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자축구계가 다시 폭력 의혹으로 얼룩졌다. 신임 여자축구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된 최인철(47) 감독이 과거 대표팀과 현재 소속팀인 여자실업축구 WK리그 인천 현대제철에서 선수들에게 여러 차례 폭언이나 폭행을 했다는 주장이 제기된 데 책임을 지고 자진 사퇴 하면서다. 당초 폭력 의혹을 부인했던 최 감독은 9일 자진 사퇴를 알리면서 “시간이 오래 지난 일이라고 해서 없던 일이 되거나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에 죄송한 마음뿐”이라며 잘못을 인정했다
여자축구대표팀 감독 선임을 책임졌던 김판곤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회 위원장은 10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브리핑을 열어 최 감독 선임 과정을 상세히 설명한 뒤 “꽃으로도 때려선 안 되는 시대인데, 시대적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고 사과했다. 그는 “사회가 변하는 속도를 (축구) 지도자들이 따라가지 못한 것 같다고 생각한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모두가 반성하고 개선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반성과 개선의지를 밝힌 협회와 달리 국내 여자축구를 총괄하는 한국여자축구연맹은 조용하다. 이번 사태는 물론 올해 초 세간에 드러난 경주한국수력원자력의 하금진(45) 감독 성폭행 사건 또한 WK리그 구단에서 벌어진 일들이기에 사전인지 및 예방, 사후조치에 대한 상당한 책임을 안고 있지만 협회 뒤에 숨어 책임을 피해가고 있는 모습이다. 사건에 대한 인식 또한 안일하다. 여자연맹 고위관계자는 최근 본보와의 통화에서 감독 폭행 및 폭언에 대한 사전인지 여부에 대해 “우리는 언론보도를 통해서 이 사실을 알았다”면서 “과거의 것(잘못)을 들춰서 그렇게 한다는 것(책임을 묻는 것)에 대해선 아쉽다고 말하고 싶다. 현재만 잘하면 될 것 같다는 게 제 생각”이라고 했다.
축구계에선 이제까지 드러난 사건은 빙산의 일각이란 시각이 많지만 여자축구연맹의 선제적 예방 움직임은 없다. 신고 시스템이 갖춰져 있는지를 묻는 질문엔 “밤이고 낮이고 (개인) 휴대폰으로 제보는 많이 들어오고 있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여자 청소년대표를 거친 자녀를 둔 A씨는 “예전보다야 나아졌다지만 여전히 폭력이나 성폭력에서 안심할 수 있는 환경은 결코 아니다”라면서 “협회는 물론 연맹의 보다 적극적인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고 토로했다.
대한축구협회에 따르면 여자축구 등록선수는 최근 3년 새 급감하고 있다. 지난해 등록선수는 초ㆍ중ㆍ고ㆍ대학과 실업선수를 통틀어 1,539명. 3년 전(2016년)만 해도 1,915명으로 2,000명을 넘어설 것으로 보였던 여자선수는 2017년 1,646명으로 줄어든 뒤 이제 1,500명 선도 지키기 어려워진 모습이다. 여자축구 저변 확대에 힘써야 할 조직의 안일함과 시대착오적 인식이 개선되지 않는 한 한국 여자축구의 미래는 점점 어두워질 수밖에 없다.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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