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타계한 최인훈의 중편소설 ‘광장’(1960)은 양극화된 이데올로기 대립을 넘어 제3의 길을 모색한 분단문학의 걸작으로 꼽힌다. 소설에서뿐만 아니라 한국 근현대사에서 ‘광장’은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있게 만들어 놓은 빈터’라는 사전적 의미를 넘어 상징적 공간으로 존재해왔다. 3ㆍ1운동에서부터 6ㆍ10민주항쟁까지 각종 투쟁의 근거지였고, 2002월드컵 당시에는 축제의 마당으로 기능했다. 촛불을 든 시민이 모여들었던 평화의 무대이자 정치 시설물 철거를 두고 매번 몸살을 앓아야 했던 곳이기도 하다.
국립현대미술관(MMCAㆍ국현) 50주년 기념 전시인 ‘광장: 미술과 사회 1900-2019’는 최인훈의 ‘광장’을 모티브로 구성된 전시다. 동시대 미술에서 드러나는 사회 주요 이슈를 ‘광장’을 매개로 풀어내며 공동체 일원으로서 개인이 맞닥뜨리는 문제를 짚는다. 국현은 ‘광장’이라는 주제의식을 담은 단편 소설집 ‘광장’도 함께 출간했다. 윤이형, 김혜진, 이장욱, 김초엽, 박솔뫼, 이상우, 김사과까지 개성 있는 소설가 7명이 카카오톡 단체대화방(단톡방), 광화문, 광장맨션, 무대 등 저마다 광장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를 토대로 소설을 써냈다.
미술 전시와 소설집의 콜라보라는 이색 조합은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로 출발, 전시 도록과 문학을 비롯해 다양한 장르의 책을 출간하고 있는 출판사 워크룸프레스의 독특한 정체성 덕에 가능했다. 전시를 기획한 국현의 이사빈 학예사는 “기존의 전시 도록은 대개 미술 관계자들만이 보고 끝나는데, 50주년 기념 전시인만큼 일반 대중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던 중 워크룸프레스의 김형진 디자이너가 소설집이라는 아이디어를 제안했다”며 “처음에는 도록의 일부로 기획됐지만 구체화시키는 과정에서 전시의 일부이자 단독 기록물로서 소설집이 만들어졌다”고 밝혔다.
시각문화연구와 문화평론 등 다방면에서 활동해 온 김신식 전 문학과사회 편집위원이 소설집에 참여할 작가진 구성과 해설에 참여했다. 김 전 편집위원은 “문학과 미술이 상호작용을 통해 각자의 한계를 돌파하려는 움직임은 최근의 예술 트렌드 중 하나”라며 “이번 ‘광장’ 기획은 소설과 미술이 상호 교점을 통해 서로의 미래를 모색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설명했다.
전시는 이달 7일부터 내년 2월 9일까지 열린다. 국현 서울관, 과천관, 덕수궁에서 관람할 수 있다. 27일에는 MMCA 나잇에서 윤이형, 김초엽 작가와 함께하는 낭독회도 마련돼 있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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