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월적 지위 악용 등 폭행ㆍ협박 없는 강간 70% 넘어…법 개정 시급 
'강간죄' 개정을 위한 연대회의 참가자들이 18일 국회 앞에서 강간죄 구성요건 개정 촉구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연합뉴스

여성단체들이 강간죄 구성 요건을 폭행ㆍ협박에서 동의하지 않은 성관계로 확대하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가해자가 우월한 지위를 악용하는 등 피해자 의사에 반한 성관계를 처벌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라는 것이다.

208개 여성단체로 구성된 ‘강간죄 개정을 위한 연대회의’는 18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강간죄 구성 요건을 확대하는 법 개정을 촉구했다. 연대회의는 “지난해 미투운동으로 강간죄 개정을 위한 사회적 요구가 높아져 국회 원내 5당에서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논의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면서 “국회는 논의를 더 미루지 말라”고 요구했다.

연대회의가 전국 66개 성폭력상담소에 올해 1~3월 진행 및 접수된 강간 상담사례 1,030건을 분석한 결과 직접적인 폭행ㆍ협박이 없었던 강간(유사강간 포함)은 71.4%에 달했다. 가해자가 직접적인 폭행ㆍ협박을 하지 않더라도 피해자가 벗어나기 어렵고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저항을 포기한 사례들이 많았다. “인사권을 쥐고 있는 사람이어서 불이익을 당할 것 같아 저항하지 못했다”, “사랑한다, 사귀자, 결혼하자고 해서 가만히 있었다”, “‘이상한 짓 안 할게, 쉬러만 가자’고 한 말을 믿었다” 등이 피해자들의 진술이었다.

연대회의에 따르면 영국, 스웨덴, 독일, 캐나다, 미국 등은 이미 ‘동의 여부’를 기준으로 강간을 정의하고 있다. 형식적으로 동의가 있다고 해도 폭행협박, 위계나 위력, 피해자의 연령, 장애 유무, 공포 등을 고려해 실질적인 동의가 불가능한 경우까지 ‘동의 없음’으로 판단해 처벌하기도 한다.

박아름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는 “성폭력 피해자가 죽도록 저항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몸가짐을 잘못해 성폭력을 유발했다는 이유로 피해를 인정받지 못해왔다”며 “이제 우리 사회는 성폭력을 ‘성적 자유 또는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의 죄’라고 말한다. 그런데 성폭력 관련 법체계는 구시대적 법 규정에 고스란히 머물러 있다”고 법 개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들의 요구사항은 연대회의를 구성하는 208개 단체의 트위터 등을 통해 온라인에 확산되고 있다. 연대회의는 다음달 14일 강간죄 구성 요건 변경을 위한 토론회도 준비하고 있다.

허정헌 기자 xscop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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