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인사권은 국민이 위임한 권한…대통령 뜻대로 해선 안 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9일 반대 여론이 극명하게 앞서는 상황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을 임명하자 정치권 원로는 물론 학계와 전문가 그룹에선 일제히 비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국민 여론보다 진영 간 대결을 택한 것 아니냐는 지적과 함께 국민통합보다 정파지도자의 측면이 강조된 것 아니냐는 쓴소리가 나왔다. 이들은 “불통과 독선의 상징이 됐다”는 날 선 비판에서부터 내년 총선 때 악재로 작용해 국정운영의 불안정성을 키울 것이란 다양한 우려를 쏟아냈다.
이석연 전 법제처장은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국민의 의견에 나름대로 귀를 기울일 줄 알았는데 결과는 불통과 독선의 상징이 됐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 전 처장은 국민이 위임한 대통령의 권한을 대통령 뜻대로만 사용한 사례라고 지적했다. 대표적인 헌법주의자인 그는 “대통령에게 인사권이 있기 때문에 그것이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고 말을 하는데, 인사권이란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절차에 따라 해야 하는 국민이 위임한 권한”이라며 “대통령 뜻대로 해야 한다는 권한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공정과 정의의 상징인 ‘촛불 정신’의 종식이라는 목소리도 나왔다. ‘88만원 세대’의 저자인 우석훈 박사는 이번 대통령의 결정을 “조 장관에게 법적인 책임이 있느냐 하는 것과, 공정성ㆍ정의의 가치가 충돌한 것”이라고 평가하며 “결국 형식논리를 선택했지만 사회와 민심은 형식논리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촛불집회를 시작으로 공정과 정의의 가치를 지키겠다는 흐름은 이제 끝난 것”이라고 평가했다. 신경식 전 대한민국헌정회 회장은 “국민들이 찬반으로 나눠져 있고, 찬성보다 반대가 많은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진영 논리로 조 장관을 지명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민심이반으로 문재인 정부가 국정운영 동력을 상실할 수 있다는 우려도 많았다. 우 박사는 “내년 총선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며 “과반을 차지해 밀린 개혁 법안을 처리하겠다는 게 목표일 텐데, (이번 결정은 결국) 눈에 보이는 사법개혁을 위해 눈에 잘 안 보이는 사회정의나 경제정의를 희생시킨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전 처장 역시 “제왕적 대통령제를 끝낼 때가 됐고, 개헌을 통해 촛불정신을 완성할 시기였는데, 원활한 국정운영은커녕 국민적 저항과 혼란이 염려된다”고 말했다.
여당도 비판 세례를 피하지 못했다. 신 전 회장은 “집권여당이라는 게 민심을 잘 반영해서 전달해야 하는데, 여론조사나 언론의 지적을 보고도 반대 목소리를 못 내고 굳이 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며 “대통령이 자칫 레임덕에 빠지는 게 아니냐는 오판에서 무리수를 둔 것”이라고 말했다. 우 박사는 “여론조사에조차 잡히지 않는 10대 목소리를 듣지 않으며 미래를 포기했다”며 “곧 10대들도 투표권을 가질 텐데 더불어민주당으로 보면 비우호적인 상황이 펼쳐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문 대통령이 대국민담화를 통해 강조한 ‘권력기관 개혁’ 과제를 조 장관이 성공적으로 이행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많았다. 참여정부 정부 시절 법무부 장관을 역임한 천정배 의원은 문 대통령의 공약인 검찰 개혁을 위해 문 대통령과 조 장관을 응원한다고 밝히면서도 “논란이 큰 상황에서 장관으로서 어떤 역량을 보이느냐가 중요하다”며 “그동안 민정수석으로 경험을 쌓았겠지만, 정치력을 발휘한 건 없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이 전 처장은 “본인이 흠을 갖고 있는데 개혁을 하겠다고 하면 과연 누구도 수긍할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을 어둡게 봤다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정지용 기자 cdragon2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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