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종합병원에 입원해 혈관질환을 치료하시다가 뒤늦게 슈퍼박테리아인 카바페넴내성장내세균(CRE)에 감염됐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종합병원은 급한 치료를 마쳤으니 요양병원으로 환자를 옮기라고 매일 재촉했어요. 그런데 요양병원마다 CRE 보균자는 전염이 우려돼서 못 받겠대요. 어디로 가야 합니까.” (경기도의 강경순씨)
항생제에 내성(耐性)이 있어 치료가 어려운 ‘슈퍼박테리아’ CRE에 감염된 환자가 급증하고 있지만, 입원할 만한 요양병원을 찾지 못해 환자들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CRE 환자 관리에 꼭 필요한 1인용 격리실을 갖춘 요양병원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기 때문이다. 정부가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확산속도가 빨라 입원난은 악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CRE는 카바페넴이라는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세균을 통틀어 일컫는다. 카바페넴은 장내세균 치료에 사용하는 가장 강력한 수준의 항생제인데 이마저 듣지 않는 세균이 CRE다. 주로 요로감염을 일으키며 폐렴과 패혈증 등 다양한 감염증을 유발한다. 대개 의료기관에서 환자나 간호인력, 또는 이들이 접촉한 물체를 통해 확산된다. 항생제 사용량이 증가하면서 세계적으로도 CRE환자는 증가세다.
한국에서도 의료기관을 중심으로 환자가 늘고 있다. 정부에 보고된 환자는 전수감시가 시작된 2017년 5,717명에서 지난해 1만1,954명으로 늘었다. 올해는 이달 16일 1만218명으로 지난해보다 두 달 일찍 1만명을 넘어섰다. 강씨의 아버지처럼 요양병원과 종합병원 등 여러 의료기관을 옮겨 다니는 환자가 많은 한국에선 어떤 경로로 감염됐는지를 파악하기도 쉽지 않다.
문제는 이들이 폐렴 등 CRE로 인한 주요 질병을 치료한 이후 CRE가 체내에서 배출될 때까지 건강을 호전시킬 의료기관이 절대 부족하다는 점이다. 상급종합병원이나 종합병원 등 당장 생명이 위급한 급성기 환자를 돌보는 병원은 주요 질병만 치료하고 CRE 환자를 일찍 퇴원시키려 한다. CRE에 감염됐더라도 증상이 없다면 위험하지 않고, 이들이 병상을 차지하면 정작 위급한 환자를 받지 못한다는 이유다. 요양병원 역시 CRE환자를 꺼린다. 관리는 까다롭고 간호인력과 간병인, 다른 환자에게 균을 옮길 우려가 있다는 설명이다. 감염예방관리료라는 별도의 수가를 받을 수 있지만 이를 위해선 전담인력과 시설, 샤워시설을 갖춘 격리실 등을 갖춰야 한다. 상대적으로 영세한 요양병원 입장에선 언감생심이다. 지난해 6월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요양병원 1,496곳 가운데 감염관리실과 인력을 운영하는 병원은 62곳(6%)에 그쳤다. 병원 역시 22곳(22%)에 불과했다. 강경순씨의 아버지 역시 100여일을 버티다 종합병원(명지병원) 측이 요양병원을 찾아준 뒤에야 이달 초 전원할 수 있었다. 안광용 명지병원 대외협력실장은 “CRE환자를 받는 요양병원은 서울과 경기권에 7곳”이라며 “환자 사후관리에 어려움이 많다”라고 설명했다.
수도권 이남 지역의 상황은 더욱 열악하다. 신희석 경상대병원장은 지난 6월 본보와의 통화에서 “CRE환자가 2016년부터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고 일 평균 17명 정도가 경상대병원에 입원해 있다”면서 “절반은 치료가 끝난 단순보균자인데 지역 중소형 병원이나 요양병원에서 이들을 관리하기 어렵다고 받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신 원장은 이어 “이들이 모두 완치되려면 2년 정도 걸리는데 이런 보균자들이 갈 곳이 없다”고 덧붙였다.
복지부는 요양병원도 감염예방관리료를 받을 수 있도록 지급기준 완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빨라야 2020년부터 가능하다. 조항석 대한요양병원협회 정책위원장은 “요양병원 가운데 CRE환자를 제대로 관리하는 곳은 5%도 안 될 것”이라며 “급성기 병원과 다르게 요양병원에 맞는 지원을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민호 기자 km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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