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 전 대법관이 17일 서울 중구 달개비에서 열린 신간 '판결과 정의'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새 책을 설명하고 있다. 창비 제공

“개천에서 용이 나는 게 어려워지는 사회는 발전 없는 사회라는 데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계층이동의) 사다리를 막거나, 걷어차선 안 되죠. 하지만 판사 선발 과정에서도 점점 사다리가 좁아진다는 느낌을 받아요. 그래서 책을 썼어요. 사법부 구성원들에게 보다 다양한 시각을 제시해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대한민국 최초 여성 대법관으로,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제정을 주도한 김영란 전 대법관(63). 대법관 임기를 마친 뒤 현재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로 일하고 있는 그는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회의 산하의 대입제도개편공론화위원장, 대법원 양형위원회 위원장 등 우리 사회 교육과 사법 영역의 틀을 재조정하는 중책도 맡아 왔다.

신간 ‘판결과 정의’를 출간한 김 전 대법관을 17일 서울의 한 식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만났다. 책에서 그는 퇴임한 뒤 선고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들을 복기하며 한국 사회에서 더 나은 정의가 무엇인지 묻는다. 일종의 ‘판결 평론’이다. 구체적으로 그는 성인지 감수성의 문제는 남녀 차이를 넘어 위계질서가 본질이라 진단하고, 가습기살균제 사건에서 기업이 설계한 계약이 법보다 우선할 수 있는지 따져 봐야 한다고 말한다. 또 과거사 청산 문제에서 사법부의 역할, 사법의 정치화를 고민하는 판사들의 자세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

김 전 대법관에게 정의는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는 “정의는 한마디로 정의 내리고, 한마디로 길을 찾을 수는 없지만, 어떤 게 정의로운 건지 다들 알고 있지 않느냐”며 “이렇게 하면 옳다, 그르다고 사람들이 느끼는 공정한 사회를 잊지 말고 그 방향에서 판단할 때, 우리 사회가 잘 가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사법부의 판단이 모두가 동의하는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 간극 줄이기 위해서 그는 법관들이 국민의 눈높이에서 사안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주어진 법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데 그쳐선 안 되고, 늘 우리 사회의 미래를 생각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치적 판결의 한계를 스스로 인식하는 것도 필요하다. “법원과 법관 스스로 당파성에서 벗어날 수 없고, 정치적 결정을 내릴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인식하는 게 중요해요. 그런 한계를 늘 생각하는 것과 안 하는 것은 차이가 크죠” 판결이 반드시 객관적이라는 믿음을 늘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판결은 마침표가 아닙니다. 판결을 통해 사건에 대한 시비는 일단락되지만, 그 판결 속 쟁점의 이유가 되었던 가치에 대한 고민은 끝나지 않기 때문이죠. 우리는 쌓여가는 판결을 돌아보며 판결이 사회를 더욱 정의롭게 했는지 살펴보고, 사법부의 판단이 더 옳은 쪽으로 갈 수 있도록 사회 전반의 통념과 공감대를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꿔가야 합니다.”

이날 간담회에선 조국 법무부 장관을 둘러싼 논란과 관련한 질문도 쏟아졌다. 그러나 김 전 대법관은 “출간 기자간담회이기 때문에 답하기에 적절하지 않다”며 말을 아꼈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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