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시청자 현혹하는 TV 속 쇼닥터
의학적 근거 없는 제품ㆍ시술 홍보… “의협이 못하면 정부가 단속해야”
※‘메디 스토리’는 의사, 간호사 등 의료계 종사자들이 겪는 애환과 사연, 의료계 이면의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한국일보>의 김치중 의학전문기자가 격주 월요일 의료계 종사자들의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게티이미지뱅크

“한의사님, 저희 방송국 건강 프로그램에서 ‘염증’을 주제로 방송을 준비하고 있는데 출연이 가능하세요?” 서울 강남에서 한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한의사 A씨는 2개월 전 한 종합편성(종편)채널에서 출연 의뢰를 받았다. 방송작가는 A씨에게 “홍삼이 염증치료에 그만”이라는 멘트를 해 줄 것을 요구했다. A씨가 “만성적으로 염증을 앓고 있는 환자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무조건 홍삼이 염증에 좋다는 말은 할 수 없다”고 하자 방송작가는 “그럼 출연이 어렵다”며 전화를 끊었다. 그는 “아마도 홍삼을 판매하는 업체에서 협찬을 받은 것 같은데, 나 말고 다른 한의사가 방송에 나가 홍삼이 염증에 좋다고 말했을 것”이라며 씁쓸해했다.

◇“쇼닥터, 의료인 죽이는 바이러스 같은 존재”

방송 매체에 출연해 의학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시술을 홍보하거나 건강기능식품 등을 추천하는 등 간접ㆍ과장광고를 하는 의사(한의사)를 의미하는 ‘쇼닥터(show doctor)’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의료인의 말이라 믿음도 가고, 이들이 추천하는 제품에 솔깃할 수밖에 없어 자칫 과잉의료나 의약품 오남용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부작용이 발생해도 처벌받는 경우는 거의 없어, 성실히 환자를 진료하는 다수의 의료인은 기운이 빠진다. 의사와 한의사들은 쇼닥터에 대해 “의사로서 가져야 할 최소한의 도덕적 사명감을 저버린 이들”이라며 “쇼닥터는 의료인 모두를 죽이는 바이러스와 같은 존재”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의료인 중 어떤 사람이 쇼닥터를 할 수 있을까. 종편에서 방송작가로 일하고 있는 B씨는 “아무리 의학적 지식이 많은 의사라 할지라도 일단 언변이 좋아야 하고, 남들 앞에 서는 것을 즐겨야 방송에 자주 출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방송에 ‘맛이 들린’ 의료인들 중에는 시키지 않아도 몸 개그까지 하는 이들도 있다”고 덧붙였다.

쇼닥터들이 ‘몸 개그’까지 하면서 방송에 집착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출연료 때문은 아니다. 방송 출연료는 생각보다 적다. 지상파, 종편 등에 다수 출연한 개원의 C씨는 “대략적으로 회당 15만~50만원 정도 출연료를 받는다”고 말했다. 녹화시간ㆍ이동비용 등을 따지면 오히려 진료를 보는 게 이득이다. 하지만 방송 출연으로 전국적으로 얼굴이 알려지면 쏠쏠한 부가수입이 생긴다. 책 출판은 물론 자신의 이름을 내세운 건강기능식품을 판매할 수 있다. 여기에 각종 강연 요청까지 쇄도하는 건 덤이다. 지자체, 각종 협회 등에서 건강강좌를 하고 있는 한의사 D씨는 “방송 출연으로 인기가 많은 의료인 중에는 1시간 강사료가 500만원 이상인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의사방송 출연 가이드라인. 그래픽=김경진기자
◇협찬 멘트에 자기 홍보까지… 고군분투 쇼닥터

아무리 수입에 도움이 된다고 해도 명색이 의사, 한의사인데 의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사실을 과대 포장해 말하는 것은 전문가의 양심상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지상파, 종편 등 건강 관련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의사와 한의사들은 “협찬의 수렁에 빠지면 헤어날 길이 없다”고 말한다.

지상파, 종편 할 것 없이 건강 관련 프로그램들은 건강기능식품을 판매하는 업자나 업체들로부터 500만~1000만원 정도 제작비를 지원받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예를 들어 의료계에서는 한국인의 필수 견과류로 꼽히는 브라질 너트가 갑자기 붐을 일으킨데는 쇼닥터들의 힘이 컸다고 설명한다. 수입업자, 업체가 브라질 너트의 효능을 홍보하기 위해 제작비를 지원한 경우 방송에서 브라질 너트의 부작용은 거론되지 않는다. 브라질 너트에는 각종 성인병 예방에 도움이 되는 셀레늄(Se)이 풍부하지만 셀레늄의 하루 권장량은 약 55㎍(마이크로그램)이다. 브라질 너트 한 알에 셀레늄이 약 76㎍이 함유돼 있어 하루에 한 알만 먹어도 충분하지만, 이런 정보는 방송을 탈 수 없다. 셀레늄을 과다 섭취하면 위장관 장애, 탈모, 손톱의 흰 반점, 가벼운 신경 손상의 원인이 될 수 있어 오히려 해롭다는 정보도 묻힐 수밖에 없다. 그저 성인병에 대한 설명을 하고 어떤 음식을 먹으면 성인병 예방에 좋다고 방송을 하면서 슬쩍 브라질 너트가 좋다고 홍보하는 식이다.

