것 같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은 분단, 전쟁, 독재에 맞서 다시 피 흘리며 싸워야 했다. 4ᆞ19 혁명은 한국 민주주의의 꽃이었지만, 박정희와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군사독재와 기나긴 싸움을 시작해야 하는 출발점이었다.

6월 민주화 항쟁은 모순되게도 노태우로 상징되는 권위주의 세력이 합법적으로 복원되는 길을 열었다. 1997년 최초의 수평적 정권 교체는 평범한 사람들이 주인 되는 새 세상을 열 것 같았지만, 우리는 더 커지고 고착화되는 불평등을 목도해야 했다. 2016년 촛불항쟁은 불의한 정권을 무너뜨리고 문재인 정부를 탄생시켰지만, 시민들은 여전히 “기회는 평등하지 않고, 과정은 공정하지 않으며, 결과는 정의롭지 못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그놈이 그놈이고 다 똑같은 놈이니 누가 집권해도 마찬가지라며 판을 떠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반복되는 실패를 똑같이 되풀이할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닌가. 하지만 실망하지 말자. 깊이 생각해 보면, 독립, 산업화, 민주화를 위한 평범한 사람들의 헌신은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를 부유한 나라로, 반세기 넘게 독재에 신음하던 나라를 아시아 최고의 민주주의 국가로 탈바꿈시켰다. 이렇게 보면 지금 벌어지는 조국을 둘러싼 논란은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운” 더 좋은 조국을 만들기 위한 진통인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기득권을 가진 소수 엘리트 집단을 비난하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기득권층이 물러선다고 기득권이 함께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놈이 그놈이라는 정치적 무관심은 자해 행위다. 비판과 함께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주장해야 한다. 평범한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평범한 사람들의 자녀가 부모의 지위와 관계없이 자신의 노력에 따라 평가받고, 실패하고 뒤처진 청년들에게 재기의 기회가 주어지는 사회 시스템을 만드는 것만이 기회가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가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길이다. 기득권층의 위선이 몸서리치게 싫다면, 외면하고 눈을 감아버리는 대신 눈을 부라리고 정의를 실천하는 깨어 있는 시민이 되어야 한다. 평범한 사람들이 살 만한 정의로운 조국(祖國)은 단 한 번도 공짜로 얻어진 적이 없다.

윤홍식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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