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부치기, 송편 빚기, 차례상에 올라갈 음식만들기…. 추석 명절 연휴에 온 가족이 치러야 하는 명절 가사노동은 끝이 없습니다. 조상님께 예를 차리는 것은 물론, 오랜만에 만난 친척에게 든든한 한 끼를 대접하다 보면 말 그대로 쉴 틈이 없죠. 그리고 아직까지 이런 가사노동은 주로 여성의 몫입니다. 남성이 설거지를 하거나 전 부치기 같은 비교적 쉬운(?)일을 하는 가정도 많아졌지만요. 제조업체인 타파웨어코리아가 이번 추석을 앞두고 여성 고객에게 물어본 결과 명절 하루에 평균 16시간을 일한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엄청난 양의 명절노동이 통계청의 가사노동 통계에는 반영되지 않는다는 것을 아시나요?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가사노동시간 측정 및 행동 평가 기준의 젠더불평등성 개선방안(2018)’ 보고서에 따르면, 통계청이 가사노동을 측정하는 대표적 조사인 ‘생활시간조사’는 하루 단위로 작성되고 있습니다. 장기적 주기로 반복되거나 비정기적인 가사노동은 조사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이 조사에는 1년에 두 번씩 치르는 명절 노동은 물론, 이사 준비, 계절별 옷 정리, 김장 등의 가사노동 시간은 포함되지 않고 있는 겁니다.
통계청의 가사노동 조사 방식엔 또 다른 문제도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가사노동만을 조사할 뿐 이를 위해 고민하고 준비한 시간은 측정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 같은 노동을 연구진은 ‘기획 노동’이라고 정의합니다. 예를 들어 명절에 차례음식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약 2주 전부터는 명절에 필요한 장보기 리스트를 작성하고 계획해야 합니다. 정해진 예산에서 소고기, 북어, 과일, 각종 채소 등 수 십 가지 재료를 마련해야 하니 품질 좋은 재료를 최대한 저렴하게 구매하기 위한 계산도 계속 하게 되죠. 여성들이 여기에 들이는 시간이 상당하지만, 통계청은 단지 음식을 만드는 ‘실행’만을 통계에 반영한다는 겁니다.
연구진은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가사노동의 측정 항목을 재구성한 뒤 40대 이하 남녀 1,200명을 대상으로 가사노동시간을 조사했습니다. 항목에는 세탁하기ㆍ식사 준비하기 같은 ‘실행노동’은 물론 장보기ㆍ생활비관리ㆍ청소방식 정하기 등 ‘기획노동’이 포함됐습니다. 김장, 이사 등 정기적ㆍ장기적 노동 역시 반영했습니다.
이렇게 조사한 결과, 단기ㆍ정기적 활동의 기획노동을 여성은 매월 86회, 41시간 22분 수행했으며 남성은 33.5회, 11시간 7분 수행한 걸로 나타났습니다. 실행노동은 여성이 매월 399.5회ㆍ258시간 24분, 남성은 189.0회ㆍ87시간 6분을 한 걸로 조사됐습니다. 총 시간은 실행노동이 더 많았지만, 여성이 기획노동을 상대적으로 많이 한다는 점에서 가사노동의 성별 역할 차이가 눈에 띄는 지점입니다.
보고서를 작성한 김영란 연구위원은 “사람들은 가사노동을 ‘가족을 꾸려나가는 데 필요한 모든 일’로 여기지만 현재의 조사방식에는 여기에 해당하는 다양한 노동이 포함되지 않아 가사노동이 실제보다 과소측정될 수 있다”며 가사노동 분류와 측정도구를 재구성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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