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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민 교수 “각자도생 사회 탈피 위해, 한국이란 무엇인가 질문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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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민 교수 “각자도생 사회 탈피 위해, 한국이란 무엇인가 질문할 때”

입력
2019.09.19 04:40
수정
2019.09.19 07:49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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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계의 아이돌’ 23일부터 본보 연재] 

 “공정ㆍ정의, 법ㆍ제도 넘어 어떻게 구현할지 논의 필요 

 현 정권, 촛불혁명 이후 나아갈 방향 아직 제시 못 해”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필자인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가 최근 서울 중구 세종대로 한국일보사를 찾아 촬영에 응하고 있다. “남들이 알아보는 게 불편하다”는 그는 최대한 얼굴이 드러나지 않게 해달라고 했다. 이한호 기자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필자인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가 최근 서울 중구 세종대로 한국일보사를 찾아 촬영에 응하고 있다. “남들이 알아보는 게 불편하다”는 그는 최대한 얼굴이 드러나지 않게 해달라고 했다. 이한호 기자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하면 떠오르는 말이 있다. ‘OOO이란 무엇인가.’ 그는 근본을 꿰뚫는 이 질문 하나로 한국 사회를 뒤흔들어왔다.

1년 전 추석을 앞두고 한 신문 칼럼에서 던진 ‘추석이란 무엇인가’란 질문은 그의 대표작이다. 명절 때만 되면 과도한 관심을 보이는 오지랖 넓은 친척들에게 추석의 근본적 의미는 무엇인지 반문해보라는 그의 제안은 신선하면서도 통쾌했다. 이후에도 그는 성장이란 무엇인가, 위력이란 무엇인가를 물으며 대한민국 사회에 화두를 던져왔다.

‘OOO이란 무엇인가’는 정체성에 대한 물음이다. 그는 “정체성을 따지는 질문은 대개 위기 상황에서 제기된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평상시에는 내가 누구인지, 한국이 무엇인지에 대해 궁금해하기 보다는 내가 무엇을 하는지, 한국이 어떤 정책을 집행하는지, 즉 정체성보다는 근황과 행위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진다. 그러나 자신의 존재 규정을 위협할 만한 특이한 사태가 발생하면, 새삼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는 것.

김 교수는 이번에 작정하고 한국의 정체성, 역사, 정치, 사상, 문화에 대해 물을 참이다. 23일부터 3주마다 월요일에 실리는 한국일보 연재 ‘한국이란 무엇인가’를 통해서다. 그는 이번 연재에 대해 “한국 사회의 더 나은 미래에 대한 대안적 내러티브를 찾기 위한 여정”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4일 그를 만나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풀어갈지에 대해 미리 들어봤다.

 -한국을 주제로 잡았다. 

“한국의 정체성, 한국에 대해 이야기할 때가 된 것 같다. 그 동안 많은 사람들이 한국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왔지만, 충분히 만족할 정도는 아니라고 본다. 현대 한국에 대한 논의는 식민지 시기 일본 제국주의자들로부터 시작됐다. 폄하적인 어조가 주를 이뤘다. 해방 이후엔 그 반작용으로 민족주의적 시각의 논의가 집중됐다. 최근엔 (반일종족주의 출간 등) 우파적인 반작용이 다시 일고 있다. 악순환이다. 대안적 내러티브가 없으니 계속 논의가 맴돌 수 밖에 없다. 유의미한 새로운 정당이 없으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기존 정당을 택할 수 밖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한국에 대한 논의의 선택지를 다각화 해 새로운 시각을 도입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마음에서 연재를 기획하게 됐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 한 필자인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가 23일부터 한국일보에 ‘한국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연재를 시작한다. “남들이 알아보는 게 불편하다”는 그는 최대한 얼굴이 드러나지 않게 해달라고 당부했다. 이한호 기자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 한 필자인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가 23일부터 한국일보에 ‘한국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연재를 시작한다. “남들이 알아보는 게 불편하다”는 그는 최대한 얼굴이 드러나지 않게 해달라고 당부했다. 이한호 기자

-지금의 대한민국을 관통하는 시대정신은 무엇이라고 보나.

“사람들이 느끼는 건 ‘각자도생’이 아닐까. 정치학 용어로 얘기하면 자연상태다. 더불어 살아야 할 어떤 비전도 갖지 못한 상태다. 요즘 한국 사람들은 자신의 위치, 입장을 정당화 할 때 ‘내 입장이 어떻다’고 설득하기 보다는, ‘내가 그래도 저 형편 없는 인간보다는 낫지 않느냐’고 항변한다. ‘배고프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어떤 음식을 먹어야 되는지를 얘기하기 보다는, ‘지금 다른 대륙에선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도 있다’고 대꾸하는 식이다. 이렇게 보다 나빴던 과거나, 보다 나쁜 주변의 대상을 통해 내 처지를 정당화 하는 것으로는 각자도생의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다. 각자도생의 상태를 벗어나 보다 바람직한 정치가 구현된 상태로 이행할 지가 우리에게 주어진 시대 질문이라고 본다.”

 -촛불혁명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촛불이 한국 사회에 남긴 의미는. 

“촛불혁명을 통해 우리 사회는 ‘무엇이 잘못됐는가’에 대해 공감대를 가졌다. 하지만 촛불혁명에 대해 아직 충분히 서술할 수 없다. 혁명 이후를 어떻게 만들어가느냐에 따라 혁명의 의미는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잘못을 인지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중요한 건 그 다음이다. 먼저 혁명 이후에 들어선 정치 세력은 혁명 이전의 정치 세력과 질적으로 달라진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시민들은 추운 겨울 거리에 나갔던 정치적 체험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할 것이다. 시민들은 현 정권이 과거 정치 세력과 ‘어떻게 질적으로 다른지, 달라질 것인지’를 끊임 없이 체크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현 정권은 촛불혁명에 대해 굉장히 큰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또 한가지 혁명 이후 어디로 갈지에 대해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우리는 과거의 사람들보다 나쁘지 않다는 소극적 정당화를 넘어서야 하는 작업이다. 그러나 아직 그 길을 제시했다고 보기 어렵다. 집권 이후 여러 메시지가 나왔지만, 추상적 상태에 머물렀다. 보다 구체적이고 풍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 사태를 겪으며 국민들은 이 땅의 공정과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해 묻고 있다. 

“공정과 정의의 최소 조건은 법으로 보장될 수 있고, 규정될 수 있는 것 이상이라고 본다. 합법적이라고 해서 모든 것이 설명되지 않는다. 공정과 정의를 논할 때 법은 굉장히 일부다. 보이지 않는 시민의 덕성, 그 사회에서 오랫동안 축적된 믿음, 문화적 성숙도가 포함됐을 때 비로소 구현될 수 있는 가치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단순히 특정 법령을 어겼다고 탄핵 된 게 아니다. 국가적 사태에서 마땅한 책임을 다하지 못한 부정의(不正義)의 책임을 물은 것이다. 우리 사회의 법과 제도는 꽤 잘 돼 있다. 형식적으로 보면 무난해 보이지만, 만족해하는 사람은 굉장히 소수다. 법과 제도를 넘어서 어떻게 공정과 정의를 구현할 수 있을지에 대한 깊숙한 논의가 필요한 이유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처럼 공정성 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할 수 없는 영역 아닌가. 더 나은 언어와 담론을 주고 받을 필요가 있다. 그런 과정 없이 한국의 미래를 구상할 수 없는 때가 왔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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