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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재칼럼] 문 대통령이 떠안은 세 가지 리스크

입력
2019.09.16 18:00
수정
2019.09.17 09:51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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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ㆍ정의ㆍ평등’ 촛불 정부 가치 훼손

‘우군’ 윤석열을 ‘적’으로 돌린 것도 실책

비판적 지지층 실망과 자괴감은 어떡하나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3일 방영된 KBS 추석특별기획에 출연해 이산가족의 기억에 대해 인터뷰하는 모습.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3일 방영된 KBS 추석특별기획에 출연해 이산가족의 기억에 대해 인터뷰하는 모습. 청와대 제공

참여정부 첫 비서실장인 문희상 국회의장의 회고담이다. 정권 초 지역 안배를 위해 경찰청장과 국세청장을 각각 영남과 호남 출신으로 정한다는 방침을 세웠는데, 경남 출신인 문 의장의 매제가 경찰청장 유력 후보로 올라왔다. 그때 문재인 당시 민정수석이 제동을 걸었다. “경력이나 평가 점수가 가장 높지만 절대 안됩니다. 비서실장의 매제가 경찰청장이 되면 과연 국민이 납득하겠습니까.” 문 의장은 내심 불편했지만 옳은 말이라 대꾸를 못했고, 인사는 무산됐다. (문희상 저서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은 민정수석 당시의 엄격한 기준을 조국 법무부 장관에게는 적용하지 않았다. 검찰 개혁에 대한 문 대통령의 의지와 막판에 불어 닥친 진영 논리가 그 이유일 것이다. 그러면, 조국을 살렸다고 해서 문 대통령은 이긴 걸까. 검찰 수사라는 변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민심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 것 같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말한 것처럼 “문 대통령이 리스크를 안고 가는” 형국이다.

리스크의 첫 번째는 명분의 상실이다. 정치는 명분을 누가 갖느냐의 싸움이다. 당장은 세력이 약해도 명분이 있는 쪽이 종국에 이기는 경우가 많다. 애초 청와대 민정수석을 법무부 장관으로 직행시키려는 것부터가 명분이 약했다. 그 악습을 만든 장본인이 이명박 전 대통령이라는 점에서 권력기관 개혁을 주장한 문 대통령이 밟을 길은 아니었다. 거기서부터 문제가 꼬였다.

’정의’와 ‘공정’은 문재인 정부를 상징하는 가치다. 조국이라는 개인, 검찰 개혁이라는 어젠다와 등가에 놓을 사안이 애당초 아니다. 정의, 공정, 평등이라는 진보 진영의 대표적 브랜드 가치가 훼손된 것의 영향이 어디까지 미칠지 알 수 없다. 촛불 정부를 자임하며 계속 공정과 정의를 외친들 누가 귀담아들을까 싶다. 그동안 모든 진보 운동에서 호흡을 함께 해 온 청년 세대와의 관계 훼손은 어떻게 복원할 것인가.

두 번째 리스크는 ‘윤석열 검찰’이다. 지금 윤석열은 개혁의 주체인가, 아니면 개혁의 대상인가. 불과 두 달 전 윤석열은 문재인 정부의 든든한 우군으로 출발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설치 등 검찰 개혁에 반대하지 않았다. 조국 청문회를 납치해 졸지에 역적으로 내몰린 게 윤석열의 ‘공명심’ 때문인지, 조직적인 개혁 저항인지도 불분명하다. 조국 검증 국면이 ‘정치 검찰’ 프레임으로 전환돼 조 장관을 구해 냈지만 ‘윤석열 검찰’ 전체를 적으로 만든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조 장관이 약속한 검찰 개혁도 힘을 잃었다. 국회에 넘어간 검찰 개혁 법안 처리는 더욱 어려워졌고, 조국이라는 이름으로 수행되는 개혁 조치는 당위에도 불구하고 사사건건 벽에 부닥치고 있다. 대한민국 검사 2,000명이 조국 쪽에 서야 하는지, 윤석열 말을 들어야 하는지 고민하게 만드는 지금의 상황은 정상이라고 할 수 없다.

문 대통령 지지자들을 시험대에 올린 게 세 번째 리스크다. SBS가 추석 때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문 대통령에게 투표했다고 밝힌 응답자 가운데 29.6%가 조 장관 임명이 잘못됐다고 했다. 어찌 보면 청와대와 여당이 비판적 지지층에 맞서고 있는 것이 이번 사태의 본질이다. “큰 정의를 위해 작은 정의는 희생해야 한다”는 집권층의 주장을 이들은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이들이 지지를 완전히 철회한 것은 아니지만 ‘무당층’으로 옮겨 간 것은 문 대통령으로서는 큰 손실이다. 이들의 무너진 자존심과 자괴감은 쉬이 회복되지 않을 것이다.

참여정부 청와대에 근무하면서 노무현, 문재인 두 사람을 경험한 조기숙 교수는 저서 ‘대통령의 협상’에서 “문 대통령은 옳은 일을 과감히 추진해 보는 이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지만 유연성에서는 노 전 대통령보다 덜 탄력적일 수 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핵심 지지층에게 승리감을 안겼지만 그 이상의 리스크를 떠안았다. ‘원칙주의자 문재인’이 감당하고 해결해야 할 일이다.

수석논설위원 cj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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