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은 ‘세계 자살예방의 날’]
경찰은 학생 불러 다짜고짜 조사… ‘문제아’ 낙인에 SOS 없이 극단적 선택
“자살 사건 알리고 애도 기회 주라”는 학교 매뉴얼, 현장선 유명무실
투신 자살을 막기 위해 서울 마포대교 난간에 설치된 대화 형식의 메시지.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난해 말 은영(가명)양은 수업 중 선생님의 호출을 받았다. 은영양을 기다리고 있던 건 경찰 수사관. ‘마지막 만난 게 언제냐’, ‘마지막 통화는 언제였냐’ 같은 질문이 쏟아냈다. 조사받은 뒤 아무렇지도 않은 듯 교실로 돌아왔지만 친구들은 벌써 수근대기 시작했다.

몇 주 전 자살로 친한 친구를 떠나 보낸 뒤, 그 사건을 두고 학교 안에서 어른과 대화한 것은 그게 처음이었다. 친구의 자살 때문에 충격 받았으리라 생각했을까. 그 전까지 학교 그 어느 누구도 그 주제에 대해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렇게 쉬쉬하던 학교가, 정작 은영양을 불러내는 데는 거침없었다. 수업 중간중간 ‘은영아, 잠깐 나와봐’라는 목소리만 들리면 괴로울 정도였다. 친구의 자살에 따른 충격을 이유로 은영양에게 상담을 권했지만, 그마저도 은영양을 공개적으로 지목하는 바람에 괜한 호기심만 키웠다. 은영양은 친구를 그렇게 떠나 보낸 것 못지않게, 자신의 감정을 어떤 방식으로든 정리해보지 못한 채 졸업했다.

◇증가하는 10대 자살률, 대책은?

10대 자살률은 2009년 10만명당 6.5명까지 치솟은 뒤 하향세였다. 2015년 4.2명까지 줄어들었다. 그러던 것이 2016년 4.9명, 2017년 4.7명으로 다시 늘었다. 다른 연령대 자살률이 떨어지는 가운데 유일하게 늘었다. 백종우 중앙자살예방센터장(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은 “청소년 자살 사망자의 경우 2017년 후반으로 갈수록 증가세가 지속됐다“며 “곧 발표될 2018년 통계에서도 이 같은 추세가 계속될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저작권 한국일보]인구 10만 명당 자살자 수. 그래픽=김경진기자

하지만 청소년 자살에 대한 진지한 얘기는 찾아보기 어렵다. ‘다른 학생들이 영향을 받을까봐’, ‘부담스러워서’, ‘잘 몰라서’ 같은 이유 때문이다. 이런 태도가 단적으로 드러나는 게 은영양 사례다. 학교에서 자살 사건이 발생했을 경우, 그저 쉬쉬 하느라 바쁜 것이다. 물론 자살 사건 대처는 복잡한 문제다. 유가족의 뜻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되 다른 학생들에게 끼칠 파장도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복잡하다는 이유로 학교가 의도적인 무대응으로 일관할 경우 화를 키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저작권 한국일보]중ㆍ고교생 자살 시도율/김경진기자

실제 정신건강 선진국이라 불리는 미국의 경우, 자살예방자원센터(SPRC)와 교육개발센터(EDC) 등에서 학교에 필요한 ‘자살 대응 매뉴얼’을 만들어뒀다. △학생들에게 사실을 정확히 알릴 것 △학생들이 감정을 표출할 수 있도록 하고 상담 기회를 제공할 것 △자살을 미화하지 않을 것 등의 내용이다.

[저작권 한국일보]중ㆍ고교생 우울감 경험률/김경진기자
◇학교ㆍ부모, 자살에 대한 거부감만 내세워

국내에서도 한국자살예방협회와 보건복지부 등이 만든 ‘학생 자살위기 대응 매뉴얼’에 비슷한 내용이 들어있다. 문제는 현장에 잘 적용되는가다. 홍현주 한림대 자살과학생정신건강연구소장은 “자살 사건이 일어났을 때 사건을 명확히 알리고 애도의 기회를 주면서 동시에 그것이 적절한 선택은 아니었다라는 메시지를 정확하게 전달해야 한다”며 “하지만 아직까지 안 좋은 일을 거론하는 게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하는 문화, 그런 사건이 알려지는 걸 꺼리는 학교측 태도 등이 겹치면서 현실에는 통용되지 않는 경우다 많다”고 말했다.

