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 줄고 가격 올라 도매상 울상 “안 그래도 손님 없는데, 앞이 캄캄”
“안 그래도 추석 지나서 수요가 줄고 있는데 별안간 이런 일이 터져서 앞이 캄캄합니다.”
18일 오전 서울 마장동 축산시장 도매상인 이근응(71)씨는 텅 빈 시장을 멍한 얼굴로 바라봤다. 경기 파주시에 이어 이날 오전 연천군에서도 아프리카돼지열병(ASF) 확진 소식이 전해지자 시장 공기는 더욱 차갑게 얼어붙었다. 이씨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지 다들 모르는 상황”이라며 “오늘은 경매가 없으니 내일은 작업할 물건도 없다”고 말했다.
경기 부천시 농협중앙회 부천축산물공판장도 마찬가지였다. 자동 분사기로 출입 차량을 소독하던 평소와는 달리 출입구에는 방역복을 입은 직원 여럿이 늘어서서 드나드는 차량을 통제했다. 그 덕에 전날 도축한 돼지 소량 경매가 끝난 뒤 공판장은 이내 잠잠해졌다. 이따금 소를 실은 트럭 몇 대만 오갈 뿐이었다. 한 축산물 중매업자는 “아프리카돼지열병은 구제역과 다르고, 세계적으로 초기 방역 성공 사례도 없어 공포의 대상”이라며 “이제껏 겪어보지 못한 상황에 다들 힘들어한다”고 전했다.
‘돼지흑사병’이라 불리는 ASF 발병으로 전국 양돈업계가 패닉 상태에 빠졌다. 전날 전국 돼지농장, 도축장, 사료공장, 출입차량 등을 대상으로 48시간 동안 ‘일시이동중지명령’이 발령되자 할 일이 없어진 도매시장들은 휴장에 들어갔다.
축산물유통종합정보센터에 따르면 이날 전국 주요 축산물 공판장 13곳 중 8곳에서 경매가 중단됐다. 경매가 이뤄진 곳도 전날 미리 도축한 분량만 내놓는 수준이었다. 공급이 줄어드니 전국 평균 돼지 경매가는 지난 16일 1㎏ 당 4,476원에서 이날 6,030원까지 뛰었다.
양돈업계에서는 정부가 추가 확산을 막을 수 있을 지만 초조하게 지켜보고 있다. 경기 안양시 협신식품 공판장의 한 중매인은 “오늘은 미리 들여온 돼지로 기본 물량을 채웠지만 이동중지명령이 해제되지 않으면 당장 내일부터는 손 놓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공급이 줄고 가격이 오르자 중간 도매상인들도 울상이다. 마장동 축산시장 상인 공경술(71)씨는 “1마리에 13만원 정도 올랐는데 소매점에 가격을 올려 받을 수도 없으니 우선은 손해를 보고 있다”며 “다들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 어수선하다”고 말했다. 다른 상인은 “구제역 때는 그래도 소비가 됐는데, 지금은 가격이 갑자기 오르며 손님도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은 소비자가격이 급등한다고 보기엔 이르다. 이형우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축산관측팀장은 “현재 가격만 놓고 보면 지난해에 비해 돼지 가격이 떨어졌다”며 “사태가 장기화하면 시장 판도가 바뀌겠지만 단기에 끝난다면 기존 수급량이 워낙 많았던 탓에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준기 기자 joon@hankookilbo.com
오지혜 기자 5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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