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면 쓸데없으면서도 신비로운 이야기가 숨어 있는 곳이 연예계입니다. ‘연예 B하인드’는 사소하고 시시콜콜하게 화제의 인물과 콘텐츠 뒷이야기를 전합니다.
‘교통이란/길 위의 금을 따라가며/끊임없이 누군가의 뒷모습과 이야기하는 것/그들의 뒤꿈치를 따라/나도 누군가의 뒷모습으로 정체되어 있었다.’ ‘57분 교통정보’란 시(윤성학) 일부입니다.
교통과 인생은 참 닮아 보입니다. 내 멋대로 어디든 갈 수 있다는 것, 환상입니다. 주어진 길에 휩쓸리듯 떠밀려 누군가의 뒤를 쫓고 ‘몸’을 세울 네모난 공간 하나 찾는 게 교통(주차)과 인생(집)이란 길에 주어진 숙명입니다. 시인은 ‘57분 교통 정보’를 수없이 들으며 인생의 뒤안길이 떠오른 듯합니다. 짧은 1~2분이 겹겹이 쌓여 삶에 축적된 결과겠지요.
이젠 패스트푸드의 시간이 된, 분 단위의 프로그램이 TV에 나온다고 합니다. 나영석, 신효정 PD가 기획한 tvN 새 예능프로그램 ‘신서유기 외전: 삼시세끼-아이슬란드 간 세끼(‘신서유기 외전’)’입니다. ‘3분 카레’도 아니고 ‘5분짜리’ 방송이라고 합니다. 일회성 이벤트가 아닙니다. tvN은 ‘신서유기 외전’을 무려 ‘정규 편성’했습니다. 제작진에게 물어보니 몇 달 동안 ‘5분 방송’이 이어진다고 합니다. 유튜브도 아니고 올드 매체로 분류되는 TV에 5분 신규 예능이라니요.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파격 편성입니다. 신문 혹은 인터넷에 시간 단위로 구획된 TV 편성표에 가느다란 실처럼 비집고 들어갈 ‘신서유기 외전’ 5분 편성표를 생각하니 웃음부터 나옵니다.
‘5분 예능’은 어떻게 나오게 됐을까요. 방송인 강호동의 말이 씨가 됐습니다. 지난달 2일 방송된 tvN ‘강식당3’에서 강호동은 ‘신서유기 외전’을 “ ‘삼시세끼’ 뒤에 매주 5분씩 붙여 내보내자”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삼시세끼 외전’은 이수근과 은지원이 아이슬란드 여행을 떠나는 과정을 담은 프로그램입니다. 두 사람이 지난 1월 종방한 ‘신서유기6’에서 게임으로 아이슬란드 여행권을 상품으로 얻어 ‘일’이 커졌습니다. 정리하면 두 사람이 ‘신서유기6’에서 얻은 상품권이 ‘강식당3’에서 새 콘텐츠로 구체화된 것입니다. ‘신서유기’ ‘강식당’ 시리즈 출연진과 제작진이 같아 가능한 ‘초연결 미션’인 셈입니다.
강호동의 말대로 ‘삼시세끼 외전’은 염정아와 박소담 등이 출연해 방송 중인 ‘삼시세끼 산촌편’이 끝난 뒤인 20일 오후 10시40분에 처음 방송됩니다. 연예인이 장난 삼아 던진 말에 제작진이 죽자고 달려들어 방송사에 5분 편성까지 따낸 것입니다.
아이슬란드 여행이 꼭 모두에게 축복이 될 순 없습니다. 이수근과 은지원에게 아이슬란드 여행은 벌칙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스케줄이 빠듯해 가까운 중국도 아니고 아이슬란드까지 날아가 며칠을 비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수근과 은지원 측에 따르면 두 사람은 지난 1일 아이슬란드로 떠나 4일 귀국했습니다.
3박 4일 일정은 고난의 행군이었습니다. 아이슬란드까지 한 번에 가는 직항이 없어 다른 나라를 거쳐야 했고, 기상 미션까지 했습니다. 은지원은 “ ‘신서유기’ 새 시즌을 찍은 것 같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짧은 여행인 줄 알고 갔는데 정식 신규 프로그램 촬영처럼 고됐다는 얘기죠. 워낙 일이 많아 두 사람이 아이슬란드에 도착하기까지 경유하는 과정만 40회 분량이 나올 것 같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두 사람은 아이슬란드에 도착한 첫날엔 오로라를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아이슬란드는 나영석 PD가 KBS를 떠나 CJ ENM으로 이직하기 전에 떠난 여행지였습니다. 나 PD는 당시 오로라를 봤습니다. 기다리다 지쳐 버스에서 잠이 든 사이, 얼른 내리라는 여행 가이드의 “겟 아웃!” 외침에 놀라 엉겁결에 봤다고 합니다. 나 PD는 책 ‘어차피 레이스는 길다’(2012)에서 오로라를 본 소회를 이렇게 적었더군요. ‘사진과는 전혀 달랐다. 하늘 전체가 녹색으로 뒤덮였다. 그것은 살아 있었다. 햇살이 비치는 창가에 걸어놓은 녹색 커튼이 미풍에 흔들리는 것처럼 빛이 일렁인다. 마치 지구가 숨을 쉬는 느낌이다.’ 나 PD의 뒤를 이어 아이슬란드를 찾은 이수근과 은지원은 과연 오로라를 보는 행운을 잡았을까요. 나 PD는 ‘삼시 세끼’ 촬영으로 아이슬란드에 이번엔 동행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신서유기 외전’은 미디어 생태계 변화를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과자를 먹듯 5~10분이란 짧은 시간에 콘텐츠를 소비하는 스낵컬처 시대, TV도 결국 변했습니다. 유튜브에서 짧은 동영상 보는 데 익숙한 시청자의 콘텐츠 소비 변화에 맞춰 프로그램도 시간이 아닌 분 단위로 쪼개졌습니다. 과연 광고는 붙을까요? 기우였습니다. 5분짜리 ‘신서유기 외전’엔 이미 광고가 붙었습니다. 광고시장도 변한 겁니다.
지상파에서도 변화의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이번 추석 명절 연휴에 MBC는 ‘5분 순삭’을 편성했습니다. ‘무한도전’과 ‘거침없이 하이킥’ 시리즈 등 유명 예능 프로그램을 5분 단위로 편집해 엮어 20여 분 동안 내보내더군요. 분 단위로 짧아진 TV 콘텐츠의 등장, 앞으로 올드 미디어의 편성과 콘텐츠 전략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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