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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편만 옳다”는 극단의 정치… 중도층 ‘합리적 목소리’ 설 곳 없다

입력
2019.09.11 04:40
수정
2019.09.11 09:26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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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국 사태, 무엇을 남겼나] <2> 더 공고해진 진영 논리 

 “조국 힘내세요” VS “사퇴하세요” 강경파 주장만 득세 ‘여론 호도’ 

 국민 눈높이 기반 논쟁 사라지고 정치적 냉소와 무력감만 더 커져 

문재인 대통령이 9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신임 장관 및 장관급 위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기념촬영을 위해 자리에 서 있다. 문 대통령 뒤는 사진 촬영을 위해 이동하는 조국 법무부 장관. 류효진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9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신임 장관 및 장관급 위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기념촬영을 위해 자리에 서 있다. 문 대통령 뒤는 사진 촬영을 위해 이동하는 조국 법무부 장관. 류효진 기자.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 인사 검증 과정에서 개인의 도덕성, 자질 시비와 연관해 정치ㆍ사회적 갈등과 논쟁이 빚어졌습니다. 더러는 누적된 사회 현안이기도 했고, 과거 보기 드문 양상이기도 했습니다. 한국일보는 조국 후보자 인사검증을 통해 표출된 정치ㆍ사회 이슈를 점검하는 ‘조국사태 무엇을 남겼나’ 기획을 준비했습니다. 여전히 논란이 계속되는 공정성 문제나 진영 논리, 세대와 계층 갈등, 교육 제도, 미디어 역할 등 10가지 주제를 뽑아 현상을 짚어보고, 전문가 의견을 들어 깊이 있는 분석과 함께 대안을 모색할 것입니다. 

“밀리면 끝장이다.”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을 두고 벌어진 대립은 전쟁이나 다름없었다. 온 나라가 두 동강 난 채 조 장관을 살리고 죽이는 데 올인(다 걸기)했다. ‘아군은 무조건 옳고, 적군은 무조건 그르다’는 진영 논리가 상식과 이성을 집어삼켰다. 국민적 눈높이에 기반한 비판과 논쟁은 차단됐다. “조국 힘내세요” “조국 사퇴하세요”가 실검을 장악하며 여론을 호도했다. 전문가들은 극단적 진영 싸움으로 치달은 이번 ‘조국 사태’가 촛불혁명으로 힘겹게 세워 놓은 민주주의의 후퇴를 불러올 것이라 우려했다. 특히 중도층의 합리적인 목소리는 점차 설 자리를 잃고, 강경파만이 득세하면서 한국 정치에도 포퓰리즘이 발호할 우려가 적지 않다는 경고마저 나왔다.

 ◇내 편만 보는 극단의 정치, 희생된 중도 

정치학자들은 조국 사태가 여야 공히 ‘극단의 정치’ 함정에 빠져들면서 증폭됐다고 진단했다. 조 장관 임명을 두고 양측은 사활을 걸었다. 민주당과 청와대, 진보 진영은 ‘정권의 운명’을 조 장관 임명과 동일시 했다. ‘여기서 무너지면 기득권을 지키려는 수구세력의 반격에 무릎 꿇는 것’이라며 지지자들을 중무장시켰다. ‘조국 아니면 항복’.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언론과 야당의 합리적 의심과 검증은 “열등감에 사로 잡힌 광기”로 몰아붙였고, 공정과 정의를 부르짖는 청년들은 야당의 조종을 받는 철부지로, 진보의 위선에 치를 떠는 국민들은 가짜 뉴스에 휘둘리는 군중으로 매도했다.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9일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진보 진영은 조국을 촛불정권의 상징으로 의미를 부여하면서 자승자박에 빠졌다. 정권이 무너지면 안 되니 (어떤 흠결에도) 죽어도 지키려 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자유한국당은 청문회 일정 잡는 것조차 보이콧하며 조국 사태를 정국을 뒤집을 기회로만 삼았다. 조 장관이 임명되기 전 낙마시켜 현 정권에 타격을 가하겠다는 정략적 의도가 역력했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는 “조국 사태에서 보수와 진보 진영은 적대적 공존 현상을 보였다”고 진단했다.

극단의 정치는 위험하다. 이견을 나누고 논쟁할 공론의 장을 원천 봉쇄해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치학자는 “진영 논리는 정치세력들이 가장 빠지기 쉬운 유혹이면서 치명적 덫이다. 강경 지지자들이 버티고 있는 한 협상도, 타협도, 토론도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진영 논리가 공고해질수록 내부 성찰은 실종되고, 목소리 큰 사람만이 살아남는다. 민심의 우려를 전한 민주당 의원이 동료 의원에게 공개적으로 면박을 당하고, 지지자들로부터 이적행위를 한 배신자로 낙인찍혔던 일은 여권의 폐쇄성을 고스란히 드러내 준다. 민주당 지지자들조차 조국을 반대하면 ‘반(反)개혁’ 세력으로 손가락질 받는 상황에서 중도층의 환멸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촛불 부정한 자기모순” 사회적 신뢰도 붕괴 

조국 사태로 갈라진 진영 대결은 한국 정치와 우리 사회에 회복하기 힘든 중상을 안겼다고 정치학자들은 우려했다. 윤 전 장관은 “문재인 정부가 사생결단의 진영 논리로 사회를 둘로 나눠, 대화와 타협, 다수결의 원칙하에 국민의 의사를 모아 가는 대의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를 허물었다”고 비판했다. “무너진 민주주의를 회복시키라는 촛불혁명의 명령을 받은 현 정부가 이를 어기면서 자기모순에 빠졌다”고도 했다.

공정, 정의란 가치의 보편성과 일관성을 파괴함으로써 국민적 신뢰를 추락시킨 것은 우리 사회에 큰 부담이 될 것이란 지적도 나왔다. 윤 교수는 “어느 진영에 속해 있건 잘못을 했다면 잘못인 거다. 우리 편이라고 봐주고, 감싸고 들면 공정과 정의는 힘을 잃게 된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조국 후보자의 위선과 거짓, 이른바 진보 명망가들의 궤변을 보며 어떤 공인이 공적인 장에서 아름다운 이야기를 해도 국민은 믿기 어렵게 됐다”며 “신뢰라는 사회자본이 치명타를 맞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합리적 중도 세력의 정치적 냉소와 무력감이 커지는 것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양극화된 정치 지형에서 갈 곳 없는 중도는 아예 정치에 등을 돌릴 가능성이 크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정치학)는 “합리적 진보와 개혁적 보수가 목소리를 내지 못하면 포퓰리즘 세력이 발호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경고했다. 윤 교수는 “조국 사태가 남긴 진영 대립은 종료된 게 아니다”며 “현재진행형으로, 두고 두고 대한민국 사회에 치명적 폐단을 남길 것”이라고 말했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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