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에 스러져 새로운 생물의 서식처가 디고 있는 생태관찰로의 전나무

태풍 ‘링링’ 소식이 들려왔던 지난 며칠간은 손에 땀을 흘리는 긴장의 연속이었습니다. 제가 일하는 국립수목원의 광릉숲은 태풍 ‘곤파스’로 참 많은 나무들을 잃었던 경험을 가지고 있기에 경로와 강도가 유사하다는 예보에 더욱 긴장했지요. 특히 수백 년을 이어온 숲에는 오래된 나무들도 많고, 그 숲을 찾은 관람객도 있는 공간입니다. 미리 미리 취약한 나무들을 점검하고, 관람객들을 위한 안전조치, 쓰러져 길을 막는 나무들에 대한 긴급조처 등 직원들이 주말을 꼬박 비상상태로 보냈습니다. 여러 나무가 넘어졌지만 그래도 큰 피해는 없이 고비를 잘 넘겼습니다.

해야 할 일이 남았습니다. 이미 넘어지거나 부러진 나무들을 그리고 비와 바람에 땅이 흔들려 쓰러질지도 모르는 나무들을 어떻게 해야 하는 지가 숙제인데. 광릉숲에서 이런 나무들을 대하는 첫 번째 기준은 “그대로 둔다”, 두 번째 기준은 “안전이 최우선이다”입니다. 태풍도 지나갔는데 왜 광릉숲길을 못 가게 하냐고 나무라는 분들도 계시지만 바람에 뿌리가 흔들리는 하나하나를 철저하게 조처합니다. 길을 막고 있는 나무들도 비켜놓고, 특별한 목적으로 조성된 공간은 정비하지만 피해를 당한 나무들은 대부분 그 숲에 그대로 혹은 살던 숲 언저리에 둡니다. 위 가지가 다 부러진 나무도 줄기를 그대로 놓아두기도 합니다. 나무들은 그렇게 가지를 다 잘리고 고사되어가면서도 50년 이상 그렇게 서있기도 합니다.

죽은 나무에서 살고 있는 노랑느타리버섯

이렇게 죽은 나무 혹은 죽어가는 나무들을 누운 채로 혹은 선채로 그 숲에 그대로 두는 이유는 이 나무들이 수많은 다른 숲 속의 생명들에겐 매우 중요하고 의미 있는 서식공간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는 한 그루의 나무를 바라보며 그 나무의 삶만을 생각하지만 그 나무는 수많은 생명들과 연대를 가지고 있는 공동 생명체입니다. 조사 결과들을 보면 숲에 따라 많게는 80%의 야생동물이 나무에 터를 잡고 살고 있다고 하며, 일엽초와 같은 착생식물이나 겨우살이가 같은 기생식물들의 사이사이 동공과 틈새는 곤충들의 보육장소가 되기도 하지요.

죽은 나무는 곤충들의 교미장소가 되기도 한다.

나무가 죽어서는 또 다른 종류의 생명들이 깃듭니다. 동공이 커지고 수피가 벗겨져 나가며 생겨나는 다양한 틈새들은 곤충, 아주 작은 포유류, 버섯을 비롯한 미생물, 지의류 등등 그 많은 다양한 다른 생명들이 살아가는 공간이 됩니다. 서서히 분해되어 유기물이 가득한 좋은 성분의 흙의 일부가 될 때까지 말이죠. 그 양분이 식물에 흡수되고 다시 새로운 생명들을 키워내는 순환 사이클들이 작동하고 이어지는 것입니다.

수목원 생태관찰로에는 곤파스 때 쓰러진 전나무들이 뿌리를 그대로 드러낸 채 여러 해를 살고 있습니다. 그 옆에는 “고사목도 숲의 중요한 구성원입니다”라고 쓰여 있는데 이 두 줄의 글로 “수십 년 교직에 몸담고 인생을 바꾸었다”라는 고백을 오늘 들었습니다. 죽었으니 아무 쓸모 없다고 생각한 나무처럼, 말썽을 피우며 친구들과 학교에 피해를 준다 싶어 미워했던 학생들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학교로 돌아가 “우리 학생 모두가 다 행복해지는 그날을 위하여”라고 크게 써 붙여놓고 실천하고 계시답니다. 죽은 나무가 교직자의 인생관과 삶도 바꾸는 역할까지 해내었구나 싶었습니다.

내가 오늘, 깊은 생각 없이 함부로 말하고 대한 사람 혹은 자연 그 어느 것도 소중하지 않은 존재는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깊이 새기며 태풍이 지나간 자리들을 하나 하나 정리하렵니다.

이유미 국립수목원장

공감은 비로그인 상태에서도 가능합니다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