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C 추적 보도…평화협상 진행 중에도 극심한 폭력 실상 드러나
민간인 희생자도 473명 달해…“극도로 불확실한 환경 처해 있어”
지난 14일 밤(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군과 미군은 아프간 북부와 서부의 탈레반 장악 지역에 대대적인 공습을 가했다. 그 결과, 고위급 지휘관 두 명을 포함해 최소 38명의 탈레반 병력이 숨졌다. 불과 닷새 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탈레반과의 협상은 사망했다”고 선언했던 대로, 1년여에 걸쳐 진행됐던 아프간 평화협정이 사실상 좌초했음을 확인시켜 준 순간이다. 게다가 16일에도 미군 전투요원 한 명이 아프간에서 전사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평화협상 재개는 점점 더 힘들어지는 분위기로 흐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영국 BBC방송이 16일 공개한 ‘아프간 전쟁: 2019년 8월 사망자’ 추적 보도는 이 나라의 평화 정착에 더욱더 암울한 전망을 드리우고 있다. 아프간 정부ㆍ미국과 탈레반 간의 평화협상이 이달 초 ‘초안 합의’를 향해서 한창 속도를 내던 와중에도 양측의 무력 충돌로 하루 평균 74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BBC에 따르면 지난 8월 한 달간 아프간에서 발생한 교전이나 공습, 포격 등에 따른 사망자는 최소 2,307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들 중 70% 이상은 아프간군(675명)과 탈레반(974명)이었으나, 민간인도 5분의 1이 넘는 473명으로 파악됐다. 부상자도 1,948명(민간인 786명)에 달했다.
이처럼 대규모의 인명 피해를 양산한 폭력은 아프간 전역에서 단 하루도 빠짐없이 발생했다. 34개 주(州) 가운데 사망자가 발견되지 않은 곳은 3개 주뿐이었고, 80명 이상이 숨진 날은 무려 14일이나 됐다. 특히 8월 18일에는 수도 카불의 한 결혼식장을 겨냥한 이슬람국가(IS)의 자살폭탄 테러로 민간인 92명이 숨졌다. 신랑 미르와이스는 “내 희망과 기쁨이 단 1초 만에 모두 파괴됐다”고 울분을 표했다. 8월 18일은 최다 사망자(162명) 발생일로 기록됐는데, 대부분 탈레반이었다.
BBC는 “(2001년 아프간전 발발 이후) 18년간 이어진 전쟁을 끝내려는 협상이 혼란에 빠지면서 가혹한 폭력이 아프간의 모든 곳을 휩쓸고 있다”며 “아프간 민간인들이 극도로 불확실한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뜻”이라고 전했다. 이어 “심지어 8월 사망자 수는 내전 중인 시리아나 예멘의 경우를 3배 이상 압도한다”라며 “언론 보도와 정부 관리, 목격자, 병원 기록 등을 통해 확인한 최솟값만을 집계한 만큼 실제 희생자들은 더 많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게다가 오는 28일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아프간군ㆍ미군과 탈레반 간 충돌이 더욱 격화할 것이라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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