의사와 한의사들은 “솔직히 협찬을 받은 제품이나 재료에 대한 효능을 부풀려 달라는 부탁을 제작진에게 받는 일이 많은데, 방송에 계속 출연을 하려면 제작진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털어놨다. 이들은 또 “건강기능식품 업자나 업체들은 TV 홈쇼핑과 방송 계약을 맺고 지상파나 종편에 제작비를 지원 한다”며 “건강프로그램에서 새싹보리, 오메가-3 지방산의 효능을 다루면 곧바로 홈쇼핑에서 이들 제품을 판매하는 것은 정형화된 공식”이라고 덧붙였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것이다.

◇돈 내고 출연하는 케이블TV 건강 프로그램

지상파나 종편의 건강 프로그램이 주로 효과가 불확실하거나 입증되지 않은 건강식품을 소개하는 내용이라면, 그 외 케이블TV 채널들은 아예 특정 병원의 홍보를 위한 프로그램을 제작하기도 한다. 이런 프로그램은 대개 전문병원이나 병ㆍ의원 원장들을 초대해 질환 설명과 치료법을 소개하는데, 출연료를 받고 촬영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제작비를 내야 한다. 한 케이블TV에서 건강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아나운서 E씨는 “정형외과, 성형외과, 피부과, 여성의원 등 비급여 진료를 많이 하는 병원 원장들이 섭외 1순위”라며 “대본은 의학적 지식이 없는 방송작가들이 쓰거나 출연하는 병원 홍보팀에서 쓰기 때문에 의학적 근거가 부족한 시술이나 수술법 등이 여과 없이 전파를 타게 된다”고 말했다. 당연히 해당 시술이나 수술의 부작용 등은 제대로 알리지 않고, 이에 현혹된 시청자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E씨는 “병원들은 방송 중 상담을 신청한 시청자들의 전화번호를 외주업체로부터 전달받아 환자를 유치할 수 있어 방송출연에 적극적”이라고 덧붙였다.

과장된 의료 정보로 환자가 피해를 입어도 쇼닥터들에게 책임을 물을 방법이 없는 것도 문제다. E씨는 서울 강남의 한 정형외과 원장이 방송에 출연해 ‘만성 허리ㆍ무릎 통증에는 프롤 주사요법(인대강화 주사치료)이 효과가 있다’고 홍보했는데 무릎 관절이 좋지 않은 70대 여성이 방송을 보고 병원을 찾아 치료를 받은 후 부작용에 시달리자 항의 전화를 해 곤욕을 치른 적 있다고 말했다. 그는 “‘너희들이 소개한 병원에 가서 치료했는데 방송에 나온 원장은 예약이 꽉 차 젊은 의사가 대신 치료해 오히려 병을 얻었다’며 계속 전화를 하고 항의를 했지만, 병원에서는 치료에는 문제가 없다며 ‘원장님 예약이 밀려 있어서 기다려 달라’는 말만 되풀이했다”고 전했다. 프롤(Prolo therapy)주사요법은 고농도 포도당 등 증식제를 통증부위에 주사해 약화된 근육과 인대를 강화시키는 치료법으로 치료과정이 복잡하지 않지만 통증 부위에 정확히 시술해야 하기 때문에 숙련된 전문의가 치료를 해야 한다.

쇼닥터의 인한 폐해가 끊이지 않자 공개적으로 쇼닥터를 비판하는 영상이 제작되는 등 의료계 내부에서 자정운동도 전개되고 있다. 지난달 28일 한의사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페인랩(PAIN LAB)’에는 한의사 이모씨를 비판하는 내용의 영상이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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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페인랩(PAIN LAB)'이 최근 이모 한의사의 쇼닥터 행위를 비판하는 영상을 올렸다. 페인랩 유튜브 캡처

한의사 이씨는 건강 및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중풍 예방하는 물파스 사용법’을 설명하고, 체질에 맞는 약재인지 확인하는 일종의 반응 테스트를 시연하면서 인기를 얻었다. 팔에 약재를 대 보아 몸에 맞으면 팔이 내려가지 않고, 몸에 맞지 않으면 팔이 내려간다는 주장이다. 그는 2014년 11월 한의사의 품위를 손상시켰다는 이유로 한의협에서 1년 회원권리정지처분을 당했지만 여전히 활발하게 TV에 출연한다. 페인랩은 “이씨는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근거가 부족한 치료법을 방송에서 효과가 있는 것처럼 과장했다”며 “물파스로 중풍을 예방할 수 있다면 신의료기술 평가를 신청하라”고 비판했다. 정형ㆍ신경외과 의사들은 약재를 몸에 대 반응 테스트를 하는 것 역시 의학적으로 근거가 없는 행위라고 지적한다. 다른 한의사들도 이씨를 비판하고 있지만, 이씨가 운영하는 한의원은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진료를 받기 위해서는 예약을 해도 1년 넘게 기다려야 할 정도다.

의료인들은 국민 건강에 입히는 폐해를 줄이는 것은 물론 성실한 의료인이 도매금으로 비판받는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선 의사단체와 정부가 쇼닥터 문제에 손을 놓고 있어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명승권 국제암대학원 교수는 “국민이 쇼닥터에게 현혹돼 먹어 봐야 별 효과가 없는 건강식품을 구입해 비용만 낭비하고 있다”며 “의협에서 보다 강력하게 이들을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의협이 인력과 예산이 없어 이들을 규제하지 못한다면 정부 차원에서 이들을 통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TV에 출연하는 의사 전체를 부정적으로 바라봐서는 곤란하다는 주장도 있다. 홍혜걸 의학채널 비온뒤 대표는 “TV에 자주 출연을 한다고 무조건 쇼닥터라고 낙인찍는 것은 무리”라며 “어려운 의학정보를 대중이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순기능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중에게 올바른 의학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 의료인들은 사회ㆍ경제적으로 인정을 받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치중 기자 cj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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