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나 교수님들께 ‘복붙했냐’는 소리를 듣고 싶지는 않고, 그렇다고 인사를 안 드리면 예의가 없다고 한 소리 들을 것만 같아 울며 겨자먹기로 인사말을 고민 중이에요.”
대학원생 김모(27)씨는 추석을 앞두고 ‘명절 인사 카톡’으로 고민을 거듭했다. 서로 다르면서도 센스와 성의가 넘치는 인사말이 도통 떠오르지 않았다. ‘풍성한 한가위 보내세요’ 같은 단체문자를 보내면 십중팔구 읽지도 않고 바로 삭제할 게 뻔하다. 아예 보내지 않으면 왠지 더 성의 없게 느낄 것 같다. 간단한 인사말 하나 고르는 것도 만만치 않으니 김씨는 애꿎은 머리만 쥐어뜯었다.
명절 때면 어김없이 갖가지 인사말이 휴대폰 문자메시지와 메신저에 넘쳐난다. 예의에 어긋나는 말을 하게 되지는 않을지, 성의 없어 보이진 않을지 누구나 한 번쯤 고민을 한다.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추석’만 써도 ‘추석 인사말 문구’가 늘 연관 검색어로 뜬다. 이런저런 인사말을 대신하는 이모티콘, 각종 상황마다 적절한 인사말을 추천하는 어플리케이션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명절 인사를 특히 부담스러워하는 게 ‘2030 세대’다. 기성세대의 ‘사회 생활’에 회의감을 느끼지만 이미 자신도 그 사회 안에 포함돼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수직적 조직에서 위치는 거의 말단이다. 혹여 대인 관계를 망칠지 모르니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사소해 보일 수 있는 인사말 고민도 2030에게는 만만치 않은 스트레스다.
이런 이유로 명절마다 ‘눈치 게임’을 벌이기도 한다. 대학생 이예경(22)씨는 “동기나 교수님에게 인사를 드려야 할 지 말 지 항상 고민스러워 단체 카톡방에서 누군가 먼저 포문을 열기만 기다린다”며 “분위기가 조성되면 이모티콘으로 인사를 대신한다”고 전했다.
올해 주요 기업들의 자기소개서 제출 마감이 추석 연휴 직후인 16일에 몰려 있어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에게 명절인사는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서울에서 자취 중인 취업준비생 A(25)씨는 “자주 연락하지 않는 친구나 교수님 같은 경우 추석에라도 연락하지 않으면 영영 연락이 끊기게 될까 걱정”이라면서도 “추석 인사를 하면 대부분 요즘 뭐하냐는 답장이 오기 때문에 인사말 보내는 게 망설여진다”고 말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예전엔 명절 선물 보내는 것 때문에 고민이 있었다면, 사회적 규범이 바뀌고 선물 주고받는 게 줄어들면서 대신 명절 인사 카톡이 새로운 고민거리로 떠오른 듯 하다”고 설명했다. 구 교수는 “인사를 주고받으며 서로 감사를 표현하는 것은 시대나 국가, 문화를 떠나 보편적인 행동이며 사회 구성원으로서 책무”라며 “젊은 층의 경우 수직적인 조직 문화, 직장 내 괴롭힘 등으로 명절 인사 같은 문화에 부담감을 가지는 경우가 많은 만큼 인사 자체보다는 그런 조직 문화를 개선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정준기 기자 joon@hankookilbo.com
조소진 기자 soj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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