학교폭력으로 자살한 한 고교생의 책상 위에 친구들이 꽃다발이 놔뒀다. 연합뉴스

박성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그런 부분 때문에 아직까지 대부분의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애도의 기회를 주지 않고, 상담조차 잘 하지 않는다”며 “그저 이렇게 쉬쉬하면서 넘어가면 가벼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정도를 앓고 지나갔던 친구들이라 해도 나중에 심각한 우울증을 앓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자살 예방 분야에서도 비슷한 일이 반복된다. 자살 위험군에 속하거나 우울증 탓에 문제 행동을 보이는 청소년들을 세심하게 살피지 않는다. 그저 ‘문제아’로 여기는 시선이다. 지난달 28일 국회에서 열린 ‘제13회 자살예방종합학술대회’에 비영리 민간단체 멘탈헬스코리아(MHK)에서 청소년 피어스페셜리스트(동료지원가)로 활동 중인 청소년들은 이 문제를 지적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학교폭력 피해자였다는 전민서(16)양은 “저는 어렸을 때부터 자살을 생각했고 그 때문에 자살 고위험군 판정을 받은 뒤 위클래스 상담도 받고 자살 예방교육도 들었다”며 “그러나 제대로 된 상담이나 진단보다는 그저 ‘어떻게든 살라’고 하는 말만 들었다”고 전했다. 전양은 결국 자퇴를 선택했다. 그는 “당시 교감 선생님으로부터 ‘한 번만 더 자해하면 정신병원으로 입원시켜버릴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학교뿐 아니라 부모들도 극심한 거부감을 드러낸다. 이런저런 상담 등 과정에 들어가려면 ‘학부모 동의’가 필요한데 부모들이 그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 6학년생 A양의 경우, 부모로부터 정서적 유기에 가까운 무관심과 방임, 신체적, 언어적 폭력을 당했다. 이 때문에 상담이 진행됐으나, 정작 부모의 강력한 항의 때문에 상담이 끊어지기도 했다.

당시 위센터 자문을 맡았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B씨는 A양의 부모에게 “아이의 상태가 심각하다” “방임이나 폭언은 아동학대에 해당할 수 있다”고 여러 차례 경고했지만, A양 부모는 오히려 위센터와 B씨의 병원을 찾아와 소송을 하겠다며 행패를 부리기 일쑤였다. B씨는 A양 부모를 아동학대로 신고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이 의견은 결국 묵살됐고 이후 A양 소식은 들을 수 없었다.

◇자살 청소년 70%는 ‘징조’가 없다

한림대 자살과학생정신건강연구소가 2016년, 2017년 학생 자살 사건을 분석한 결과, 교사 등 주변 어른들이 자살 징조를 눈치채지 못한 경우가 약 70%에 이르는 것으로 나왔다. 거꾸로 말해 대부분의 자살 청소년들은 자살 위험에 처한 사람이라면 흔히 내보일 위험 신호조차 어른들에게 내보내지 못한 채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것이다.

청소년이 신뢰를 가지고 대화할 통로가 부족하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홍 소장은 “제도나 매뉴얼을 잘 갖추는 것 못지 않게 학교 현장에서 자살에 대한 이야기 자체를 부담스러워하는 문화를 바꾸고, 자살에 대한 이해도와 전문성을 꾸준히 높여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최용석 멘탈헬스코리아 대표는 “네이버에 ‘위클래스’만 입력해봐도 ‘주의산만, 대인관계 미숙, 미디어 중독, 학습흥미 상실 등으로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별도의 프로그램을 제공해 주는 제도’라는 부정적 설명이 나온다”며 “이런 인식 탓에 위클래스나 위센터에 간다는 건 뭔가 문제가 있는 아이라는 낙인을 찍는 것이고, 그러니 부모들부터 거부감을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홍 소장 역시 “사회적 인식, 분위기 탓에 위클래스 등 외부 상담에 대한 호응이 지극히 낮다”며 “최근 청소년 온라인 상담을 진행하는 ‘다들어줄개’ 같은 다양한 플랫폼이 등장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시작 단계인 만큼, 먼저 열린 시각을 가지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준기 기자 joon@hankookilbo.com

최진주 기자 pariscom@hankookilbo.com

조소진 기자 sojin@hankookilbo.com

공감은 비로그인 상태에서도 가능합니다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사회 최신기사