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리스트 배제’는 제소 안 해… 최종심까지 3년 이상 걸릴 듯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1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3개 품목에 대해 일본이 지난 7월 4일 시행한 수출제한 조치를 WTO에 제소한다"고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정부가 마침내 일본을 상대로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라는 칼을 꺼내 들었다. 반도체ㆍ디스플레이 핵심 3개 소재의 수출규제가 시작된 지 69일 만이다. 국가 간 차별금지와 공정하고 합리적인 무역규정 운영 등을 규정한 WTO 협정 의무를 위반했다는 게 우리 정부의 제소 이유. 하지만 일본 정부가 여전히 규칙 위반이 아니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WTO의 최종 결론을 얻기까지는 족히 3년 이상 소요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11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을 갖고 “수출규제 조치는 일분 정부 각료급 인사들이 수 차례 언급한 것처럼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과 관련한 정치적 동기에서 이뤄진 것”이라며 “우리나라를 직접 겨냥한 차별적 행위로, 정치적 목적으로 교역을 악용하는 행위가 반복되지 않도록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를 WTO에 제소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WTO 제소 절차는 정부가 이날 양자협의 요청 서한을 일본 정부(주제네바 일본대표부)와 WTO 사무국에 전달하면 공식 개시된다.

정부는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가 관세무역일반협정(GATT) 제1조의 최혜국 대우와 제11조 수량제한의 일반적 폐지, 제10조 무역규칙의 공표 및 시행을 위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이 고순도 불화수소(에칭가스)와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포토레지스트 등 반도체ㆍ디스플레이 3개 품목에 대해 한국만 특정해 수출 규제에 나선 건 국가 간 차별대우를 금지한 최혜국 대우 의무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정부는 또 자유롭게 교역하던 소재 3종을 수출할 때마다 허가 받도록 한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가 WTO 회원국이 수출허가 등으로 수출을 금지ㆍ제한하지 못하도록 한 GATT 11조는 물론, 10조와도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GATT 10조는 특정 국가 수출에만 과도한 신청서류 제출을 요구하는 경우 무역규칙을 비합리적으로 이행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 정부는 지난 7월 4일 반도체ㆍ디스플레이 3개 소재에 대한 수출 규제 조치를 시행했다. 그간 해당 품목을 수출하는 일본 기업은 포괄적인 수출 허가를 한 번 받으면 3년간 개별 품목에 대한 허가를 받지 않아도 됐지만 이제는 건건이 허가를 받아야 한다. 유 본부장은 “수출규제 조치 이후 현재까지 단 3건만 수출허가가 났다”며 “일본의 수출규제는 우리나라의 주력 산업인 반도체ㆍ디스플레이 분야를 정조준하고 있고, 그로 인해 우리나라 기업들은 심각한 피해에 직면해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우리 정부는 일본 정부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우대국)에서 제외한 부분을 이번 제소 대상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3개 품목 수출 규제와 달리, 해당 조치로 인한 수출 제한 효과가 구체화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유 본부장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있다”며 추가 제소 여지를 남겼지만, 한국도 일본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기로 한 만큼 일본 측에 빌미를 줄 수 있다는 판단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 정부의 제소에 따라 양국은 60일간 양자협의에 들어가게 된다. 협의에 실패해 1심 격인 분쟁해결기구(DSB) 패널을 거쳐 최종심까지 밟게 될 경우 결론까지는 3년 이상 걸릴 수 있다. 최근 한국의 승소로 끝난 한일 후쿠시마 수산물 분쟁도 4년 가까이 걸렸다. 유 본부장은 “양국 기업들과 글로벌 공급사슬에 드리운 불확실성이 조속히 해소될 수 있도록 모든 역량을 총결집해 대응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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