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올해 프랑스와 지난해 캐나다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2년 연속으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대한 ‘기이한 일화’를 꺼내, 다른 세계 정상들을 당황케 했다는 후일담이 보도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를 넘어서 공식 석상에서까지 김 위원장에 대한 농담 섞인 발언을 연거푸 내놓자, 그의 발언이 미 대통령의 국제적인 위상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16일(현지시간) 미 온라인 매체 버즈피드는 지난달 프랑스 비아리츠에서 열린 G7 정상회의에서 세계 정상들의 토의가 이어지던 중 주제가 북한으로 흐르자, 갑자기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과 김 위원장의 친분을 자랑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이어 버즈피드는 당시 상황을 알고 있는 3명의 정보원을 인용, 트럼프 대통령이 10분가량 자신과 김 위원장의 ‘대단한 관계’에 대해 늘어놓는 탓에 다른 G7 정상들은 할 말을 잃는 지경이었다고 묘사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김정은과의 친분 자랑’은 이번이 처음 있는 일도 아니다. 버즈피드는 지난해 캐나다 퀘벡에서 열린 G7 정상회의 때의 일을 소개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기이한 레퍼토리’의 핵심은 2년 전 김정은을 두고 말했던 ‘리틀 로켓맨’에 대한 시리즈”라고 전했다. 지난 2017년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후 김 위원장을 향해 “미치광이” “리틀 로켓맨”이라고 하자, 김 위원장은 직접 성명을 내고 트럼프 대통령에 “늙다리 미치광이”라고 비난한 바 있다.
버즈피드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6월 싱가포르 북미 1차 정상회의에서 만난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바로 이 ‘리틀 로켓맨’이라는 별명을 두고 대화를 나눴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이 대화 내용을 퀘벡에 모인 G7 정상들에게 소개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회상에 따르면, 당시 김 위원장은 싱가포르 회담 자리에서 “(예전에는) 날 뚱보라고 불렀다가, 이번에는 이렇게 불렀다”라며, 왜 ‘리틀 로켓맨’(Little Rocket Man)이라는 표현을 썼는지 그에게 물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엘튼 존 몰라요? 정말 멋진 노랩니다”라고 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영국 팝 가수 엘튼 존의 열렬한 팬으로, ‘리틀 로켓맨’이란 표현도 엘튼 존의 유명곡인 ‘로켓맨’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7월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방북했을 당시 김정은에 선물하기 위해 ‘로켓맨’ 노래가 담긴 CD를 가지고 갔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엘튼 존의 노래에 빗댄 것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답에 김 위원장은 “하지만 나를 ‘작다고’(little) 부른 거 아닙니까?”라고 되물었다. ‘뚱보’라는 말과 ‘리틀’이라는 표현이 앞뒤가 맞지 않다며 일종의 농담을 던진 셈이다. 이 같은 일화를 전하던 트럼프 대통령은 G7 정상들 앞에서 농담의 마지막 한 마디를 던졌다고 한다. “(‘로켓맨’이 아니라 ‘작다’고 부른 걸) 김정은이 싫어했던 거죠!(That’s what he didn’t like!)”라고 말이다.
이와 관련, 버즈피드는 “트럼프 대통령이 엘튼 존과 잔혹한 독재자(김정은)에 대한 똑같은 일화를 세계 지도자들에게 반복하는 상황은 마치 트위터 농담처럼 들린다”라면서 “하지만 이건 패러디가 아니라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진보 비평가들이 트럼프를 ‘위험한 어릿광대’로 보는 것처럼, 그를 직접 대하는 세계 정상들마저 이 같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G7 정상회의 당시의 일화를 전한 한 소식통은 버즈피드에 트럼프 대통령의 농담을 두고 “매우 재미있었다”라고 비꼬는 투로 언급했다. 버즈피드는 “세계 정상들은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웃은 게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을 비웃었다. 이런 행동은 중국ㆍ이란과의 대치로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미 대통령의 국제적인 위상을 떨어뜨린다”고 비판했다.
버즈피드는 한 소식통이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에 너무 매료돼 있습니다”라고 우려했으며, 다른 이들도 “트럼프는 유치하게도 잔혹함에 매료되어 있다”라고 설명했다고 전했다. 다만 또 다른 소식통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일관성 있는 맥락을 갖거나, 실제 목적을 가지고 이뤄지는 것은 아니라는 단서를 달았다고 버즈피드는 덧붙였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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