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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손 고객 ‘집사’ 역할? 한투 PB, 왜 조국 부인 무리한 요구 들어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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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손 고객 ‘집사’ 역할? 한투 PB, 왜 조국 부인 무리한 요구 들어줬나

입력
2019.09.11 04:40
수정
2019.09.11 07:10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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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심 교수가 PC 빼내는 과정 도운 사실 드러나

PB들 부유층 고객 자산관리 상담하며 가족사 공유하기도

5일 오후 검찰이 조국 법무부 장관 배우자 정경심 동양대 교수의 사모펀드 투자 등 가족 자금 흐름을 수사하기 위해 압수수색을 진행한 서울 영등포구 한국투자증권 영등포PB센터 앞에 취재진이 몰려 있다. 이한호 기자
5일 오후 검찰이 조국 법무부 장관 배우자 정경심 동양대 교수의 사모펀드 투자 등 가족 자금 흐름을 수사하기 위해 압수수색을 진행한 서울 영등포구 한국투자증권 영등포PB센터 앞에 취재진이 몰려 있다. 이한호 기자

조국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가 사무실에서 PC를 빼는 과정을 증권사 프라이빗뱅커(PB)가 도운 사실이 드러나면서 자산가 고객과 PB와의 관계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마침 파생금융펀드(DLF) 불완전판매 사태와도 겹쳐 “요즘처럼 힘든 적이 없다”고 토로하는 PB들은 왜 ‘조국 사태’에서도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됐을까.

PB 서비스는 일정 수준 이상 자산을 보유한 부유층 고객을 대상으로 한 맞춤형 자산관리 서비스를 말한다. 1989년 외국계인 씨티은행이 국내 최초로 도입했으며 1991년 하나은행을 시작으로 국내 은행들도 잇따라 뛰어 들었다.

은행들의 경쟁적인 PB서비스 도입은 고액 자산가 고객의 중요성 때문이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2010년 6월 PB서비스 이용 고객은 전체의 0.2%에 불과했지만, 이들의 예탁 자금 규모는 전체 가계수신의 12.9%에 달했다.

증권사도 2000년대 초부터 PB서비스를 시작했다. 자산 보존에 중점을 두는 은행과 달리 증권 서비스는 자산 증식에 더 무게를 둬 다양한 투자상품에 투자했다. 다만 은행과 차별화에 성공하지 못해 크게 성장하지는 못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주요 시중은행 자산관리 수수료 수익, 은행권 VVIP 자산관리서비스 현황. 그래픽=송정근 기자
주요 시중은행 자산관리 수수료 수익, 은행권 VVIP 자산관리서비스 현황. 그래픽=송정근 기자

PB는 주요 지역의 PB센터에 배치돼 주로 예약제로 밀도 있는 상담을 진행한다. 이들의 업무는 금융상품, 세무, 부동산, 상속ㆍ증여 등과 관련한 재무 및 비재무 영역을 망라한 종합서비스다. 서울 강남의 A은행 PB는 “고객의 자산 정보를 속속들이 알아야 상속ㆍ증여, 절세, 부동산 관련 컨설팅 등 다각도로 분석해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다”며 “보통 1명당 1~2시간씩 하루에 3~6명 집중적인 상담이 이뤄진다”고 말했다. 경기 분당의 B은행 PB는 “최근에는 주 52시간제 도입 등으로 많이 완화되기는 했어도 여전히 야근이 잦고, 주말에도 수시로 고객의 문의 전화에 응대하거나 개별 약속을 잡기도 한다”고 말했다.

PB의 보수는 따로 공개되지 않지만, 대개 억대 연봉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 PB는 속해있는 센터의 실적을 평가해 성과급을 받는 경우가 많은 반면, 증권사 PB는 주로 개인별로 성과를 측정해 수억원 이상 성과급을 받는 경우도 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고액자산가들이 상담 과정에서 재산 내역이나 가족사 등 지극히 사적인 정보를 공개하고 도움을 받기에 PB에게 신뢰도는 영업 능력의 핵심이다. 서울 강남의 증권사 PB는 “제대로 자산관리를 하기 위해 고객의 라이프사이클과 가족관계 등 다양한 정보를 섭렵해야 해 PB는 고객과 가장 가까운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신뢰가 쌓이면 고객의 개인 집사처럼 한층 밀접한 관계로 발전하고, 경우에 따라 금융과 관계 없는 온갖 민원도 처리한다. 다만 최근에는 PB 관련 업무 외 사적인 일로 얽히는 경우는 점차 줄어드는 추세라는 게 일선 PB들의 전언이다. “요즘 PB는 1대1 고객 응대 외에도 상품 설계 등 다른 업무가 많고 시간도 부족해 특히 젊은 PB들은 공과 사를 구분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이런 추세 때문에 PB 업계에서는 정경심 교수와 동행했던 한국투자증권 PB의 행동을 매우 의아해하는 분위기다. 아무리 PB가 고객의 집사 역할을 맡더라도 위험을 무릅쓰고 고객의 무리한 요구까지 들어주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한 10년차 증권사 PB는 “최근 사례는 20년 전에나 있었을 법한 전형적인 후진형 영업 방식”이라며 “요즘 이런 사례가 아예 없다고 말할 순 없지만, 2010년대 들어서는 공과 사를 구분하는 PB업계 트렌드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PB가 굳이 지방까지 동행할 정도라면 “특수 관계일 것”이란 추론도 제기된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증권사 PB센터 직원도 결국 회사에서 돈을 받는 입장인데, 불법을 감수할 사람은 별로 없다”며 “(그럼에도 동행한 걸 보면) 조국 장관 검증 과정에서 등장하는 ‘아는 펀드 매니저’가 이 PB센터 직원일 가능성이 높다”고 추측했다.

또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불법성이 다분한 일에 직원이 동참하려면, 돈 외에 PB 직원에게 영업적으로 도움이 되는 요소가 있어야 한다”며 “직접 투자 금액은 크지 않아도 현 정권 실세인 조국 장관 가족의 돈을 관리한다는 것 자체가 해당 직원에게는 매력적인 포인트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은행과는 다른 증권사 PB 특유의 문화에서 이유를 찾기도 한다. C은행 관계자는 “증권사 PB는 은행보다 영업 경쟁이 심한데다 수익률 등 개인 역량이 실적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은행 보다 크다”며 “이직이 잦은 증권사는 PB가 옮기면 고객도 따라 가는 경우가 흔할 정도로 PB와 고객의 관계가 더 끈끈하다”고 말했다.

박민식 기자 bemyself@hankookilbo.com

장재진 기자 blanc@hankookilbo.com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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