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을 끌어온 ‘조국 논란’이 쉽게 치유되지 않을 상처를 남긴 채 그의 법무부 장관 임명으로 일단 마무리됐다. 의혹 제기와 검증 과정에서 그가 장관 역할을 얼마나 잘 수행할 수 있을지에 대한 자질과 능력에 대한 검증은 조 장관과 가족의 도덕성 검증을 둘러싼 정치적 공방에 묻혀버렸다. 그를 둘러싼 온갖 정보가 소셜미디어(SNS) 등을 통해 무수히 쏟아졌지만, 과연 국민이 그를 더 잘 알게 됐을지 회의적이다.
□ SNS가 없던 시절, 권력자에 대한 일반인들의 지지는 출신 지역, 학맥이나 인맥, 그의 인품에 대한 전언 등에 의해 결정됐다. 구전되는 정보는 전파 범위가 제한적이고 그 양도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이 적었다. 그래서 신문ㆍ방송 등 올드미디어의 영향력이 컸고, 부모나 마을 어른, 직장 상사 등의 의견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정보의 흐름이 일방적이고 그만큼 권위적이었다. 그 권위적 속박을 넘어서려면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길러야 했다.
□ SNS의 보급으로 듣고 싶은 얘기만 듣기에도 하루가 모자랄 만큼 정보가 넘치고, 자기 주장을 펼치기 위해 상대방 표정을 관찰해야 할 필요도 없어졌다. 의사소통 환경은 수평화하고 보다 민주화했다. 하지만 정치적 견해는 점점 다양성을 잃고 양극화하고 있다. 미디어와 심리학 전문가들은 그 원인에 대해 SNS가 우리에게 사고의 폭을 넓힐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기보다, 숨겨져 있던 ‘집단 열광’(collective effervescence)이란 본능을 자극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 어쩌다 한번 열리는 국가 대항전에서나 느끼던 ‘집단 열광’을 매 순간 SNS를 통해 느낄 수 있는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2002년 월드컵에서 히딩크 감독을 영웅으로 만들고, 2006년 WBC 대회에서 일본 대표팀의 스즈키 이치로를 악마로 만들 듯 권력자와 정치인을 우상화하거나 공공의 적으로 삼아, 스스로의 소속감을 충족한다. 이런 상황이 과거보다 더 위험한 이유는 이런 행동을 ‘자발적’으로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문열의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속 우상인 엄석대는 새 담임 교사의 등장으로 무너졌다. 하지만 우리 사회 일부 올드미디어의 행태는 편향된 SNS와 구분하기 어려울 뿐더러 오히려 자극 강화에 앞장서는 듯 보인다. 앞으로도 쉴 새 없이 만들어질 우상과 공공의 적은 어떻게 검증하고 판단할 수 있을까.
정영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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