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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 칼럼] 쿤데라와 하루키의 음악

입력
2019.09.18 18:00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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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에 적대적인 쿤데라는 록과 재즈를 "음악의 더러운 물"이라고 대놓고 비방한다. 한편 무라카미 하루키는 감식안이 뛰어난 재즈팬이지만, 자신의 소설에서는 팝과 록을 압도적으로 선호한다. 하지만 그에게 마이클 잭슨이 노래하는 세계는 나쁜 세계다. ©게티이미지뱅크
대중음악에 적대적인 쿤데라는 록과 재즈를 "음악의 더러운 물"이라고 대놓고 비방한다. 한편 무라카미 하루키는 감식안이 뛰어난 재즈팬이지만, 자신의 소설에서는 팝과 록을 압도적으로 선호한다. 하지만 그에게 마이클 잭슨이 노래하는 세계는 나쁜 세계다. ©게티이미지뱅크

소설가가 되기 전에 영화전문학교에서 미학을 가르치기도 했던 밀란 쿤데라는 자신의 소설에 그가 정리한 클래식 음악의 원리를 고스란히 응용하고 있다. 그는 바로크 음악이 ‘하모니+멜로디’로 이루어졌던 반면에 낭만주의 이후의 서양 고전 음악은 멜로디 일색이라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라블레ㆍ세르반테스ㆍ디드로ㆍ로런스 스턴 등의 위대한 고전 소설은 ‘에세이+스토리’로 이루어졌으나 오늘의 소설은 앙상한 스토리 전개를 보여주는 데 급급하다. 쿤데라는 현대 소설이 바로크적인 자유분방함, 곧 에세이적 성격을 되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때 생각나는 한국 작가는 박상륭이다.

대중음악에 적대적인 쿤데라는 ‘향수’(민음사, 2000)를 비롯한 여러 소설에서 록과 재즈를 “음악의 더러운 물”이라고 대놓고 비방한다. 현존하는 작가가 쓴 가장 탁월한 산문집이라고 확언할 수 있는 ‘사유하는 존재의 아름다움’(청년사, 1994)에서 그는, 록은 서양의 낭만주의 음악을 타락시킨 멜로디조차 갖고 있지 못하다고 말한다. “록 음악은 엑스터시이며, 엑스터시의 한 순간의 연장이다. 그리고 엑스터시란 시간에서 뽑혀 나온 한 순간, 기억 없는 짧은 한 순간, 망각으로 휘둘러진 순간인 만큼, 멜로디의 주제는 전개될 공간을 갖지 않으며, 전개도 결론도 없이 그저 되풀이될 뿐이다. 록은 멜로디가 음악을 지배하지 않는 유일의 ‘가벼운 음악’이다.”

한편 무라카미 하루키는 대학생 시절이던 1970년대 초엽, 재즈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했고, 대학을 졸업하고 난 1974년부터 1979년까지 직접 재즈 바를 열었다. 그는 감식안이 뛰어난 재즈팬이지만 자신의 소설에서는 팝과 록을 압도적으로 선호했다. 그 목록에는 하루키가 1949년생이라는 것을 나타내주는 소위 ‘올디스(oldies)’가 많고, 가수와 밴드도 딜런ㆍ비틀스ㆍ도어스ㆍ비치 보이스 등으로 채워져 있다. 하루키가 소설의 모티프나 배경음악으로 재즈를 고집했다면 아마도 지금은 소수 독자만 거느리는 ‘컬트 작가’가 되었을 것이다.

그의 소설에는 제3세계 대중음악은 물론 샹송이나 칸초네가 아예 등장하지 않는다. 이런 결벽은 그가 미국에 진출하는 데에 장애가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하루키가 미국 대중음악을 모두 수용한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그는 마이클 잭슨에게 냉혹했다. ‘댄스, 댄스, 댄스’ (문학사상사, 1989)에서 마이클 잭슨은 세계를 뒤덮는 “역병(疫病)”으로 타기되었다. 하루키에게 좋은 음악은 좋은 세계의 산물이다. 60년대 미국 팝은 좋은 세계의 상징이고, 마이클 잭슨이 노래하는 세계는 나쁜 세계다. 그렇다면 그의 소설은 어느 편일까? ‘무라카미 하루키를 음악으로 읽다’(영인미디어, 2018)의 공저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노르웨이의 숲’이 팔린 최대의 원인은 그것이 에로이기 때문입니다.”(오타니 요시오) “’1Q84’에서 에로만 빼내면 ‘빈껍데기 무라카미 하루키’가 될 거예요.”(스즈키 아쓰후미)

하루키는 80년대 이후의 미국 팝을 쓰레기 취급한다. 휴먼 리그ㆍ플리트우드 맥ㆍ아바ㆍ비지스ㆍKC 앤드 선샤인 밴드ㆍ도나 서머ㆍ이글스ㆍ보스턴ㆍ코모도스ㆍ존 덴버ㆍ시카고ㆍ케니 로긴스ㆍ제네시스ㆍ애덤 앤트ㆍ홀 & 오츠ㆍ조 잭슨ㆍ프리텐더스ㆍ슈퍼 트램프ㆍ더 카스ㆍ듀란 듀란ㆍ컬처 클럽ㆍ훌리오 이글레시아스…(이 중에는 미국산이 아닌 것도 있다). 미국 대중음악에 대한 급격한 태도 변화는 상실에 대한 유별난 감각(애착)을 가진 하루키의 세계관과 연결되어 있지만, 1989년부터 시작한 헤이세이 불황(平成不況)과도 맞물려 있다. 일본이 장기 침체에 빠져들면서 좋았던 시절의 60년대 음악을 향유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자, 하루키는 그것보다 더 오래된 근원인 클래식에서 모티프를 찾게 된다.

쿤데라와 하루키는 번번이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는 단골이라는 공통점 말고는 아무런 공통점이 없지만, 체코의 작곡가 레오시 야나체크를 통해 만나는 지점이 있다. 쿤데라는 자신과 같은 나라의 작곡가인 야나체크를 연구하고 논문도 쓴 열렬 지지자이고, 하루키는 ‘1Q84’(문학동네, 2009)에서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를 주제가처럼 사용한다.

장정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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