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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음에 대한 고민, '에이징 월드'전 가봤더니…

입력
2019.09.1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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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서울시립미술관 ‘에이징 월드ㆍWill you still love me tomorrow?'展. 김윤정 인턴기자
5일 서울시립미술관 ‘에이징 월드ㆍWill you still love me tomorrow?'展. 김윤정 인턴기자

둔탁한 음악소리가 암막 커튼 안에서 들리고, 사람들은 자리에 앉아 영상 속 인물들의 죽음을 조용히 관람한다. 노인을 다룬 작품들과 눈을 마주치며 간간이 짧은 한숨을 쉬기도 한다. 키오스크로 직접 만든 실버타운의 비싼 설계 금액에 놀란 표정도 보인다. 늙어가는 일에 대한 고민으로 관람객들의 얼굴이 짐짓 심각하다. 지난 5일 찾아본 서울시립미술관 ‘에이징 월드ㆍWill you still love me tomorrow?' 전시회(이하 에이징 월드)의 분위기는 차분했다.

에이징 월드는 한국 사회 안에 깊게 자리잡은 노인을 조명하는 전시다. 전시회에는 미술, 디자인, 건축 분야의 국내외 작가 15명(팀)이 참여해 노인을 둘러싼 동시대 이슈들을 다뤘다.

전시회 초입의 로렌 그렌필드의 작품(위)과 이병호 작가의 ‘깊은 숨’. 김윤정 인턴기자
전시회 초입의 로렌 그렌필드의 작품(위)과 이병호 작가의 ‘깊은 숨’. 김윤정 인턴기자

섹션 1 ‘불안한 욕망’ 전시회 초입에 들어서자 먼저 화려한 노인들의 사진이 눈에 띈다. 황금, 반짝이, 조명, 치어리딩 등 지나치게 화려하고 역동적인 노인의 사진들이 양쪽 벽면에 걸려 있다. 로렌 그렌필드의 작품들이다. 그는 전시를 통해 현대 자본주의와 소비주의의 영향으로 신체적 나이 듦에 역행하고자 하는 욕구를 투영한 작품을 선보이려 했다. “왠지 모르게 이 사진들이 무섭다”고 말한 관람객 이민영(26)씨의 말처럼, 몇 점 안 되는 작품만으로도 외적인 노화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기에 충분해 보였다.

발걸음을 옮기면 이병호 작가의 ‘깊은 숨’ 작품을 볼 수 있다. 실리콘으로 만들어진 형상의 내부 공기를 압축했다가 다시 팽창시킴으로써 삶부터 죽음까지의 변화를 겪는 작품이다. 조각은 깊은 숨을 쉬며 시간이 지날수록 앙상한 뼈대를 드러낸다. 노화는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이라는 걸 보여주는 듯 했다.

섹션 2 전시회장의 안네 올로프손 ‘내일도 여전히 날 사랑해 줄래요’(왼쪽)와 박은태 작가 전시 전경. 김윤정 인턴기자
섹션 2 전시회장의 안네 올로프손 ‘내일도 여전히 날 사랑해 줄래요’(왼쪽)와 박은태 작가 전시 전경. 김윤정 인턴기자

위층으로 올라가면 섹션 2 관람을 할 수 있다. 발걸음을 옮기면 안네 올로프손의 ‘내일도 여전히 날 사랑해 줄래요’ 작품이 관람객을 바라본다. 가까이 다가가야 보이는 사진 속 균열은 피부의 노화와 그에 따른 불안을 표현한다. 피부가 쩍쩍 갈라지는 기분이 들 만큼 강렬했다.

이어 박은태 작가의 작품을 만났다. 작가는 한때 산업 발전의 주역이었으나 이제는 쇠약해진 노인의 모습을 버려진 기계 사진과 병치해 보여준다. 시간이 지나고 사회가 변함에 따라 소외된 노인들의 모습이 줄을 이었다.

키오스크로 구현한 골든 실버 타운 및 영수증(위)과 ‘보기’의 각 자음과 모음에 해당하는 기호를 참고해 암호를 풀 수 있는 벽화. 일상의실천, SMSM. 김윤정 인턴기자
키오스크로 구현한 골든 실버 타운 및 영수증(위)과 ‘보기’의 각 자음과 모음에 해당하는 기호를 참고해 암호를 풀 수 있는 벽화. 일상의실천, SMSM. 김윤정 인턴기자

마지막 섹션 3은 가까운 미래에서 나이 듦을 상상해보길 제안한다. 앞선 전시보다 체험에 중점을 둔 전시로 꾸며졌다. 마지막 출구 가까이에 있는 키오스크는 직접 실버 타운을 구현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 작품은 일상의실천팀의 ‘골든 실버 타운’으로, 노인을 대상으로 부동산 및 마케팅 전략이 넘쳐 나는 미래의 풍경을 예측하기 위해 마련됐다.

“나중에 실버타운 만들어서 살거다”라고 했던 말을 직접 체험 할 수 있는 기회였다. 기다림 끝에키오스크 앞에서 건물의 등급부터 각종 편의시설, 보안시설을 천천히 고를 수 있었다. 이 정도면 늙어도 괜찮겠다 싶은 호화로운 실버 타운이 완성됐지만, 곧 출력되는 청구액에 할 말을 잃었다. 6억 7,000여만원이었다. 단위가 미국 달러라는 말에 가늠도 되지 않는 7,181억의 현실감이 느껴졌다.

벽화도 눈길을 끌었다. 눈이 핑핑 돌아갈 만큼 복잡한 암호문 벽화 앞에서 관람객들은 더듬거리며 짧은 문장을 풀어나갔다. “5번 문장 답이 뭐예요?”, “’천박하게 술 마시지 말고’요.” 모두 맞히면 12년간 치매 걱정이 없다는 소개로 회자됐다는 퀴즈여서인지, 관람객들의 관심이 높았다. 전시회에서 만난 대학생 김종혁(25)씨는 “아직 2문장 밖에 해석하지 못했는데 치매 걸리는 건 아닐까 걱정된다”며 멋쩍어했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전시회를 두고 “젊음이라는 매력 자본을 강요하는 시대에 다양한 차별의 양상과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시도를 시각화 하고자 했다”며 “이번 전시를 계기로 노화에 대한 관점을 전환하고 길어진 인생과 삶에 대한 새로운 방식을 모색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설명했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에서 지난달 27일 시작된 전시회는 오는 10월 20일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관람료는 무료. 다양한 체험 행사도 수시로 진행된다.

김윤정 인턴기자 digita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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